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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도 Oct 22. 2023

번아웃 3년


저작권료 2,351원

  팬시가 탄생한 지 3년 만에 열일곱 곡이 등록됐다.

  음저협과 음실련에서는 매달 문자가 왔다.

  대부분 얼마가 입금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음저협 :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음실련 : 한국음악실연자협회



   ‘저작권료 2,351원 지급되었습니다.’



  ‘멜론’과 같은 월정액 스트리밍으로

  누군가 나의 음악을 한 번 들으면

  곡당 7원의 저작권료가 지불된다.


  그중 2.8원은 음원유통사(멜론 등)가 가져간다.

  남은 4.2원 중 3.09원은 제작사(회사)의 몫이고,

  남은 1.12원을 가수를 포함한 창작자들이 나눈다.

  나는 모든 걸 혼자 해서 회당 1.12원이 들어온다.

  2.351원을 1.12원으로 나누면 2099회.



  누군가가 내 음악을 2099회 들어준 것이다.

  너무나 소중하다.

  2099명이 한 번씩 들었든,

  209.9명이 열 번씩 들었든 간에

  그들은 내가 음악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월 2000원으로는 목숨을 유지할 수 없었다.




나는 선생인가 가수인가

  음악을 하려면 목숨을 유지해야 한다.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레슨을 해야만 한다.

  음악을 하기 위해 레슨을 해야만 한다.

  삼단논법에 의해 나는 레슨지옥에 빠졌다.


  2집을 만들려면 악기도 필요하고, 제작비용도 들고, 문화생활도 해야 했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는 법, 유튜브를 비롯한 구독경제도 커져만 갔다. 돈이 계속 필요했다.


  예술고 수업은 어느새 4일로 늘어났고, 남은 하루는 학원에 나갔다. 작업은 주말에 해야 했다. 시간이 모자랐다. 나는 아이맥을 처분하고 맥북프로를 들여 기동력을 확보했다. 대구로 레슨을 가는 날은 KTX안에서 작업을 했다. 레슨 전이나 중간에 시간이 뜨면 카페에서 작업을 했다. 작업 광인이 되어갔다.


  초반 3개월은 꽤 능률이 올랐다.

  노마드 아티스트로써 제대로 투잡을 해냈다고 좋아했다.

  약간 미친 것 같은 나 자신도 좋았다.

  하지만 3개월 후, 나는 역시나 셧다운 됐다.




초자아에게 당한 역관광

  3개월 만에 퍼진 이유는 복합적이다.

  일단 체력이 달렸고, 레슨에 너무 많은 정신에너지가 쓰였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초자아와의 전투에서 패배한 것이었다.


  3개월 동안 광인처럼 만들어 낸 일곱 곡은 3년이 지난 지금도 완성되지 못한 채 내 하드 속에 잠들어있다. 몰아붙이기의 달인인 나는 험악한 스케줄 정도로는 성이 안 찼는지 도무지 해내기 힘든 계획을 세웠다.


  2집 플랜은 극강의 난이도였다.

  동화라는 메타포를 이용해서 무의식의 세계를 탐험하기로 한 것이다. 1집에서 나의 내면에 있는 거대한 감정 덩어리의 표면을 조금 긁어냈다고 여긴 나는 더 깊숙이 들어가야 함을 직감했다. 무의식의 세계를 탐험하려면 심리학 공부가 필요했다. 개론서부터 논문까지 많은 활자를 읽어야 했고, 나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정체불명의 덩어리들을 (트라우마라던가… 콤플렉스라던가…)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해체해 줄 방법론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그림동화 심리 읽기’라는 심리학서를 만났다. 프로이트와 융 심리학을 기반으로 그림동화 속 인물들의 심리를 분석하여 인문학적 통찰을 담은 내용이었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어마무시한 두께로 무려 세 권. 나는 정신없이 빠져들어 순식간에 1500페이지를 읽어치웠다. 이거다! 동화를 통해 내 무의식을 들여다보고 채굴해서 곡을 쓰자!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담은 “팬시스튜디오 시즌2” 까지! 음하하하!!


  열정이 지나쳐서 불가능한 계획을 세운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부딪히다 보면 실행가능한 규모로 줄이거나 작업기간을 늘릴 정도의 융통성은 있으니까.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위해 프로이트와 융을 공부하면서 나는 ‘초자아’의 존재를 감지한 것이다.


  ‘초자아’는 정말 쉽게 말하면 꼰대다.

  사회규범과 부모의 가치관을 내면화한 ‘내면의 심판관’으로 완벽주의자이며 강박적이고 나의 모든 행동과 생각을 검열하여 약점을 공격하는 영리한 비판자.


  내 안의 초자아는 거대하고 강력했다.

  ‘자아’의 크기보다 훨씬 컸다. 자아는 초자아에게 안방을 내주고 쪽방신세가 된 지 오래였음에도 너무 오래된 까닭에 그 신세가 당연한 줄로만 알고 있었다. 나의 많은 생각과 판단, 이유 모를 지나친 억제와 죄책감, 사라지지 않는 우울과 분노의 근원이 나를 24시간 감시하고 있는 심판관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나는 눈치채기 시작했다. 알고 나니 분했다. 그래서 저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주 영리하고, 사악한, 나의 심판관은 나의 인지를 감지했다. 그때 나는 ‘영리한 엘제’라는 동화를 이용해서 ‘초자아’에 관한 곡을 쓰고 있었고, 겁도 없이 그 거대한 존재를 단칼에 베어버리려 했다. 해방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영리한 심판관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채, 매우 고요하고 비겁한 방식으로 되려 나를 해체했다.



  해방의 순간 직전에 해체되어 버린 나는 불현듯

  이 작업을 ‘왜’ 해야 하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월 2천 원을 입금해 주는 음악을 위해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지 물었다. 내면의 심판관은 신랄하게 나와 나의 프로젝트를 비난했고, 냉소적으로 빈정거리며 이 프로젝트가 그럴싸하고 쓸데없는 무책임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그만 꿈에서 깨어 어른답게 굴지 않으면 모두 너를 떠날 거라고, 가난하고 외롭게 늙을 거라고 협박했다. 갑자기 두려웠다. 나는 설득당했다.



그랬다.

내게 음악은 사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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