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의 만남 3. 독서가로 가는 여정과 완독

아빠 품에서 시작하는 문해력 수업 11

by 최영훈

서서히 올라가는 난이도

누군가 그러더군요. 책을 거의 읽지 않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양자역학에 흥미가 당긴다고 해서, 바로 서점에 가서 관련 책을 사서 읽을 수는 없다고요. 철학도 마찬가지고 사회과학도, 심지어 문학조차도 입문과 초보의 순간이 있다는 말이겠죠. 이 의견에 동의합니다. 전 독서력(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혹은 독해력의 성장 과정이 나선형 계단을 오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그 반경이 아주 큰 나선형 계단과 말이죠. 혹시 순천에 있는 국가정원 가보셨나요. 그곳에 가면 호수에 여섯 개의 언덕이 있습니다. 정상에 오르면 전망이 좋죠. 그 언덕을 오르는 길이 나선형입니다. 그 경사가 아주 완만해서 오른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입니다. 때문에 정상까지는 제법 걸어야 하죠. 독서가의 길도 이와 비슷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보죠. 전 삼십 대 중반에 제 자신이 궁금하여 스스로를 탐구해 보고자 석사 시절 살짝 맛만 봤던 라캉이라는 학자를 읽어 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다고 덥석 라캉이 쓴 책을 읽을 수는 없으니 그 학자에 대해 쉽게 쓴 그나마 대중적인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우치다 타츠루 교수님이 쓰신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와 숀 호머의 <라캉 읽기>, 권택영 교수님의 <감각의 제국> 같은 책들이 그런 책들이죠. 그러다 라캉을 오래 공부한 백상현 선생님의 책을 통해 그 범위를 좀 넓혀갔고 슬라보에 지젝을 필두로 한 슬로베니아 학파의 책도 몇 권 읽었죠. 그 이후에서야 라캉의 <세미나>가 실린 책이나 <세미나> 그 자체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마음에 둔 사람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약간 올드 한 사랑 법이라고 할 수 있죠. 예전엔 맘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대뜸 들이대지 않았습니다. 주변 사람들하고 친해지고 이런저런 자리에서 몇 번 마주치고 그러다 다른 지인들이 동석한 식사나 술자리를 몇 번 갖고 그러다 단 둘이 만난 뒤 호감이 좀 생겼다 싶으면 그제야 슬며시 마음을 내어 보이죠. 마음을 받아준다고 또 바로 사랑이 확 진전되나요. 사랑하는 만큼 조심스럽게 가까워지죠. 전 독서도 이와 비슷하다고 봅니다. 특히 좋아하는 학자나 어려운 이론을 알고 싶을 땐 꼭 이래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에 가서 그걸 전문적으로 배울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죠.


완등을 위한 쉬운 코스

더 나아가, 독서력의 성장 자체가 이런 단계를 동반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단계에서 단계로 오르는 과정엔, 앞선 글에서 잠시 얘기했던 완독이라는 경험이 필요수적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보죠. 등산 좋아하시나요? 낮은 산이든, 높은 산이든 정상에 오르는 길엔 여러 코스가 있죠. 이 등산로 중 가장 인기 있는 등산로는 가장 대중적인 등산로입니다. 그 산을 처음 찾은 사람도, 등산이 처음인 사람도 체력과 시간만 있으면 천천히 오를 수 있는 코스죠. 반면 난코스도 있습니다. 정상까지 오르는 시간은 짧지만 길이 험하고 가파르죠. 심지어 암벽도 있고 등산로가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산악회에 등록된 등산 마니아나 산악인들이 연습 삼아 선택하는 코스죠. 다시 말하지만 이 코스는 거리도 짧고 시간도 적게 들지만 험난합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독서는 특히 벼락치기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대입 수험생들이 국어 앞에서 좌절하는 것도 어쩌면 이 때문이겠죠. 집을 팔아도 안 된다는 말도 나오는 것일 테고요. 고등학교 들어와서 노력해도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맞는 말 같습니다. 몇 개월 만에 어휘가 늘고 문해력과 독해력이 상승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까요. 국어는 정말, 그야말로 단숨에 질러가는 코스가 존재하지 않는 과목인지도 모릅니다. 설령 그 길이 있다고 해도 그 길은 애초에 쉬운 코스를 통해 수도 없이 산에 오른 사람, 이 산 저 산, 쉬운 산과 험난한 산을 두루 경험해 본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길인지도 모릅니다. 다시 말하지만 독서는 벼락치기가 안 됩니다. 결국, 어린 시절부터 묵묵히 읽어나간 끝에 니체나 양자 역학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죠.


권장도서에 담긴 의미

사실, 이런 과정의 중요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학교를 비롯한 교육 당국에서는 학년과 연령에 맞는 권장도서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권장도서는 일종의 완등을 향한 완독의 계단이죠. 그래서 권장도서의 핵심은 분야의 다양성과 난이도의 적절성입니다. 은채가 1학년 겨울 방학 때 받아온 권장도서 목록을 보며, 함께 학교 도서관, 주민 센터 도서관, 알라딘 중고서점을 오가며 책을 빌리거나 사서 읽어 가며 알게 됐죠.


