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꽃을 보네 39
두 번째 면접을 본 곳에서도 연락이 없었다. 앞서 썼듯이 그 사이 실업급여를 신청했고 논술 고수를 찾는 알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린다. 지난 주말엔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최근 지원한 곳이었다. 전화를 받으니 “최영훈 박사님 되십니까.”하고 운을 뗀다. 박사는 무슨, 속으로 중얼거리고 본인임을 밝히고 대화를 이어갔다. 월요일에 면접을 보기로 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날의 오후다.
다른 때 안 그랬는데, 이번엔 회사 이름이 특이해서 대표 이름과 회사 이름을 검색해 봤다. 대표가 부산에서 제법 유명한 국어 일타강사였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의대 진학 컨설팅으로도 유명하다. 그 대표가 새로 구상한 사업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적절한 인력이 필요하여 구인 공고를 냈고, 그가 내 이력서를 확인한 뒤 연락을 했던 것이다. 월요일 두 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집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 떨어진, 딸이 다니는 학원이 있는 소위 학원가의 한 건물로 들어갔다. 그 건물 옆 건물은 부산에서 가장 유명하고, 어쩌면 가장 오래됐을 독립서점이 자리하고 있다. 공고에 나온 사무실은 4층, 작은 사무실을 상상하며 올라갔다. 내 짐작이 틀렸다. 3층과 4층을 다 쓰는, 제법 규모가 있는 학원이었다. 컨설팅과 사교육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는 곳이었던 것이다.
안내를 받아 원장실로 들어갔다. 알아본 바로는 그는 나보다 한 살 많았다. 사진으로 봤을 땐 아주 잘 생긴 중년의 사내였다. 마주 앉아 보니, 이번 짐작은 맞았다. 그렇게 대화를 했다. 아, 이 사람은 자기 수준에 맞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어서 날 불렀나 보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긴 대화를 했다. 그는 내가 원하는 포지션과 함께 다른 포지션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는 그 포지션이 나에게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나도 동의했다.
준비한 시범 강의를 하고 그에게 새로운 포지션과 관련한 자료를 넘겨받았다. 하루, 이틀 후에 연락하겠다. 생각을 좀 정리해 보시라. 그때 밥을 먹던지, 술을 한 잔 하던지 하자. 나랑 얘기하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 이런 말을 한 후, 엘리베이터까지 날 배웅해 줬다.
부산시립박물관 정문은, 당연하게도 박물관 본관과 정면으로 마주 본다. 권위주의 시대의 건축 특성인지, 그도 아니면 근정전의 구도를 흉내 낸 것인지 건축가의 의도는 알 수 없으나 그 문을 들어설 때마다 난 왕을 향해 다가가는 느낌을 받곤 한다. 아마 정문과 본관 사이의 놓인 긴 진입로와 그 포장, 양 옆에 잘 정돈된 뜰과 뜰에 놓인 석상과 석등 때문에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일 테다.
재미있는 건, 정문을 들어오자마자 담의 안쪽을 타고 양쪽으로 산책로가 있다는 것이다. 마치 종로의 피맛골처럼. 임금과 높은 사람들의 행차를 피해 평민들이 다녔던 그 길을 흉내 내어 산책로를 낸 느낌이 드는 것이다. 왼쪽의 산책로는 제법 오래됐으나 오른쪽의 산책로는 십여 년 전에 새로 조성됐다. 그 산책로의 초입에 대나무 숲이 있다. 박물관 왼 편 숲의 주인이 메타세쿼이아라면 오른편 숲의 주인은 대나무다.
딸의 국어 교과서엔 시조가 하나 실려 있다. 조선 후기의 시인인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다. 은둔해 살던 해남의 자연을 노래한 것인데, 그 대상 중 하나가 대나무다. 시인은 대나무에 대해 이리 노래했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찌 비었는가?
저러고도 사계절에 푸르니 그것을 좋아하노라.
