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나무를 본다.
아니, 흔들리는 나무를 통해 바람을 본다.
작년 성탄절, 나는 한적한 카페 창가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다. 토실토실 살이 오른 갈색 고양이 한 마리가 내게 다가왔다. 내 등 뒤를 돌아 발밑에서 멈추더니 나를 쓱 올려다보았다. 눈이 마주친 그 순간, 고양이는 폴짝 뛰어 노트북 자판 위에 안착했다. 그러고는 창을 통해 넉넉하게 스며드는 햇살을 느끼며 한동안 그곳에 엎드려 있었다.
귀여운 방해꾼이 주인 손에 붙들려 간 후,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따스하고 평온한 카페 안과는 달리 창 너머의 나무는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이 엄청 세게 부네.’ 생각하며 뜨거운 커피를 호로록 마셨다. 내 눈에 보인 건 흔들리는 나무였을 뿐인데, 나는 그 나무를 통해 바람을 보고 있었다. 세찬 겨울바람, 그리고 그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얇은 창 하나를 두고 내다보았을 뿐인데, 그 풍경이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퍽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부러질 듯 흔들리는 나무에게서는 역동적인 생명력까지 느껴졌다. 한참을 그 풍경에 사로잡혀 있다가 문득 생각했다.
내 삶도 얇은 창 하나를 두고 내다보면 그렇게 느껴질까?
흔들리는 나도, 그런 나를 통해 느껴지는 바람도 자연스럽게 느껴질까?
지난 12월, 나는 유독 많이 흔들렸다. 나와 약속한 1년이 끝나는 시점이 3개월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평일에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놀고, 주말에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 통장 잔고가 빠르게 줄어가는 걸 보면서도 ‘나중에 어떻게든 되겠지.’ 한가한 생각이나 하며 못 본 체하기를 어언 9개월, 어느새 그 ‘나중’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나는 정말 선택을 해야 했다. 육지로 돌아갈지, 이곳에 더 머무를지. 이곳에 더 머무른다면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지. 아직 3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었지만, 나는 불투명한 미래 앞에 자꾸만 불안해졌다. 불안할수록 조급해졌다.
그동안 열어보지 않았던 구인 사이트에 접속했다. 내 커리어에 맞는 직무를 선택하고, 지역을 제주로 설정했다. 검색 결과는 0개. 지역을 서울로 바꾸었다. 검색 결과가 몇십 개로 늘었다. 홀린 듯 공고를 하나씩 눌러 살펴보았다. 그중 몇 군데는 하마터면 지원할 뻔했다. 몇 시간을 허비하고 나서야 구인 사이트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휴대폰에 적힌 시각은 새벽 3시. 그 후, 며칠 동안 같은 일을 반복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나 낭비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육지로 돌아가 취직을 하면 불안이 사라질까? 그 선택에 만족하며 살 수 있을까? 이곳에서 더 버텨보지 않은 걸 후회하지는 않을까?’
아니었다. 잠시 안정감을 느낄 뿐,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할 것이고, 그러면 나는 또다시 불안해질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다시 불안이 찾아오면 나는 또 도망칠까.
카페 창문 너머 부러질 듯 흔들리던 나무가 어느덧 멈추어 살랑살랑 흔들렸다. 영영 그치지 않을 것 같던 세찬 바람이 잠잠해진 것이다.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다 멈추고, 흔들리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아마도 나무는 살아있는 한, 이 지난한 과정을 지겹도록 무한히 반복할 것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뿌리는 땅속 깊이 단단히 박힐 것이다.
불안에 영영 잠식당할 것만 같은 느낌 속에 새해를 맞았다. 불안이 만든 거센 바람이 잠잠해지는 때는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 그 틈을 타 나는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육지에서 직장을 구하는 것보다 급여는 적겠지만, 덜 안정적이겠지만, 그래도 이곳에 더 머무를 수 있다면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불안에 대해 쓴 후로 6개월이 지났다. 나는 다시 불안에 대해 썼다. 바람이 영영 그치지 않듯, 삶에서 불안도 그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불안할 인생이라면, 지금 마주한 불안에서 도망치기보다 그 한가운데에 나를 조금 더 놓아두기로 했다. 그것이 아주 거세게 불어올 땐 잠시 몸을 웅크리고, 조금 잠잠해지는 틈을 타 한 발 내디디며 천천히 나아가보려 한다. 그 걸음이 아주 느릴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항상 제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언젠가 문득 뒤를 돌아보면 처음 그 자리에서 꽤 멀리 와 있음을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를 상상하며 나는 소망한다. 그때가 되면, 창 하나를 두고 흔들리는 나무를 보듯 흔들리는 나를 볼 수 있는 지혜를 가졌길. 그런 내 모습을 담담히 바라볼 수 있는 고요한 마음을 지녔길. 딱 그만큼 단단해져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