앞서 말했듯, 분야가 아주 다양했습니다. 역사, 과학, 문화, 문학, 사회 등 전 분야에 걸쳐 고르게 담겨 있었죠. 분야보다 더 주목한 건 난이도의 폭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죠. 어떤 책은 제법 글도 많고 두께도 있는 중편 소설 같지만, 어떤 책은 그야말로 그림 동화 같은 책도 있습니다. 전 그 목록에 담긴 책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완독의 기쁨을 선사하기 위해 얼마나 심사숙고하셨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 초등학교 1학년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읽기의 수준은 천차만별입니다. 그래서 독서는 자기 취향과 수준에 맞춰서 하는 것이지 남들 다 읽는 책을 읽는 것은 아니죠. 그러면 오히려 너무 쉽거나 너무 어려운 책을 읽어서 흥미를 읽거나 좌절해서 책과 담을 쌓을 수도 있죠. 아이들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아니 아이들은 더하겠죠. 권장도서 30권 중에 쉽게 읽어낼 책이 없다면 아이의 좌절감은 상당할 겁니다. 그 아이의 부모가 겪을 불안도 제법 클 테고 말이죠. 우리 아이만 너무 처진 거 아닌가 싶어서 방학 때뿐만 아니라 2학년 때부터 사교육에 박차를 가할 수도 있고 말이죠. 그걸 아는 선생님들이 분야와 난이도를 고르게 분포시켰던 것입니다. 어떤 책이라도 한 권을 다 읽었다는 성취감을 맛보게 하기 위한 전략적 모음이었던 것이죠.


완독을 위한 선택

앞선 글에서도 말했듯이 완독은 독서가라는 산맥을 종주하는 과정에서 책이라는 산을 오르게 하는 튼튼한 계단입니다. 완독이 좌절되면 정상은 멀게 느껴지고 코스는 험난해 보이죠. 난 틀렸어. 먼저 가. 이런 생각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이런 생각을 갖지 않게 하려면 처음 책을 읽을 때부터 완독의 경험을 반복적으로 가져야만 합니다. 부모는 그 경험을 위해 재미와 학습의 경계를 쉴 새 없이 오가야만 하죠.


은채랑 방학 때마다 서점에 가면 아이와 함께 온 부모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부분 엄마들이죠. 저처럼 스마트폰으로 목록을 확인해 가면서 권장도서를 찾아다녔습니다. 아이들은 그런 엄마의 속도 모르고 학습 만화 코너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르죠. 학교 도서관을 가도 아이들이 제일 많이 읽고 있는 게 그런 것이니까요. 당시 은채도 그랬습니다. 모험과 추리가 섞인 책을 좋아했었죠. 1학년 겨울 방학 때도 중고서점에서 권장 도서인 미하엘 옌데의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을 사면서 <수학 유령의 스파이 수학>을 함께 사줬고, 주민 센터 도서관에서는 권장 도서 대신 <78층 나무집>을 빌렸죠. 그래서 당시 은채의 책상 위에는 사고 빌린 권장 도서 네 권과, 희망(?) 도서 두 권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알다시피 초등학생부터 어른까지 권장 도서 목록은 많습니다. 언론이나 유명한 대학에서는 “꼭 읽어야 할 한국 문학.”, “대학 새내기가 꼭 읽어야 할 고전 100선.”, “최고 경영자가 선택한 여름휴가 때 가져갈 책.”등을 소개하죠. 솔직히 이런 책들 중에 흥미를 끌거나 쉽게 손에 잡히는 책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반대로 “올여름 최고의 미스터리 10선”이나 “000이 추천하는 호캉스를 더 시원하게 하는 스릴러”와 같은 장르 문학을 권하기도 합니다.


차근차근, 묵묵히

부모들은 가장 짧은 코스로 단숨에 오르기 원하죠. 필요한 책만 읽어내길 바라는 겁니다. 그러나 그건 욕심입니다. 권장도서와 아이가 읽고 싶은 책이 겹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럴 리가 없죠. 앞서 썼듯이, 책을 좋아하는 은채도 권장도서보다 더 좋아하는 책이 있었으니까요. 다시 말하지만 아이를 독서가로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경험은 완독입니다. 권장도서는 그다음입니다.


아이가 권장도서의 완독에 거듭 실패한다면 부모는 재미있는 책, 쉬운 책, 얇은 책을 찾아 줘야 합니다. 아이에게 맞는 쉬운 코스를 먼저 오르게 하는 것이죠. 그 반복 속에 독서의 힘이 좀 붙었다 싶으면 다시 권장도서로, 진지한 책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 왕복을 아이와 함께 꾸준히 반복하는 부모의 역할입니다.


평소에 독서를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느 권장 도서 목록에서도 책을 선택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책이라는 산을 처음 간다면 쉬운 코스로 가야 합니다. 알고 싶은 철학자가 있다면 나선형 계단처럼 그 철학자를 향해가는 다양한 수준의 계단을 하나씩 밟고 천천히 올라야 합니다. 올라가고 있는지 체감하지 못할 정도로 완만한 계단이라도 돌고 돌아 오르다 보면 꼭대기에 다다르게 되죠.


또, 다시 말하지만 독서엔 벼락치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지식을 맛보기로 모아 놓은 책들은 산의 풍경이 담긴 엽서에 불과하죠. 그런 엽서를 아무리 본 들, 그 산을 등산한 사람의 경험을 살 수 있을까요?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책으로 세상의 모든 지식을, 요즘 유행하는 철학자를 패스트푸드처럼 허겁지겁 먹으려 하지 마세요. 아이에게도 그런 경험을 하게 하지 마시고요.


처음 책을 손에 잡은 순간부터 묵묵히, 한 권 한 권 읽다 보면 원하는 수준에 다다르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엄홍길 대장의 등산이 도봉산에서 시작됐다는 걸 잊지 마세요. 아무리 위대한 산악인이라도 뒷산을 처음 오르던 순간이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지식의 세계도, 책이라는 세계도 그런 마음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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