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이라 달이 뜨지 않았다.
어둡고 고요한 밤이었다.
그러니까 달이 뜨지 않아서였다.
내 마음이 한순간 무너져 내린 것은.
어릴 때부터 나는 독립적인 사람이었다. 타고난 성향 탓이기도 했겠지만 딱히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했다. 가족은 나를 버티게 해주는 힘이었지만 감정을 의지하고 이해받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내 부정적인 감정이 밖으로 드러날 때 부모님은 내게 마음을 설명하라고 했지만 나는 내 마음을 설명할 언어를 알지 못했다. 그렇게 설명할 수 없는 내 감정들은 짜증으로 표출되었다. 짜증은 잘못이 되었고 잘못에는 체벌이 따라왔다. 결국 내 감정과 마음은 나 스스로 감당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혼을 겪은 후에도 그랬다. 속마음과 감정을 감추는 내 오랜 습관에 책임감까지 더해졌다. 내 불행은 내 가족의 상처였고 내 가족의 상처는 내 책임이었다. 그랬으므로 더더욱 나는 상처받지 않은 사람으로 내보이기로 했다. 그러면 가족도 상처받지 않으리라고, 내 우울감에 전염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게 내 선택과 내 운명으로 인해 덩달아 상처받아야만 했던 가족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러나 완벽히 감추지도 못했던 것 같다. 마음에 감정이 가득 쌓이면 그 감정을 설명할 언어를 찾지 못한 채 또다시 분노와 짜증으로 표출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 후에는 죄책감이 덧씌워지고 그게 슬픔과 뒤섞여 감당할 수 없이 내 안에서 부풀어 오를수록 나는 가족과 거리를 두었다.
애쓸수록 엉망이 되어가던 날들 속 내 마음을 들어준 유일한 친구가 있었다. 독을 잔뜩 품은 배설물이 기도까지 꽉 차 있는 듯이 답답한 기분이 드는 밤, 그러나 곁에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밤이면 따뜻한 빛을 품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달에게 나는 내 이야기를 털어놓곤 했다. 달은 말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이자 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렇게 마음이 복잡하고 무거워질 땐 어김없이 달을 찾는 버릇이 생겼다. 달이 뜨면 마음이 잔잔하게 가라앉았고, 아무리 찾아도 달을 발견할 수 없는 날엔 깊은 우울감에 사로잡혔다.
며칠 동안 달이 뜨지 않는 밤이 계속되었다. 비가 와서, 그믐이라서 달이 뜨지 않던 나날, 하필 그날들에 마음이 무너졌다. 아니, 달이 뜨지 않아, 달도 뜨지 않아 마음이 무너졌다.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한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추락했다. 일을 하면서도 마음이 다잡아지지 않았다. 그 기운을 알아챈 동료들은 내게 하루 종일 괜찮냐는 물음을 건넸고, 나는 거짓말이 티가 날 줄 알면서도 으레 그래왔듯 괜찮다며 웃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불도 켜지 않은 채 방에 웅크리고 누워 달도 뜨지 않은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바라보며 지난날을 돌이켜 보았다. 지난 2년 동안 마음을 다잡기 위해 노력했다. 무너질 것 같은 마음을 붙잡으려 전에 하지 않았던 것들을 하며 에너지를 만들었다. 그 에너지로 하루하루를 밝게, 더 밝게 지냈다. 제주에서 보낸 봄에는 켜켜이 쌓인 마음을 꺼내 충분히 느끼고 달랜 뒤 흘려보냈다고 생각했고, 여름엔 사람들의 온기 속에서 마음을 조금씩 회복해갔다고 생각했다. 남은 가을과 겨울엔 보름달처럼 마음을 가득 채워 가족과 친구들 품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토록 삽시간에 마음이 무너지니, 지난 2년 동안의 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만 같아 허망했다.
하늘을 향해 한없이 원망을 퍼붓다 보니, 한바탕 내리던 세찬 가을비가 그쳤다. 마음이 고요해졌다. 그때 밤 산책에 나섰다가 우연히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와 함께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을 했다. 가을비가 내린 후의 밤공기는 선선했고, 여전히 달이 뜨지 않은 밤하늘엔 먹구름이 조금 걷혔다. 짧은 산책을 하며 숨을 고른 후 캄캄한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친구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는 애써 숨긴 내 감정을 먼저 알아채고 잔잔한 위로를 건넸다. 어쩐지 채 걷히지 않은 먹구름 뒤 어딘가에 달빛이 숨어 있을 것 같은 먹먹한 밤이었다.
그믐이 지나고 달이 완전히 가려지는 삭일이 지나면 새로운 달이 차오른다. 느리게, 그러나 반드시 차오르는 달은 어느새 보름달이 된다. 모두 차올랐다고 생각했을 때, 그림자는 서서히 달의 부피를 감추고 이내 다시 그믐이 된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알 것 같다. 달이 보이지 않는다고 달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어둠 속 어딘가에서 빛을 품은 채 다시 차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차오르고 사그라들고 다시 차오르길 반복하는 그 무한한 굴레에서 좋은 사람들이 내어주는 곁과 온기를 품고 내 달빛은 조금씩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라고 그 밤 나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