뜨겁고 빨간 것이, 아직 남아 있다.

딸과 함께 꽃을 보네 42

by 최영훈

터져 나오는 빨강

볼 때마다 이것이 꽃인지 열매인지, 아니면 잎인지 궁금한 것이 있다. 물론 줄기 끝에 달려 있고 색도 화려하여 당연히 꽃으로 보이긴 하나, 볼 때마다 신기한 것이 있다. 꽃무릇이다. 앞서, 9월엔 꽃이 없다는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9월 마지막 주에 이 놈이 빨갛게 올라왔다. 집 근처 식당 앞 화단에도, 문화회관 뒤 편 화단에도, 두 달 만에 돌아온 딸의 정기 진료에 동행했던 길에 봤던 해운대 장산역 부근의 화단에도 불처럼 번져 올라왔다. 아니, 차라리 용암이라 해야 하나.


여름은 뜨거운 것을 9월에 남기고 갔다. 시치미를 떼고 묵묵히 사람들의 가을타령을 들어 넘기던 그 9월은, 가을 옷을 꺼내놓고 시월을 기다리던 사람들 앞에 뜨거운 불덩이를 마지막으로 던지고 갔다. 그야말로 던져 버렸다. 활화산이다. 불이 막 지펴진 도자기 가마다. 종일 곰탕이 가득 담긴 가마솥을 달구는 아궁이 불이다. 어린 시절, 파주의 논밭에서 쥐불놀이를 핑계 삼아 어른들의 눈치를 안 보고 팔이 빠져라 돌려대던 불깡통 밖으로 새어 나오던 빨간 혓바닥을 닮은 불꽃이다. 시월의 광안리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폭죽의 미니어처다. 데일 까 싶어, 감히 만질 엄두도 못 내는 빨간 꽃이다.


아열대성 식물 같다. 열대 우림에서나 볼 것 같은 모양새다. 볼 때마다 같은 생각이다. 도대체 이런 모양의 꽃이, 이 가을 초입에 왜 만발이고 만개냐. 심지어 이 무리를 보기 위해 기독교인조차 전국의 사찰을 돌아다니고, 꽃 좋아하는 이들이 지역의 공원을 헤매고 다니는 것이 당연하게 된 것이냐. 난 도대체 이 꽃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국화야, 너에 수수함과 단아함을 독보이게 할 속셈으로 이렇게 화끈한 동생을 앞서 보낸 것이냐. 아직 피지도 않은 국화에게 가지도 않을 질문을 남기곤 했다.


새로운 시작

추석이 끝난 뒤 출근하기로 했다. 앞선 글에서 말했다. 어려운 돈 얘기도 맨 정신에 했다. 많지는 않다. 그러나 내게 필요한 것은 일이고 장소이며 명성이다. 6개월 정도 돈보다 명성을 만드는 데 집중하겠다고 했다. 좋은 콘텐츠와 훌륭한 강사, 명망 있는 원장님이 있는 데, 그걸 자산으로, 브랜드 가치로, 마케팅으로 전환시키지 못한 채, 뭔가 붕 떠 있는 것 같다고 솔직히 말했다. 원장은 내 말이 맞다고 했다. 안 그래도 그게 고민이라고 했다. 이어 말했다. 원장은 내게 몇 년 후엔 CMO를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그 자리에선 웃어넘겼다. 그게 뭔지 얼른 생각이 나지도 않았다. 자리를 나와 집에 온 뒤, 생각이 나 검색을 해 봤다. CMO는 최고마케팅책임자(Chief marketing officer, CMO)의 줄임말이었다. CBO, 즉 최고브랜드책임자(chief brand officer, CBO)로도 불린다고 한다.


취미이던 독서가 일이 되어 버렸고, 부업 삼아 몇 년 간 해오던 글쓰기와 글쓰기 가르치기가 주업이 되어 버렸다. 일주일에 한두 번 뿐이었지만, 그래도 두 시간가량 걸리던 출근길은 이십 분으로 줄었다. 물론 일주일에 4일 이상은 가야 하지만. 자체 독서 프로그램을 학원과 원장의 명성에 걸맞게 그 위상과 이미지를 정립시켜야 하고, 상급 학교 중 좋은 학교를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컨설팅도 해줘야 한다. 당연하게도 독서량이 문해력 향상을 넘어 글쓰기 실력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많은 문해력 학원들이 실패하는 지점이자 학부모들도 문해력, 혹은 독서 관련 학원에 보내는 것을 투자가 아닌 비용이라 판단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솔루션은 있고 적용만 남았다.


인디언 서머 ; 여름보다, 가을보다 긴

원장과 얘기하던 중, 솔직히 말했다. 난 내 커리어가 끝난 것 같았다. 그래서 지게차 운전을 배워서 딸을 데리고 미국에 들어갈까 생각까지 했었다. 아니면 편의점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나 싶었다.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직업이 될 수 있도록 날 선택해 줘서 감사하고 다시 머리를 쉴 새 없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줘서 고맙다. 그렇게 말해줬다.


가을이 오기 전, 아니 다들 붉고 뜨거운 것은 이제 없다며 느긋해 있을 때, 그때 나오는 꽃무릇처럼, 내게도 그런 것이 찾아왔다. 인생의 가을이 오기 전, 인디언서머가 찾아왔다. 그 열기가 얼마나 오래갈지 스스로도 알 수 없다. 지난 이십 년 간 선택받는 일을 해 왔다. 고객이, 감독이 찾아 일을 주는 역할을 해 왔다. 이제는 내가 콘텐츠와 일과 가치와 브랜드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됐다. 체력과 열정의 유지가 필요할 뿐이다. 나머지는 준비되어 있다. 이미 다 있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 있는 그 시간, 인디언 서머어야 한다. 여름의 뜨거움을 압도하고 가을의 원숙함까지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금 내게 요구되는 것이다.


기억에서 멀어지는 악몽

두 달 만에 간 병원엔 언제나 그랬듯 사람이 가득했다. 그나마 화요일이어서 그런 지 진료실 앞엔 사람이 적은 편이었다. 열한 시 반에 도착하여, 딸은 자연스럽게 채혈실로 가서 피를 뽑았고, 그 뒤 엄마와 만나 병원에 입주한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그 뒤 진료실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엄마와 함께 들어가 진료를 봤다. 수치상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덕분에, 항암 주사를 맞기 위해 넣었던 포트 제거 수술 날짜를 잡았다. 12월 초, 딸은 그것을 제거함과 동시에 투병의 기억도 더 멀리 보낼 것 같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