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024] 꼬리표의 함정

by 은도

즐겨보는 연애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최근에는 돌싱 특집이 방영됐는데, 개성 넘치는 캐릭터의 출연진과 얽히고설킨 러브라인 덕에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사랑이 간절한 돌싱들의 솔직한 감정표현과 적극적인 구애의 과정을 나는 조금 애틋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이혼의 아픔을 겪고도 다시 사랑을 꿈꾸는 그 용기가 대단하게도 느껴졌다. 하지만 인터넷 세상에서는 그들을 향한 비난과 무례한 말들이 넘쳐났다. 그 말들에는 ‘이혼’이라는 꼬리표에 대한 편견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글로 담기에도 가혹한 언어들, 그 언어들에 상처받은 이들은 출연진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나를 찔렀고, 같은 꼬리표를 단 수많은 이들도 찔렀을 것이다.


[024] 신천리 정자.jpg 서귀포시 신천리


과거의 나는 타인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이 아니었다. 타인에, 인간에 무관심하기까지 했다. 내 세상은 상식과 원칙과 논리로만 굴러갔다. 그것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보이는 사실과 정보만으로 사람을 평가했고 그 뒤에 감춰진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복잡하고 모호한 문학을 좋아하지 않았고 답이 명확한 수학을 좋아했다. 감정선이 복잡한 로맨스물보다는 단순하고 화끈한 액션물을 좋아했다. 책은 추리소설만 편식해서 읽었다. 그때 내 세상은 그랬다. 단순하고 명확하지만 좁은 세상.


그런 내 세상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결혼을 했으면 배우자와 가정에만 충실해야 하는 것이 내 상식이었고, 잘못을 했다면 사과하고 책임지는 것이 내 원칙이었고, 세상이 내게 그런 상식과 원칙을 가르쳤으니 피해자인 나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엄벌해야 논리에 맞는 것이었다. 그러나 좁은 세상으로부터 나와서 마주하게 된 진짜 세상은 상식도, 원칙도, 논리도 통하지 않는 곳이었다. 이혼은 진짜라고 믿었던 내 세상을 무너뜨렸다. 그동안 허상을 붙잡고 살아온 것 같았다. 중력이 사라지고 진공 상태인 무(無)의 공간에 부유하는 느낌이었다. 이제 무엇을 믿고 무엇을 붙들어 다시 내 세상을 만들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024] 종달리 갈대.jpg 제주시 종달리


그래도 무너진 세상에 덜렁 하나 남은 것이 있었다. 이혼녀라는 꼬리표가 붙었지만, 그 얄팍한 단어 하나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 내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이혼녀’라는 단편적인 사실 아래에 묻힌 복잡한 내 사정들, 꼬이고 꼬인 감정들을 꺼내 글로 정리했다. 내 이야기를 정리할수록 타인의 이야기도 궁금해졌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사정을 품고 사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떻게 해소하며 사는지가 말이다. 그때부터였다. 수학보다는 문학에 관심을 갖고, 액션물보다는 로맨스물을 찾고, 추리소설보다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풀어낸 작품을 읽기 시작한 것은.


무너졌던 내 세상을 다시 일으켜 세운 건 바로 그 이야기들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놓은 수많은 이야기들, 각자의 사정, 아픔, 불행. 그것을 보고 읽으며 그들과 함께 웃고, 울고, 아파했다. 그 안에서 나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조금 더 따뜻한 눈을, 넓은 품을 갖게 되었다. 이해와 공감 위에 다시 세워지고 있는 내 세상은 과거의 것보다 따뜻하다.


[024] 유지커피웍스 앞 노을.jpg 제주시 오라이동


우리는 저마다 꼬리표를 달고 산다.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커다란 것이든 작은 것이든. 그러나 그 꼬리표만으로는 한 사람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단편적인 사실이나 정보만으로 그 사람을 섣불리 재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세상이 나를 조금 더 따뜻하게 품어주길 바라듯, 우리도 타인을 그런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꼬리표보다, 보이는 것보다 그 안에 감춰진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가 서로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애틋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우리는 조금 더 따뜻해진 세상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24화[023] 다정의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