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형태를 바꾸어

헤어질 결심

  음악과 이별하기 위해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미련 없이 음악을 그만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실패담 속에는 제법 따뜻한 이야기들도 있었다. 단지 글로 쓰면서도 다시 한번 체험하는 듯한 고통도 있었다. 그 고통 속에서 성장하고 진화했음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 내 안에 있는 이 절망을 우적우적 씹어 먹고 다음 단계로 '변신'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평생, 오직, 음악을 하기 위해

  거듭 방식을 바꾸고 정체성을 바꾸어 왔다.

  나는 왜 그래야 했을까.

  왜 그렇게까지 음악을 해.야.만 했을까.

  그것은 나의 성장도구로써 그 무엇보다도 음악이 가장 적합했기 때문은 아닐까? 춤, 글, 사진 어떤 도구로도 깨우지 못한 내면아이를 음악은 깨우고 울리고 달래고 노래하게 했다. 평생을 나의 일등공신, 나의 오른팔, 나의 최애무기로써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왜 하필 음악이었을까 - 하는 물음에 마법사가 검이 아닌 지팡이를 집어들 듯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 - 하는 로맨틱한 상상에 빠져본다. 그게 내 운명이니까, 라며 뻔뻔하게 다시 한번 나의 헤어질 결심을 접고 싶다.

선전포고

  어제 이 글의 초고를 마쳤다.

  그리고 몇 년을 망설인 21만 원짜리 마이크거치대를 주문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왜 지난 3년간 음악을 만들지 못했는지 깨달았다. 그때 내가 하려던 것은 ‘그 시점의 나’ 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게는 미뤄 둔 일들이 너무 많았다.

  미뤄 둔 일상, 미뤄 둔 감정, 미뤄 둔 행복…

  그 모든 미뤄 둔 삶들을 살아내야만 다음 음악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아닐까?

  깊은 무의식을 마주 보는 엄청난 모험은 체력이 필요했다. 그곳을 지배하는 ‘슈퍼에고’라는 빌런을 처단하려면 강한 정신력도 필요했다. 나는 그 전투에서 승리할 역량이 전혀 없었음에도 무식하게 덤볐고, 거대한 초자아에게 벌크업 할 기회만 줬다. 한층 어깨깡패가 된 놈에게 되려 역관광을 당하고, 패배의 대가로 음악을 만들지 못하는 3년을 보냈다.

  담배를 피우고, 운동하지 않고, 잘 먹지 않고, 여행하지 않고, 자진하여 행복하지 않았던 과거의 나는 감당할 수 없는 전투였다. 행복을 미뤄 둔 나에게 승리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전투에 패배한 덕에 나는 3년에 걸쳐 그 모든 미뤘던 삶들을 살았다.

  담배를 끊고, 운동을 하고, 요리를 하고, 여행을 하고, 가족사진을 찍고, 작은 결혼식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초자아와 대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돌아왔다.

나의 형태

  이제 나는 또 한 번 나의 형태를 바꾸려 하고 있음을 안다.

  반환점에서 힘차게 돌핀킥을 차고 있다. 20년간 입고 있던 껍데기를 벗고 보드라운 속살을 드러내며 알을 깨고 뛰쳐나가야 함을 안다. 내가 오래도록 나라고 여겨 온, 그 목소리를 한 꺼풀 벗겨내야 함을 안다. 내 손으로 나의 어떤 부분들을 과감히 잘라내야 함을. 그러고 나면 나는 다시 노래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