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향기 앞에서

딸과 함께 꽃을 보네 44

by 최영훈

줄넘기와 셔틀런의 공통점

추석 연휴 끝의 일요일, 딸은 줄넘기 연습을 하고 싶다고 했다. 체육 수행평가로 줄넘기를 하는 데 1분에 180개를 해야 만점이란다. 말도 안 되는 숫자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수업 시간에 해낸 아이들이 있는 모양인지, 딸도 해내고 싶은 모양이다. 초등학교 시절 다진 음악 줄넘기 실력이 어디 가겠냐고 딸을 응원해 줬지만 딸은 내심 불안하지 연습을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그날 오후, 딸과 함께 롱 보드를 연습하던 문화회관 별관 앞으로 가기로 했다.


문화회관의 계단을 막 오르는 데, 향이 났다. 딸도, 나도 좋아하는 꽃, 은목서다. 이르다고 생각했다. 아니다. 벌써 10월도 12일 아닌가. 올해는 유독 꽃들의 개화시기가 들쭉날쭉 했는데 은목서는 때에 맞춰 왔다. 아직 만개는 아니다. 성질 급한 녀석들이 미리 사정을 보러 나왔다. 그 성질 때문인지 먼저 나온 녀석들의 향이 제법 강하다. 꽃이 눈에 들어오기도 전에 향부터 들이민다.


딸이 줄넘기 연습을 하는 동안 셔틀런을 두 세트 했다. 세트를 하기 전 몸을 풀면서, 세트와 세트 사이 간단한 맨몸 운동을 하면서 딸을 지켜봤다. 처음엔 그냥 했다. 타이머를 맞춰놓고 줄넘기를 했다. 그러다 잠시 후 줄넘기는 내려놓고 시뮬레이션만 했다. 줄만 없을 뿐 동작은 똑같았다. 그걸 왜 하느냐고 물어봤다. 리듬과 비트를 찾는 중이라고 답했다. 1분 동안 어느 정도의 리듬과 비트로 줄넘기를 해야 기준 이상을 할 수 있는지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찾았던 것이다.


내가 가끔 하는 셔틀런도 비슷하다. 일정 거리를 일정 시간 내에 정해진 개수만큼 뛰어야 한다. 가볍게 하고 싶으면 거리를 줄이거나 시간을 늘리면 된다. 당연히, 강도를 높이고 싶으면 그 반대로 하면 된다. 왕복과 왕복 사이 쉬는 시간을 줄여도 된다. 또 당연히, 빨리 들어오면 더 많이 쉴 수 있지만, 후반부에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결국 끝까지 하기 위해선 일정한 속도 유지, 페이스 유지가 관건이다. 딸은 1분 동안, 초반에 오버 페이스를 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페이스를 유지해 기준 개수를 넘는 비트를 찾아냈다.


새 일, 새 리듬

이 글을 쓰고 있는 날부터 정식 출근이다. 그전에 몇 번 면접과 회의를 핑계로 안면을 텄다. 결론적으로 원장이 내게 기대는 역할은 특목고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의 컨설팅과 특목고에 진학한 학생들의 비교과 활동의 컨설팅이다. 다음으로는 학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고유의 독서 프로그램의 수준을 더 높이고 더불어 소위 벽돌책이라 불리는 책들을 함께 완독하고 이해하는 세미나를 운영해 주길 바랐다. 전자의 책임자는 다른 팀장이 맡아서 난 내 역할만 하면 되지만 후자는 전적으로 내 역량에 달려 있어서 최근 기획서 초안을 작성해 넘겼다.


언젠가 말했듯이, 취미와 특기의 경계를 넘나들던 독서와 글쓰기가 직업이 되어버렸다. 학교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통상 지필 고사로 부르는 시험의 성적 반영 비중은 절반도 안 된다. 절반 이상은, 여러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지만, 그 내용의 본질엔 독서와 글쓰기가 있다. 과목에 상관없이 성적을 잘 받고 싶으면 책을 많이, 잘 읽어야 하고 글을 제대로 써야 한다. 문학가들처럼 멋지고 우아하며 드라마틱하게 쓸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이면서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원장은 내 경력과 취미와 특기를 종합적으로 들여다보고 이런 시대에 가장 적합한 멘토이자 코치라고 판단했다. 그 판단에 나도 동의했기에 출근을 한다.


돌이켜보면 사람이 흔한 것 같아도 내가 찾는 “그” 사람은 찾기 어렵다. 사랑도, 친구도, 직원도, 동료도 그렇다. 부산은 서울의 학원가보다 유행이 한 템포 느린 탓인지, 최근 들어서야 독서 교육을 전담할 그야말로 “독서가”이면서 동시에 “글쟁이”를 구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과거 학원 경력, 강의 경력보다 그 사람이 쌓아 온 지적인 세계를 면밀히 알아내야만 한다. 그건 상당히 시간이 걸리는 일일 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이 사람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그런 사람인지 가려낼 방법이 없으면 그야말로 “방법”이 없다.


딸과 한가롭게 보내던 토요일 오후, 첫 번째 면접을 봤던 곳에서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으나 휴대폰 번호여서 받아봤더니 그랬다. 대치동에 본원을 둔 유명한 문해력 학원의 지역 분점이었다. 낮 두 시부터 밤 열 시까지 운영하는 시스템, 초등학생에게 <총ㆍ균ㆍ쇠>와 <사피엔스>를 조각내서라도 읽히는 학원이었다. 기억하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지만 내 검정고시 이력의 배경까지 물었던 그 학원이었다. 내가 일을 구했는지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그렇게 짧은 통화가 끝났다. 8월 안에 전화를 해준다는 전화가 추석 때 왔다. 인생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그러니 결국, 끝까지 살아봐야 한다. 살아봐야 안다.




끝인사

이 연재는 여기서 마무리를 하려 합니다. 50개의 글을 채우려 했는데, 이만하면 된 것 같습니다. 딸과 함께 본 꽃을 소재로 소소한 이야기를 풀어내려던 연재는 딸의 투병기에서 저에 실업 및 재취업기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심난했던 세월 속에서도 계절은 갔고 꽃은 피었습니다. 그 꽃을 함께 보며 딸은 건강을 회복했고 저는 좋아하는 책과 글쓰기가 돈이 되는 세상으로 갔습니다. 딸이 학교에 적응했듯, 저도 새 일과 직장에 적응해야 될 시간입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지난 화요일, 딸은 체육 수행 평가에서 기준인 180개를 훌쩍 넘겨 197개를 했습니다. 언젠간 말했듯이, 우리 가족은 저만 기준 이상을 달성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딸과 함께 꽃을 보네>의 문을 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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