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가을일까, 겨울일까. 이맘때쯤 되면 어김없이 하는 고민이지만 이번에는 글을 써야 하므로 정확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챗GPT에게 물었다.
‘11월은 가을이야, 겨울이야?’
‘11월은 어느 쪽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보다,
두 계절이 서로 자리를 양보하는 잠깐의 틈처럼 느껴져.’
우문현답이다. 심지어 감성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11월을 그렇게 고요하고 잔잔하게 표현할 수 있는 건 GPT가 추위도 더위도 느끼지 못하는 미생물이라서라고, 혼자 삐죽대며 구시렁거렸다.
정말이지 11월의 날씨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비로소 가을이구나’ 하면 갑자기 겨울이 몰려오는 듯했다가, ‘이제 겨울인가 보다’ 하면 따뜻한 가을 날씨로 역행한다. 그래서 ‘아직 가을인가?’ 하면 보란 듯이 얼얼한 한파가 들이닥쳐 혼을 쏙 빼놓는다.
가을의 아련한 자취가 못내 아쉽기도 하지만 매년 11월, 나는 늘 겨울을 기다린다. 밤공기가 차가워지면 일찌감치 겨울 패딩을 꺼내놓고 외출할 때마다 괜히 한 번씩 만지작거린다. 한낮 최고기온이 영상 20도를 웃도는 날씨에 입을 엄두는 못 내더라도 말이다. 날씨 예보를 확인하다가 최고기온이 한 자리 수로 예상되는 날이 있으면 설레기까지 하다.
왜 남들 다 싫어하는 춥고 스산한 겨울을 좋아하느냐고 스스로에 숱하게 물어왔다. 하지만 그 이유를 나는 당최 알 수가 없다. 애초에 모든 좋아하는 감정에 대한 진짜 답은 ‘그냥’이지만, 어떤 일에서든 이유를 찾기 좋아하는 인간의 심리가 ‘이유’로 납득할 만한 변명을 만들어낼 뿐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럴듯한 변명거리만 몇 가지 찾았을 뿐이다.
첫 번째 변명은 나는 겨울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어느 계절을 왜 좋아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흔히들 언급하는 답변이다. 그래서 굳이 깊이 따지고 들지 않으면 그럭저럭 수긍이 가는 것도 같다.
두 번째 변명은 덥지 않아서다. 나는 유난히 여름의 뜨거운 열기와 후텁지근한 공기를 견디기 힘들어한다. 온몸이 쳐지는 무기력한 감각과 끈적한 몸뚱이의 느낌, 불쾌지수와 함께 짜증이 치솟는 계절이다. 그에 반해 겨울에는 아침마다 따뜻한 이불 밖을 벗어나기 힘들지언정 보송하고 심지어 포근하기까지 하니,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로 이만한 변명거리가 없다.
세 번째 변명은 다소 반항적인 내 기질 때문이다. 나는 남들이 대체로 좋아하는 것은 기피하고 남들이 대체로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기로 선택하는 괴상한 구석이 있다. 숫자 7을 싫어하고 4를 좋아한다든가,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 드라마를 두고 동 시간대 시청률 꼴찌인 드라마를 본다든가, 화창한 날씨보다는 우중충한 날씨를 좋아한다든가 하는 것도 모두 그 기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를 죽 늘어놓아 보니, 어쩐지 조금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든다. 질문을 ‘겨울이 왜 좋은지?’에서 ‘겨울의 어떤 부분이 좋은지?’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 얼핏 보기에 두 질문은 같은 질문처럼 보이지만 은근히 뉘앙스가 다르다. 뒤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나는 한겨울의 살을 에는 추위가 좋다.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을 잔뜩 주고 웅크린 채 걷다가, 날숨과 함께 온몸에 힘을 쭉 빼고 추위를 느끼는 순간이 좋다. 나는 또 겨울의 스산함이 좋다. 텅 빈 나뭇가지와 인적 드문 밤거리의 고요가 왜인지 모르게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보일러를 틀지 않은 방바닥을 맨발로 디뎠을 때의 차가운 감촉, 으슬으슬 몸을 떨며 이불 속으로 들어갔을 때의 포근한 온기, 겨울옷의 푸근한 느낌과 콤콤한 냄새, 함박눈의 순수하고 낭만적인 감성이 좋다. 느리게, 느리게 떨어지는 눈송이처럼 더디게 흘러가는 겨울 시간의 감각도, 겨울의 쓸쓸함을 사랑으로 채워가는 사람들의 애틋한 온기도 나는 좋다.
‘겨울이 왜 좋은지’ 묻는 질문에 나는 골똘해진다. 누군가를 납득시킬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머리를 굴려 보편적이거나 논리적인 이유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겨울의 어떤 부분이 좋은지’ 묻는 질문에 나는 겨울 한복판으로 간다. 몽글하게 피어오르는 겨울의 기억, 그때의 감각이 살포시 떠오른다. 그리고 그 자체만으로도 질문에 대한 충분한 답이 될 것 같은, 누군가의 인정은 필요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겨울이 ‘그냥’ 좋다. 그냥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태어났을 수도 있고, 겨울의 어떤 부분이 내 기질이나 성향과 맞아떨어졌을 수도 있다.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겨울에 대한 좋은 기억이 켜켜이 쌓여 겨울을 좋아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그중 무엇이 나를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으니, 그냥 겨울이 좋다고 할 수밖에. 하지만 겨울이 좋은 순간, 내가 좋아하는 겨울의 느낌이나 모습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주저리주저리 끝도 없이 늘어놓을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신이 나서.
이 글을 보는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이 좋아하는 겨울의 순간은 언제인가요?”
“당신이 좋아하는 겨울의 느낌이나 모습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답하는 순간, 당신도 겨울을 좋아하게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