난 저 첫 줄에 눈이 갔다. 그러게 대나무는 나무인가 풀인가. 검색해 보니 그 결과가 놀랍다. 잡초라는 말이 여기저기 보인다. 심지어 벼, 사탕수수와 친척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그저 풀인 것이다. 풀이 저리 크게 자라는 것도 놀랍지만 속이 빈 풀이 단단한 것도 놀랍다. 그런데, 또 그렇게 단단한 것이 얇고 가늘게 쪼개져 부드럽게 변하는 것도 놀랍다. 그뿐인가, 빈속에 뭘 채워 구우면 자신의 것을 채워진 그것들 안으로 넣어주어 성질을 변하게 하니, 이 또한 놀랍다. 겨우 풀에 불과한 것이.
대나무는 벽사(辟邪)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것을 태울 때 나는 소리가 귀신을 놀라게 해 물리친다는 믿음이 그 기원이라고도 하는데, 점집이나 무당집에 가면 대나무를 높게 세워두는 걸 보면 불에 타기도 전에 물리치는 효험이 있는 모양이다. 이런 효험이 가장 많은 건 오죽(烏竹)이다. 말 그대로 검은 대나무로, 대나무 중에서도 가는 편이다. 강릉의 오죽헌(烏竹軒)이라는 이름 또한 뒤뜰에 심긴 검은색 대나무 숲에 기인하다.
오죽은 대나무 정원이 있는 곳이면 쉽게 볼 수 있으나 자연적으로 조성된 곳이라면 앞서 말한 강릉의 오죽헌이 유명하다. 필자는 경남 고성에서 제법 큰 규모의 오죽림을 본 적이 있다. 워낙에 벽사의 효험이 높다는 믿음 때문에 사람들이 그 잔가지조차 가져가려 해서, 건너편 조선소와 마을에선 제법 보호를 위해 마음을 쓰고 있다고 들었다.
대나무는 불에 타지 않아도 충분히 큰 소리를 낸다. 다른 나무 소리는 가려낼 수 없지만 대나무의 소리는 분명히 가려낼 수 있다. 바람이 불면 소리를 낸다. 바람이 강하면 소리도 강해진다. 강한 소리는 어느 대나무의 것도 아닌 대나무 숲의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대나무의 소리이자 내 앞에서 흔들리는 대나무의 소리이며 모두에게 가닿을 수 있는 소리이지만 들으려 하는 이에게 더 크고 깊이 울리는 소리이다.
바람이 시원한 건지, 소리가 시원한 건지, 대나무 숲에 들어간 이는 그 상쾌함의 근원을 가려낼 수 없다. 다만 안과 밖의 차이를 가려낼 뿐이다. 여윈 것들이 서로의 어깨에 기대서서 빛을 가려 날 숨겨준다. 밖에 있는 이에겐 오지 말라는 심난한 소리이나 들어온 이에게 쉬어가라 말하는 위로의 소리이다. 함께 흔들리며 함께 소리를 내며 사람도 대나무가 된다. 밖에서 흔들리며 속내를 가로지르던 소음들이 대나무 숲에서 가라앉는다. 파도 같은 소리가 밀물처럼 밀려와 썰물처럼 근심을 가져간다.
연락을 기다리는 한, 이틀 동안 딸은 밤마다 영재 교육원의 과제를 해나갔다. 소재가 특이하다. 열여섯 살 소녀가 어느 날, 자신이 5백 년간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된 후의 이야기다. 장르는 SF 소설. 당연히 영어로 써야 한다. 그것도 육필로, A4 다섯 장. 비슷한 모티브가 있는 소설과 영화에 대해 딸과 이야기를 나눴다. 소설적, 영화적 장치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플롯을 포스트잇에 메모해서 붙여 놓은 뒤, 그에 맞게 단락을 구성하고 분량을 조절해 보라고 했다.
딸은 그렇게 진행을 시켜서 어젯밤, 네 장까지 썼다고 내게 말해줬다. 그러고 자러 갔다. 침대에 누운 딸을 한 번 꼭 안아주고, 오늘도 고생했다고 말해줬다. 그렇다. 애나 어른이나 주어진 일상을 살아내는 건 고생이다. 나름의 전력을 다해 살아내는 것이다. 딸은 금세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