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 그래서, 멈추기로 했다

by 은도

제주에 내려온 지 두 달을 꽉 채운 시점, 나는 브런치를 시작했다. 육지를 떠나기 한참 전부터 제주에 가면 곧바로 브런치를 시작하겠다 계획했었지만, 실제로 시작하기까지 두 달이나 걸렸던 이유는 불안과 걱정, 의심 때문이었다.

‘누가 내 글을 읽어줄까?’

‘내가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을까?’

‘내가 뭐라고, 내가 글을 써도 될까?’


어떤 일의 시작 앞에서 나는 늘 이런 식이었다. 해보지도 않고 온갖 못 할 이유를 만들어내곤 했다. 걱정, 의심, 자격, 타인의 시선, 그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도망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이번에도 반복된 비슷한 패턴,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자괴감이 몰려왔다. 그 끝에 마주한 깨달음은, 결국 이 괴로운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시작하는 것’ 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다만, 매주 같은 요일에 글을 올리겠다는 약속은 섣불리 할 수 없었으므로 브런치북을 만들지 않고 자유롭게 글을 올리는 길을 택했다.


[028] 풍력발전기와 집.jpg 제주시 금등리


첫 글을 쓰고 ‘발행’ 버튼을 누르기까지의 망설임, 누르는 순간의 자포자기 격 용기, 그 후에 밀려오던 부끄러움, ‘지금이라도 취소할까?’ 갈등했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사실 6개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늘 비슷한 고민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게 뭐라고 그렇게까지 고민하고 갈등하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를 드러내는 게 어색하고 무서워 SNS조차 하지 않는 나를 아는 사람들은 조금 이해해 줄지도 모르겠다.

SNS의 원조 격인 싸이월드 시절, 나는 중학생이었다. 또래 친구들은 싸이월드에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고, 친구의 미니홈피에 찾아가 댓글을 달았다. 도토리를 사서 좋아하는 음악을 깔고 테마와 배경을 꾸몄다. 친구들의 화려한 미니홈피들 속 내 것은 밋밋하고 초라했다.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그 욕구가 내게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도 그들과 같은 욕구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세상에 속하고 싶었다. 다만, 나는 그게 못 견디게 민망하고 부끄러웠을 뿐이다.

지금도 나는 SNS를 하지 않는다. SNS 계정이 없으면 정보조차 얻기 힘든 세상이라 계정을 만들기는 했지만 내 계정은 예전 미니홈피처럼 텅 비어 있다. 그 텅 빈 계정은 어쩌면 어릴 때부터 남들과 비교하며 주눅 들고, 나를 질책하고 미워하며 스스로의 존재를 하얗게 지워간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유지하고 있는 텅 빈 계정은 '나는 유령인 듯하지만 분명 여기 있다'고, '용기는 없지만 나도 세상과 연결되고 싶다'고 외치는 아우성일지도 모르겠다.


[028] 트랙터와 밭.jpg 제주시 금등리


이토록 불안도 걱정도, 나를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많은 내가 6개월이 넘도록 글을 쓰고 있다. 매주 한 편씩의 글을 올리기로 한 나와의 약속을 몇 달 동안 잘 지켜내면서 신뢰가 생겼고, 브런치북을 만들어 정식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들의 공감과 응원을 받으며 스스로에게 쓸 자격도 주었다. 쓸 거리가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 날에도, 무기력한 날에도, 시간이 부족한 날에도, 결국 글을 썼다. 글은 나와의 약속이자, 내 글을 읽어주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글이 있어 나를 알아가고, 이해하고, 조금 용서할 수 있었다. 글이 쌓이는 만큼 나에 대한 애정이 쌓여갔고, 글을 통해 세상과 연결될 수 있었다. 글은 내게 그런 의미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글쓰기를 숙제처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글을 쓰는 건지, 글을 써야 해서 하고 싶은 말을 만들어내는 건지, 의심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써야 할까, 쉬어야 할까, 이번에도 역시 숱한 고민을 거듭했다. 그 끝에 내린 결론은, 지금은 멈출 때라는 것. 내 안에서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하려면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는 것. 그래야 다시 온 마음을 다해 쓸 수 있다는 것.


[028] 자전거.jpg 서귀포시 상모리_활엽수 게스트하우스


그래서, 멈추기로 했다. 원칙보다 마음을 따르는 일이 어색하고 어려운 사람이라 휴재조차 어려운 나지만, 그래서 해보기로 했다. 그 어려운 일을.



*그래서, 휴재를 해보려고 합니다.

고지식하고 답답한 저라는 사람은 휴재조차 쉽지 않네요.

이렇게 구구절절 휴재를 결정한 배경을 설명하는 이유입니다.

갈팡질팡하는 제 뒤늦은 사춘기를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덕분에 무럭무럭 성장 중입니다.

남은 2025년은 조금 자유롭게 생각해보려 합니다.

글감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잔뜩 쌓아 2026년에 돌아오겠습니다.

(매거진 글로는 찾아뵐 수도 있겠습니다.)

추운 연말, 마음만은 따뜻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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