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023] 다정의 언어

by 은도

최근에 육지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한 가지를 더 찾아왔다. 내가 제주라는 공간에 조금 더 머물고 싶은 이유를 말이다.


평일 점심시간,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고 친구를 만나러 가산디지털단지에 갔다. 맑은 듯 흐린 듯 푸르뎅뎅한 잿빛 하늘이 펼쳐져 있고, 미세먼지로 인해 목이 칼칼한 느낌이 드는 날이었다. 지하철역 9번 출구 앞에서 친구를 기다렸다. 촘촘히 세워진 빌딩에서는 수많은 직장인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쏟아져 나왔다. 일 분 일 초가 아쉬운 점심시간,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걸음걸이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혹여라도 그들의 앞길을 막아서서 시간을 뺏게 될까, 한쪽 구석에 투명 인간처럼 서서 그 광경을 보니, 과거 회사원이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023] 북촌리1.jpg 제주시 북촌리


매일 아침 압사당할 가능성을 생각하며 지옥철에 몸을 싣던 무모한 감각. 회색 도시만큼이나 탁한 사람들의 표정을 보다, 문득 내 얼굴 곳곳에 새겨지고 있는 주름들을 느끼고 얼굴 가죽을 사방으로 당기던 팽팽한 느낌. 승강장에서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밀려 나가고 밀려 들어오면 어김없이 들리는 한숨 소리, 비명, 욕지거리. 내릴 역에 도착해 ‘잠시만요, 내릴게요’를 반복하며 밖으로 튕겨 나오면 속으로 삼키던 한숨, 비명, 욕지거리. 버스정류장에서 동료를 만나면 인사처럼 나누던 ‘피곤하다’, ‘퇴근하고 싶다’. 하루 종일 내 귀에 들려오던, 혹은 내가 내뱉던 언어들, ‘집에 가고 싶다’, ‘왜 저럴까’, ‘이래서 안 돼’, ‘저래서 안 돼’, ‘퇴사하고 싶다’......

아침 지옥철에서와 같은 표정과 언어에 둘러싸여 집으로 돌아가면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부정의 언어들과 표정, 무심한 언어들과 표정을 뱉어냈을까. 속으로 삼킨 나쁜 언어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그때의 내 언어가 그토록 날이 서 있던 것은 각박한 도시 환경 탓만은 아닐 것이다. 내 언어의 뿌리를 찾다 보면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부모님의 잦은 싸움 속에 오가던 고성과 비명, 서로를 탓하고 비난하고 상처 주는 언어를 들으며 자랐다. 그런 가정환경에 감정보다는 사고에 치우친 성격이 더해져, 칭찬에 인색했고 공감 능력이 부족했으며 탓하거나 평가하는 언어에 익숙했다. 잘 웃은 얼굴과 달리 내가 뱉어내는 무심하고 날 선 언어를 들은 친구들은 ‘뼈 때린다’, ‘웃으면서 팩폭 한다’, ‘너 T지’와 같은 반응을 보이곤 했다.

[023] 북촌리3.jpg 제주시 북촌리


그랬던 내가 요즘 언어를 다시 배우고 있다. 카페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어서 오세요’, ‘감사합니다’, ‘괜찮아요’, ‘힘들지 않아요?’, ‘파이팅’과 같은 말들이 오간다. 여행객이 대부분인 손님들은 여유가 넘치고 동료들은 배려가 넘치니, 그 공간에는 뾰족하고 예민한 언어 대신 고운 언어들이 가득하다. 손님이 몰려 몸이 힘든 날에도 마음은 지치지 않는 이유다. 가끔 손님들이 ‘다정히 설명해 주셔서 감사해요’, ‘친절하시네요’와 같은 말을 건네며 미소 지을 때면 다정한 언어의 힘을 느낀다.


브런치라는 공간에서도 다정한 언어들이 오간다. 그 공간을 이루는 사람들은 서로의 글을 보며 평가하거나 심판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글 속에 어렵게 꺼내 놓은 마음을 읽고 그저 조심스러운 위로와 잔잔한 공감의 언어를 건넬 뿐이다. 그 언어들 속에서 나는 조금씩 더 많이 마음을 꺼낼 용기를 얻는다.


[023] 북촌리2.jpg 제주시 북촌리


제주에서 보낸 7개월 동안 나쁜 생각을 비워내고 그 자리에 좋은 생각을 쌓으며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늘 다정의 언어들이 있었다. 좋은 책에서, 좋은 공간에서, 좋은 사람들이 건네는 좋은 언어들. 그 기운을 받아 어느 순간 나도 다정의 언어를 건넬 줄 아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시로 돌아가도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숨 막히는 공간과 환경을 생각하면 자신이 없어진다. 좋은 언어는 좋은 마음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제 막 새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 내 안에서 그 마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다정한 공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나는 내게 시간을 조금 더 주고 싶은 것이다. 나쁜 언어를 모두 비워내고 그 자리에 좋은 언어들을 차곡차곡 쌓아 단단한 언어의 성벽을 만들어낼 시간을 말이다. 그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어느 곳에서도 다정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날의 나를 그리며, 오늘도 무심하게 지나치려던 다정의 언어 한 마디를 내뱉어 본다. 옹알이처럼.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23화[022] 꿈꾸는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