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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임복 Dec 21. 2019

007 웨딩홀의 추억

그때. 좋았었는데

 오래간만에 가까운 친척 결혼식을 다녀왔다. 그동안 고객사나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의 결혼식을 갈 일은 있었으나, 따로 정장을 입지는 않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넥타이와 구두를 안 신었으니 거의 7~8년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꽤 어색했다. 


결혼식은 즐거웠고, 음식은 맛있었다. 

그런데 나는 결혼식장에 올 때마다 신랑 신부 다음으로 '일하는 분들'이 눈에 밟힌다.



 서빙을 하는 분들. 분주하게 일하는 그들은 눈에 결혼식장의 주역이 아니다. 내가 이들에 대해 잘 아는 이유는 한 가지. 

 해봤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군대를 가기 전 2년 그리고 다녀와서 1년. 

주말 웨딩홀에서 토요일과 일요일. 아르바이트를 했다. 내가 했던 일은 정확히 그들과 같았다. 

선릉역에 위치한 샹제리제 호텔 웨딩홀이 가장 오래 일한 곳이었다.  


친구의 소개로 가기 시작했었는데 

아침 8시~8시 30분에는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고 - 정장 바지, 조끼, 나비넥타이

한 자리에 모여서 기물을 닦은 후(수저, 나이프), 냅킨을 예쁘게 접고

홀에 들어가 셋팅을 한다. 


둥그런 식탁을 굴려와서 펼치고, 그 위에는 멋지게 촤악. 한 번에 린넨을 펼쳐서 마무리. 

다음 스텝은 고블렛 잔과 냅킨을 놓고, 그날의 음식에 따라 나이프와 포크를 가지런하게 셋팅.

이때 잔이 들어있는 통을 옆구리 탁 끼고 하나씩 놓아줘야 있어 보인다.


점심을 먹은 후 이제 예식이 시작된다. 

예식이 시작되면 바로 정장 재킷을 갖추어 입은 홀 매니저에 의한 지휘가 시작된다. 

일단 물을 따르고, 손님들을 자리에 안쪽부터 안내한 후 

와인을 따른다. 와인과 수프를 따를 때에는 수건을 하나 왼팔에 받친 후 병 주둥이에 남아있는 와인과 수프를 슥 닦아서 떨어지게 하지 않는 게 포인트. 


음식을 차례차례 서빙한 후.

다시 지시에 따라 접시를 빼야 한다. 

이때 코스 요리의 경우에는 좀 쉽고, 

뷔페의 경우에는 죽어라 돌아다니며 빈 그릇을 사냥해야 한다. 


접시를 많이 들기 위해서는 왼손가락에 두 개를 받쳐 넣은 후 손목 부분에 하나를 올린다. 

나머지는 안정적으로 쌓아 올리면 되는데, 

가끔 서빙하는 친구들끼리 누가 더 많이 쌓는지를 시합하고 했다.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음식은 갈비탕. 그릇은 워낙 무겁고, 뜨거워 조심해야 한다.

물론 스테이크도 뜨거운 건 마찬가지. 


가끔 소주 파티가 열리는 테이블은 주의해야 했다. 언제 시비가 들어올지 모른다. 

어떤 손님은 서빙하는 친구에게 와서 술 좀 따라보라고 했던 것도 기억난다. 참 요상한 시대였다.


예식은 신랑 신부에게는 화려한 하루의 행사이지만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잠시 시작했다가 잠시 뒤  끝나는 하루 2~3건의 업무다. 

그래서 내가 결혼할 때에는 


'난 웨딩홀에서 안 해야지' 싶었으나. 결국엔 : )


예식이 끝나고 마무리하는 시간이 되면. 

다리는 붓고, 모두가 지친다. 


뷔페를 한 날은 모든 음식을 치우기 전 잠깐 파티를 했었다.

남은 음식들은 상하면 안되기 때문에 모두 버리는 게 원칙. 

남아있는 음식이라면 먹다 남은 음식을 생각할 수 있는데 아니다.


초밥 두 판을 만들어서 나갔는데 한 판이 그대로 남는 경우도 있고,

산더미처럼 쌓아 올린 새우가 절반 이상 남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면 남아있는 와인과 음식들을 가지고 와서 매니저분들과 일하는 직원들과 함께 먹었다.


지금 생각해도 가장 재미있는 때였다. 그렇게 먹었는데도 살이 안 쪘던 건 얼마나 많이 걸었기 때문이었는지. 


그래서 지금도 주말에 웨딩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말 한마디라도 더 건네고, 꼭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지금도 주말 알바를 할 수 있었던 웨딩홀들에 감사하게 된다.

주말에 놀 수 없는 건 아쉬웠지만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알바를 해야 했던 시기에. 

하루. 가끔은 이틀을 주기적으로 일할 수 있었던 웨딩홀에서 받은 아르바이트 비용은 

학비와 생활비로. 내가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을 줬다.


이제 꽤 먹은 어른이 된 지금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음 스텝으로 가기 위한 '아르바이트'를 고민하게 된다. 


더 많은 고용과 좋은 일자리를 생각하고 만들어야 하는 게 다음 스텝의 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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