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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도 May 20. 2023

퇴사의 맛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저는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레슨으로 먹고 산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곡 쓰고 앨범 내고 공연도 하면서 쉼 없이 해온 일인데 어느 날부터 견딜 수 없게 돼버렸다. 괜찮아지겠지- 참고 버텨도 봤지만 아무래도 이 직업은 내 인생에서 수명이 다 한 것 같다.


길 가는 고등학생만 봐도 화가 나는 건, 내 문제지 너네들 문제는 아니지 않겠니? '너희를 위해서라도'라는 위선적인 거짓부렁이를 뱉으며 나는 이 판을 떠나가리라


더 이상 '선생'으로 존재하는 나 자신을 감당할 수가 없다. 그만두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 온 것일까?


수입이 불안정한 프리랜서의 특성상, 들어오는 일은 무조건 해내는 것이 익숙한 삶. 한번 시작한 일은 절대 먼저 놓지 않았고 한 학원에서만 10년을 일했다. 그런 내가 겨우 안정을 찾은 멀쩡한 예고밥줄을 내 발로 걷어차야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용기가 없어서 1년을 유예했다. 유예기간 중의 레슨은 더 힘들었다. 때려치우자니 두렵고 계속하자니 죽겠고, 아이고야.


그리고 2월 27일, 봄방학의 마지막 날.

드디어 퇴사를 했다.


치열한 내적갈등 끝에 이룬 불안한 결정이었다. 학창 시절에도 학교가 제일 싫었던 아이는 어쩌다가 아직도학교에 남아있는 건가? 마지막 수업 후 교문을 나서는데 예고도 없이 불현듯...마음에 이른 봄날이 쏟아졌다.


아니... 너무 행복한데?

초봄의 마지막 퇴근길을 걷는데 미친 여자처럼 실실 웃음이 샜다. 그래서 소리를 조금 내서 웃었다. 아니 이좋은 걸. 진작할걸. 1년 전에 할 걸! 아아악.


내 인생 처음으로 퇴사가 온 것이다.

빛나는 봄날과 함께 드디어 백수가 된 것이다.

 

벅차오르는 마음으로 퇴사하고 온 날, 나의 하이텐션을 감당하느라 나조차도 좀 힘들었는데 우리 남편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퇴근길에 만난 남편과 퇴사파티하자며 동네 해장국집에 갔다.


'내가 짠테크 하면서 자기 계발 오지게 해서 부자 돼서 퇴사시켜줄게'라고 떠들며 감자탕을 조졌다.

하아. 오지게 맛있다.


지금 뭘 먹어도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이게 퇴사의 맛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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