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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도 Oct 22. 2023

꿈이 없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일지도 몰라

  

  초자아의 목에 감히 칼날을 겨눈 대가로 나는 더 이상 음악을 만들지 못하게 됐다.



  야심 차게 준비하던 2집. 동화x심리 프로젝트는 허무하게 중단 됐다. 이상하리만치 쉽게 작업을 그만둔 나는 열심히 현생을 살았다. 한 명의 어른으로서 내 몫을 해내기 위해 열심히 레슨을 했고, 스마트스토어를 열어보기도 하고, 주식과 부동산을 공부해보기도 했다. 건강에 주의를 기울였다. 담배를 끊었고 운동을 시작했다. 한약을 지어먹고 살도 몇 킬로 찌웠다. 수년간 미뤘던 작은 결혼식도 했다. 작업실을 떠나 평범한 신혼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평온하고 행복했다. 그리고 슬펐다.




  음악을 하지 않는 내가 서글펐다.




  레슨을 마치고 돌아오는 퇴근길은 지독하게 우울했다. 더 이상 기차에서 음악작업을 하지 않았다. 음악을 뺀 나는 뭘까… 하고 종종 생각했다. 음악을 생각하지 않는 동안은 행복했지만 음악이 떠오르면 우울했다. 두어 번 곡을 쓰려는 시도를 했다. 곡은 술술 나왔고, 잠깐의 환희를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더 큰 공허함이 찾아왔다. 좋은 곡이 나올수록 ‘이걸 해서 뭐 하나’ 하는 무기력함이 커졌다. 괴로웠다. 내 인생에서 음악을 완벽하게 잘라내버리고 싶었다. 잔인하고 단호하게.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렇게 애매모호한 상태를 몇 해쯤 견뎠다



(2022년 가을. 어느 날의 일기)


가능성으로만 존재한 채로

만들어지지 않은 소리인 채로

너는 나를 충분하게 괴롭힌다

그 소리들을 완성시켜야만 할 것 같은

무한한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낀다



뱉어내야 할 것을

억지로 삼키고 있는 듯한

거북함을 내내 껴안고 있다

하지만 돌아가는 것은 두렵다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살지 못했고, 느끼지 못했던 일상을 이제야 살아가고

굳어버린 시야를 넓혀 새롭게 도전하는 와중에도

너는 갑자기 악몽처럼 떠오른다



부모가 찾지 않는 잃어버린 아이처럼

너는 나를 원망하고, 너는 나를 저주한다.



내가 사랑하지 않는 너는

천천히 괴물이 되어간다

괴물은 내 꿈속에 나타난다

나는 무대 위, 공황상태가 되어버리는 꿈을 꾼다

누군가를 죽이고 도망 다니는 꿈을 꾼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들이 정점을 지나는 순간마다

너는 눈앞에 또렷이 떠오르고 나는 또 우울해진다

돌아갈 용기는 없다

저주에 걸린 것 같다



….




  우울증은 나날이 심해졌다. 곡을 쓰지 않으니 마음의 병이 깊어 가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곡을 쓸 수 없었다. 나는 감시를 받고 있었다. 스스로 감시하고, 스스로 감시당했다.



  내 안에는 ‘아이, 감시자, 중재자’가 살고 있다.


  평생 노래하고 싶은 아이와       (원초아 id)

  그만 정신 차리라는 감시자와    (초자아 superego)

  둘 다 병행해 보자는 중재자       (자아 ego)



  하지만 초자아는 독보적으로 거대하다. 어느 날 아이는 그 존재를 깨달았다. 벽 너머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미 세계를 점령한 감시자와 아이의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패배한 아이는 지하독방 신세가 됐다. 아이는 이제 노예가 되어 그늘진 얼굴로 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중재자는 몇 번의 구출 작전을 감행했지만 아이가 독방에서 나와 목청껏 노래를 부를 때마다 다시 지하독방에 갇히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줄곧 타이밍을 보던 중재자는 잔머리를 굴렸다. 노래의 내용을 바꿔 보자는 것이었다. 아이는 ‘정신 차리고 돈 벌자는 내용의 노래’를 만듦으로써 감시자의 허락을 받고 어.쨋.든 노래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영리한 감시자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그렇게 3년여의 번아웃의 끝자락에 한 곡을 썼다.





shortcut



I wake up in chaos just lay down and blink

난 혼돈 속에서 깨어나 누운 채로 눈만 깜박여


I’m sick of it tired of

singing a song that no one listens to

아무도 듣지 않는 노래 부르기도 이제 지겹고 지쳐


Why am I doing this?

난 이걸 왜 하고 있지?


Why should I be doing this?

왜 이걸 해야 하지?


Why am I fuckin’ singing this song?

왜 이 빌어먹을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거지?


Maybe not having a dream

is a shortcut to happiness.

어쩌면 꿈이 없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일지도 몰라


There is no despair if I don't have hope.

희망이 없으면 절망도 없으니까


Maybe not having a dream

is the answer to happiness.

어쩌면 꿈이 없는 것이 행복의 답일지도 몰라


but I don't know why I force myself on.

근데 왜 억지로 이걸 하고 있는 건지 나도 모르겠어


It's better not to expect anything…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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