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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도 Oct 27. 2024

세대주 J의 헌신과 나의 다짐


 5년 간의 홍대 라이프를 청산하고 송도로 이사했다. 이때 부터가 나의 결혼생활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허나 당시 나에겐 예식이고 신혼이고 안중에 없었다. 그저 음악생각 뿐이었다. 빨리 음악으로 성공해야 했다. 그것은 확실히 불건강했고, 추구미는 성취였다. 강박과 불안을 원동력으로 달리고 있는 브레이크 없는 광인이었다.



전생에 최소 이순신

 그리고 나의 연인은 나를 살릴 생각 뿐이었다. 보자보자 하니까 내가 혼자 옥탑방에서 음악만 만들다가 어느날 변사체로 발견될까바 두려웠던 모양이다. 아무튼 이제 나의 세대주로 활동중이니, 지금부터는 남편이라고 칭하겠다. 남편은 나를 좀 더 건강하게 만들고, 작업하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자 했다. 덕분에 나는 드디어 바(퀴)선생과 결별하고, 모기조차 보기 힘든 신도시로 이주했다.


  수술 직후였고, 3개월간의 요양시간 동안 남편은 섬세하게 나를 돌봐주었다. 병원에 내원하는 날이면 연차를 내서라도 함께 가주었고, 나의 (신체적 정신적) 변화들을 예민하게 알아차려 주었으며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었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빠른 속도로 회복됐다.


  함께 살 공간으로 굉장히 특이한 구조의 오피스텔을 전세로 구했다. 거실의 두면이 통유리창으로 시원하게 트여있고 집앞에 인공수로가 흐르는 5층 짜리 건물로 유럽의 카페거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독특한 곳이었다. 1,2층은 카페와 상점 3,4,5층은 주거,사무공간으로 나뉘어 있어서 통유리 밖으로는 활기찬 느낌이 가득했고 해가 잘들었다. 언젠가 내가 송도에 놀러와서 여기 살고 싶다고 외쳤던 곳이었다. 말이 전세지 관리비가 너무 비싸서 월세 같았다. 하지만 그는 맘에 드는 공간에서 마음껏 작업 하라며 나만의 작업실을 꾸밀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때까지 평생 내가 가져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너무 좋은 환경에 쳐하니 나는 왠일인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작업공간의 웅장함이 나를 압도했다. 통유리에 둘러쌓인 널찍한 공간에는 유럽에서 날아온 진짜 페르시아 양탄자가 깔려있고, 그 위에는 미드 센츄리 모던 스타일의 음악작업용 맞춤 작업책상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위에는 은빛 유려한 (무려 4백만원을 태운) 아이맥 27인치와 레코딩 장비들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다. 놀랍게도 그 모든 완벽함이 나를 협박했다. 내면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무조건 대단한 성과를 내야 해!’



  난 다시 무리할 준비가 됐다. 뭔가 대단하게 성공해내야만 할 것 같았다.



레슨이 물 밀듯

  지난 2년간 죽을듯이 음악을 만들었던 건, 남은 생을 티쳐 선생이 아닌 아티스트로 살아가기 위함이었다. 열심히 하다보면 차츰 음악으로 돈을 벌 수 있겠지. 하는 희망을 안고 달렸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나의 음악들이 엄청난 레슨기회들을 몰고 왔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따. 그동안은 엔터에서 연습생을 가르치거나,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했기때문에 입시레슨은 학원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예술고등학교에 출강해 입시레슨을 하게 됐다.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남편과, 적지 않은 나이를 생각하니 안정적인 수입을 뿌리칠 수 없었다.



광활한 주방에 관하여

 레슨과 작업을 퐁당퐁당 병행하기 시작했다.

 보컬레슨은 풀타임으로 떠들어야 하는 직업이라 월급루팡이 불가능하다. 더더구나 나는 작업을 위해 하루를 최대한 꽉 채워 레슨을 잡았기 때문에 퇴근길엔 녹초가 됐다. 다음날은 풀로 쉬어줘도 회복을 할까말까할만큼 에너지 소모가 컸지만 이 생활을 접으려면 음악작업을 해야만 했다. 또 다시 정신력으로 체력을 넘어서는 일상이 시작됐다.


 작업실에 앉아 나의 영혼을 멸치처럼 달달 볶다 지쳐 문득 나의 광활한 주방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황송함이 밀려왔다. 무언가 대단한 음식을 만들어내야만 할 것 같은 공간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ㄷ자 형태의 공간으로 싱크홀과 조리대 모두 널찍했다. 망원동 옥탑방 주방의 네배 정도 되는 크기였고, 반짝반짝한 새것이었다. 처음 몇번은 땀을 뻘뻘 흘리며 7첩 반상을 내어 놓았다. 체력거지인 주제에 그렇게 욕심을 내고 나면 설거지할 힘은 커녕 밥알 씹을 힘도 모자랐다.


  몇번의 요리전투 후 점점 배달음식을 시켜먹거나 외식을 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하지만 어느날인가 남편은 비싼 스테인리스 후라이팬을 구경하기 시작했고, 반짝이는 식기들을 조금씩 사들였다. 나로써는 저걸 왜 사나 싶은 서로 다른 크기의 스테인리스 바트와 채반, 집게 등 이었다. 그리고 그는 곧 훌륭한 이탈리안 음식 요리사가 되어버렸다. 그가 마늘과 페퍼론치노를 능숙하게 다루어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고 조개를 해감하여 봉골레를 만들거나 스테이크를 굽는 동안 나는 옆에서 열심히 샐러드를 씻고 와인을 따며 어서 빨리 성공해서 그를 호강시켜주리라 다짐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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