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나무에는 초여름부터 초록색 귤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나무에 달린 초록색 귤을 처음 본 나는 ‘저게 나중에 노랗게 익는 건가? 저 귤은 원래 초록색 귤일까? 못 먹는 귤인 걸까?’ 갖가지 의문을 품었다. 가을이 되고 날씨가 선선해지자 모든 의문이 풀렸다. 귤의 뒤꽁무니부터 노랗게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늦가을이 되자, 내가 아는 노란 귤이 되었다.
제주도민들 사이에는 ‘귤을 돈 주고 사 먹는 사람은 인생을 잘못 산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귤이 흔하다고 한다. 처음 제주에 왔을 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외로운 이주민이니 마트에서 귤을 사 먹어야겠구나’ 생각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왠지 씁쓸해지는 것이었다. 그런 내게 공짜 귤이 생겼다.
카페 바로 옆집에는 할머니 한 분이 혼자 살고 계신다. 할머니는 밭을 일구고 꽃을 가꾸며 일상을 보내시는데, 이따금 밭에서 수확한 농작물을 카페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신다. 노랗게 익은 귤도 그중 하나였다.
지난 초여름, 할머니는 아기 살결처럼 새하얗고 포슬포슬한 찐 감자 한 바구니를 안고 카페에 오셨다. 마침 배고팠던 참이라 동그란 감자를 한입에 몽땅 넣고 우걱우걱 씹었다. 어릴 적 외할머니가 쪄준 감자처럼 달큼하고 정겨운 맛이었다.
초가을 퇴근길, 저 멀리 마당에 쪼그려 앉아 계신 할머니를 보고 큰 소리로 인사를 하자, 할머니는 고구마를 가져가라며 우리를 불렀다. 앉아계신 쪽으로 다가가니, 흙이 잔뜩 묻은 탐스러운 고구마들이 바닥에 널려 있었다. 할머니는 그중에 예쁜 것만 고르고 골라 흙을 털어 까만 비닐봉지에 담아주셨다. 가만히 있기 민망하여 도와드리려고 손을 뻗자, 할머니는 손에 흙 묻는다며 만지지 말라고 하셨다. 묵직해진 봉지를 받아 들고 마당을 나서며 나는 재차 뒤를 돌아 감사하다고 꾸벅 인사를 했다.
푸릇하던 열매가 제법 황금빛으로 물든 초겨울, 카페에 들른 할머니는 귤을 가지러 오라고 하셨다. 홀로 할머니를 따라 창고에 들어서자, 커다란 노란색 플라스틱 상자에 노지 귤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아이 주먹만 한 귤부터 성인 남자 주먹만 한 귤까지 크기도 제각각, 노랗게 잘 익은 귤부터 아직 푸른 기가 도는 귤까지 색깔도 제각각이었다. 울퉁불퉁한 모양에 윤기도 없었지만, 어쩐지 마트에서 파는 균일하고 뺀질뺀질한 귤보다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족히 15kg은 넘어 보이는 무게에 당황하여 다른 직원과 다시 오겠다고 하자, 할머니는 나를 창고 안쪽으로 불렀다. 거기에는 방금 본 귤보다 더 고르고 예쁜 귤들이 담긴 상자가 있었다. 마치 장롱 안 이불 사이에 숨겨둔 쌈짓돈을 꺼내 손녀에게 용돈을 주듯, 할머니는 “이건 팔아도 될 만큼 예뻐서 내가 따로 모아놨어. 예쁜 아가씨니까 예쁜 귤 먹어야지. 누구 주지 말고 숨겨뒀다가 집에 가져가서 혼자 먹어.”라고 소곤소곤 말하며 비닐봉지에 귤을 한가득 담아주셨다. 귤을 받아 들고 카페로 돌아가는 길, 나는 또 재차 뒤를 돌아보며 할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할머니와 짧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리를 뜰 때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는 건, 단지 얻어먹는 것이 죄송스러워서거나 감사해서만은 아니다. 지난 가을, 추석을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다. 카페 앞에서 꽃밭을 가꾸고 계신 할머니를 만났다. 나는 꽃의 이름을 물으며 말을 걸었다. ‘봉숭아, 금잔화, 코스모스...’ 내가 가리키는 꽃의 이름을 줄줄 읊던 할머니는 자식 이야기를 꺼냈다. 서울에 사는 자녀들이 추석 때 모두 오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녀들이 좋은 회사에 다닌다고 수줍게 자랑을 늘어놓으셨다. 그때 보았던 할머니의 행복한 미소를 나는 가끔 떠올린다. 그럴 때면 무더운 여름, 홀로 집 앞에 앉아 부채질을 하며 오후 시간을 보내던 할머니의 모습이 겹쳐진다. 할머니를 등지고 돌아가는 길에 재차 뒤를 돌아보는 건 그 기억 때문일 것이다.
이웃집 할머니가 나누어주시는 포슬포슬 탐스러운 황금빛 정 덕분에, 나는 외로운 이주민에서 공짜 귤을 얻어먹는 제주도민이 되었다. 그런 할머니에게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찐 감자가 담겨 있던 바구니를 깨끗이 씻어 돌려드리며 맛있게 잘 먹었다는 인사를 건네는 것, 묵직한 비닐봉지를 건네받으며 잘 먹겠다고 감사 인사를 드리는 것, 가끔 우연히 마주치면 잠시 말동무를 해드리는 것, 고작 그뿐이다. 출근하기 바빠서, 퇴근하기 바빠서라는 핑계로 혼자 마당에 앉아계신 할머니를 보고도 그냥 지나친 적도 여러 번. 그럴 때면 집에 돌아와서도 캄캄한 마당에 동그마니 남아 계실 할머니의 구부정한 몸이 아른거린다.
할머니가 담아주신 예쁜 귤의 껍질을 까며 나는 할머니의 수줍은 미소를 떠올린다. 다정하고 포근한 말씨를 떠올린다. 굽은 허리를 떠올린다. 손톱 사이 흙이 껴있던 거친 손을 떠올린다. 그 손으로 키워낸 감자와, 고구마와, 귤을 떠올린다. 그 손끝에서 활짝 피어난 봉숭아꽃을, 금잔화를, 코스모스를 떠올린다.
샛노란 과육을 입 안에 넣고 새콤달콤한 과즙을 터트리며 생각한다. 내일은 출근길에 백설기를 사 들고 할머니를 찾아가 귤 맛있게 잘 먹었다고 감사 인사를 전해야겠다고. 그렇게나마 내가 받은 따뜻한 정을 조금이라도 돌려드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