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내 감정 그대로를 온몸에 뒤집어쓴 채 존재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느 정도 정제된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우울한 감정은 웃음 뒤에 감추고, 슬픈 감정은 무표정 뒤에 감추고. 그렇게 꾹꾹 누르다 보면 다 벗어던지고 감정에 자유로워지고 싶을 때가 있다. 감정이 내 몸과 영혼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고 싶을 때가 있다. 발가벗은 채 밖으로 뛰쳐나가 쏟아지는 장대비를 온몸으로 맞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럴 때 나의 아지트를 찾는다.
내 첫 번째 아지트는 전 회사 뒷산에 있던 벤치였다. 인적이 드문 곳, 덩그러니 놓여 있던 그 벤치는 사람들 눈을 피해 나를 엄폐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이혼 후, 나는 점심시간마다 도망치듯 회사를 빠져나와 그곳을 찾았다. 그곳에서 내 감정은 자유로워졌다. 밝은 기운 대신 우울한 기운을 한껏 내뿜어도 되었다. 가짜 미소를 거두고 슬픈 표정을 지어도 되었다. 가끔 눈물이 나오면 남몰래 훔칠 필요 없이 그대로 두어도 괜찮았다. 그 시기, 내 아지트는 집에서조차 드러내지 못했던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준 고마운 안식처이자, 다시 회사로 돌아가 남은 하루를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힘이었다.
퇴사와 함께 유일한 아지트가 사라졌다. 오랜 시간 함께했던 동료들과 헤어지는 일보다 아쉬웠던 것은 사실 그 아지트와 헤어지는 일이었다. 대신, 새로운 아지트가 생겼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카페 근처에는 초등학교가 하나 있다. 운동장에는 흙 대신 푸른 잔디가 깔려 있고, 한 편에는 작은 놀이터가 마련되어 있다. 그 놀이터 구석에 자리한 그네가 내 새로운 아지트이다.
잔디가 깔린 너른 운동장을 등지고 그네에 앉아 바라보는 풍경은 평화롭다. 바로 앞에 아주 작은 숲이 있고, 그 위로는 탁 트인 하늘이 펼쳐진다. 잔잔한 구름의 자취와 따뜻한 노을, 캄캄한 밤하늘에 뜨는 달과 별까지 바라볼 수 있다. 운이 좋은 날에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를 만날 수도 있다. 나는 일을 마친 뒤 그네에 앉아 하루의 피로를 날리기도 하고, 울적할 때 그곳을 찾아 마음을 풀어놓기도 한다. 하염없이 달과 별이 보고 싶은 날에도, 외로운 마음이 들 때에도 어김없이 그곳을 찾는다. 천천히 그네를 흔들며 느긋한 숨을 쉬고 난 뒤 집으로 돌아갈 땐, 다시 살아갈 힘이 내 안에 생겨난 기분을 느낀다.
내게는 또 다른 아지트가 있다. 이름과 얼굴에 구속되지 않고 온전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 바로 이 공간, 브런치다. 타인에게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는 것을 어색하고 민망하게 여기는 나는, 그래서 누구에게도 깊은 속마음을 말하지 못한다. 그렇게 차마 꺼내놓지 못한 이야기를 내 안에 가득 쌓아 더 이상 쌓을 공간이 없을 때, 글을 만났고 이 공간을 만났다.
하지만 글은 나를 닮아, 내 글도 솔직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나는 일기에서조차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기에, 타인에게 보이는 글에는 더더욱 진솔한 이야기를 썼다가 지우고, 감정을 넣었다가 빼곤 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솔직했다고 생각했지만, 지난 글들을 다시 보면 늘 최선을 다해 감추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 글쓰기를 처음 알려준 선생님은 언젠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 이야기 말고, 내 이야기를 쓰세요.”
글쓰기 모임에서 내 글을 본 사람들도 종종 말하곤 했다.
“이야기를 뭉뚱그려 표현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풀어냈으면 좋겠어요”라든가 “마음을 더 열고 글에 자신을 더 보여주면 좋겠어요”라고.
그들의 말을 되뇌며 나는 조금씩 더 솔직한 이야기를 담기 시작했다. 조금 더 드러내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그보다 조금 더 쓰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내 기준에 감정이 너무 많이 들어간 글을 쓰고 나면 ‘발행’ 버튼을 누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없는 용기를 쥐어짜 버튼을 누른 후에도 괜히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리곤 했다. 지난번 글 ‘그의 짧은 네 번째 발가락’을 올릴 때는 특히 그랬다.
이 브런치북의 제목을 처음에는 ‘제주 기록’으로 정했다가 글을 쓰는 도중 ‘제주 사춘기록’으로 바꿨다. 글을 쓸수록 ‘제주’는 걷히고 ‘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혼이라는 사건 그 이후의 삶을 그려내야겠다고 생각하며 연재를 시작했다. 그러나 글을 쓸수록, 나를 조금씩 더 드러낼수록 내 글은 자꾸만 2년 전 그때로 돌아간다. 아마도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 이야기였던 것 같다.
나는 아직도 글을 쓰기 전, 비어 있는 화면을 보며 망설인다.
‘이 이야기를 써도 될까?’, ‘이만큼이나 드러내도 될까?’, ‘더 담아도 될까?’
그럼에도 내 이야기를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묵묵히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나는 매일 조금씩 더 솔직해질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제주에는 두 개의 아지트가 있다. 한 곳은 고요히 자연을 바라보며 몸과 마음을 기댈 수 있는 곳이고, 한 곳은 솔직한 내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위로받는 곳이다. 두 아지트 덕분에 나는 조금씩 묵은 감정을 꺼내어 흘려보낼 수 있고, 그 자리에 좋은 에너지를 쌓을 수 있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용기 내어 ‘발행’ 버튼을 누른다. 다음번에는 조금 더 솔직해질 나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