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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나래 Jun 23. 2021

들기름 막국수의 참사

일은 좀 합니다만 요리는...

그예 사달이 났다.

퇴근 후 저녁 메뉴로 들기름 막국수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지난번에 한번 해 본 경험이 있어 자신감 뿜뿜이었다.

게다가 들기름 막국수의 레시피는 비교적 간단했다. 만만하게 따라 해 볼 엄두가 나는 요리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면을 넣고 6분에서 7분가량 삶은 후, 찬 물에 씻어 건져내어 면을 준비한다. 그 사이에 양념장을 만들면 끝. 양념장은 레시피에 있는 재료들을 넣고 잘 섞어주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간장 2스푼에 쯔유 간장 1스푼 그리고 들기름 2스푼이다. 나중에 쪽파를 송송 썰고 김가루를 뿌려주고 무순이나 오이채를 얹으면 완성이니 이만하면 레시피는 남들에게는 하-하, 내게도 중-하 정도는 되었다.

이 음식은 그저 계량만 잘하면 되는 것이었다. 내심 뿌듯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들기름 막국수는 나를 쥐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그냥 밥 먹는 숟가락으로 계량했어야 했다. 언제 구입했는지 구입 후 사용한 기억이 가물가물한 계량스푼이 어쩌자고 그 순간 낸 눈에 들어왔느냔 말이다. 내가 계량했던 계량스푼은 밥 먹는 숟가락으로 계량을 해보니 3스푼이나 들어간다.


그러니 나는 네이버가 가르쳐준 것보다 3배를 넣은 것이었다.
게다가 나의 간장은 두 번 달인 진한 간장이었던 것.
아이고... 채소를 더 넣어도 회복이 안되었다.

지난번에도 살짝 짜게 되어 고혈압이 있는 남편이 조금만 먹었었다. 그래도 그때는 우리 둘 다 맛나게 먹었다. 내심 뿌듯했던 경험이라 한 번 더 도전했더니 사달이 난 것이다. 이번에는 좀 짜게 먹는 내 입맛에도 "이건 아닌데"였다.

비빔 국수가 물국수로 변하고 맛이 덜해 들기름을 더 넣어도 아닌 건 아닌 것이었다.

엄마가 시골에서 농사지은 들깨로 직접 짜주신 들기름만 아깝게 되었다.

국수 좋아하는 남편은 약간 설레는 맘으로 기다렸을 밥상이었을 텐데... 이제는 색다른 거 하지 말고 그냥 밥을 달란다. 어흐흐흑..


난이도 중-하 정도인 들기름 막국수가 내게는 난이도 상-상이 되다니 이제 시집온 새댁도 아니고 이게 뭔 일이람. 나는 여자인가 아닌가, 나는 주부인가 아닌가 자괴감이 몰려오는 나의 설거지하는 뒤통수가 넘나도 부끄러웠다. 뷔페에서 함께 맛있게 먹었던 들기름 막국수는 이제 우리 집 금기 요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번에 일어난 이 사달이 잊힐만하면 다시 들기름 막국수에 도전해 보아야 주부 체면이 설 것 같다. 살림을 28년째 하고 있으면서도 왜 이렇게 나에게는 생경한 지 모르겠다.


직장 일도 잘하면서 요리도 잘하는
우리 이 과장 같은 여자는 대체 어느 별에서 온 걸까?
그러는 나는 어느 행성에서 떨어진 이방인인가 말이지.




사진 bakd-raw-by-karolin-baitinger-4txrnC2bzwM-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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