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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도 Oct 27. 2024

나를 찾아서



"팬시는 아버지의 우주와 어머니의 우주의 충돌이었다. 나는 여전히 나이지 못한 채 배회하고 있었다."



양년 반 후라이드 반

 나의 우주에 '팬시'가 등장한 것은 2011년의 겨울이었다. 10년간 단 한번도 허투루 이별을 얘기하지 않았기에 몇달의 내적갈등 끝에 고한 단 한번의 이별선언은 그 순간 완벽하게 작동했다. 10년 연애는 깨끗하게 끝이 났다. 하지만 내 손으로 상실을 만들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은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머리를 자르고 기타를 샀다. 윈도우를 버리고 맥북을 샀다. 사진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애를 시작됐다. 완전히 새로운 삶이었다. 그 시기에 내면에서 생소한 목소리 하나가 태어났다. 20대 내내 곡을 써왔지만, 여태껏 존재하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사진 찍는 이상한 남자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쾅쾅 내려쳐 커다란 균열이 생긴 나의 우주는 그럭저럭 혼란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 균열의 틈을 통해 그녀가 들어온 것 이다. 그녀는 다소 우울하고 많이 불안했으며 예민하고 철학적이고 외로웠다. 인생의 혼란한 시기에 느닷없이 등장한 그 목소리를 나는 '어머니의 우주'라고 느꼈다. 지금껏 내게 없었던 감성이었기 때문이다. 토할 것 같은 기분에 냅다 뱉어놓고 보면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드디어 해방된 여성성의 분신 같은 것이 '팬시'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팬시'는 혼란스러운 존재였다. 불안하고 우울하고 나약한 한편, 시니컬하고, 치밀하고, 독단적었다. 그 극명한 대비는 혼란스러웠다. '금이 가기 시작한 아버지의 우주' 와 '억눌려있던 어머니의 우주'가 혼합된 대환장 콜라보레이션 같았다. 데뷔의 계기가 된 CJ 튠업에서도 그 혼란은 드러났다. 예선,본선을 걸쳐 결선까지 진출했다. 당시 결선 참가자는 '멜로망스, 새소년' 등 제법 쟁쟁했다. 하지만 최종수상은 하지 못했다. '곡도 좋고 라이브도 좋지만 음악색깔을 명확히 모르겠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나는 여전히 온전한 나이지 못한 채 배회하고 있었다,




몽환캐에서 힙스터로

 데뷔 후 새로운 곡을 쓰면서 그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막연하게 여성스러움을 추구했다. 흑백논리에 일가견이 있는 나다운 선택이었다. 에너제틱하고 소울풀했던 예전의 보컬스타일은 이미 팬시의 탄생과 함께 힘이 잔뜩 빠져 있었고, 나는 진작에 공기반 소리반을 넘어서서 거의 공기만 뱉고 있었다. 나른하고 몽환적인 느낌을 내기에는 안성맞춤인 발성법이었고 마침 세계는 몽환적인 사운드 범벅이었다. '빌리 아일리시'가 바이럴을 타고 날아오르고 있었고, '혼네'의 음악이 급기야 국내 침대광고에 등장했으며 국내에서는 '백예린'이 신으로 등극했다. 힙합씬에서조차 멈블랩이 유행했다. 다들 웅얼웅얼 흐느적거리며 꿈결같은 사운드로 우주를 유영했다.


 나도 그 물결에 참여했다.

 기깔나게 몽환적인 여자가 되리라.


 하늘하늘한 원피스와 블라우스, 어깨가 드러나는 니트를 입고 웨이브 헤어세팅의 고수가 됐다. 피아노를 치며 노래할 땐 무릎에 담요를 얹어야 했다. 불편했다. 춤추며 노래하던 시절엔 늘 활동적이고 힙한 스타일들을 추구했다. 리듬에 몸을 맡기고 무대 위를 휘젓는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불편한 옷을 입고, 한자리에 서서 노래하고 있었다. 통제 당하는 기분이었다.


 커버곡을 선곡할 때도 불편했다. 나는 평소에 전혀 듣지 않는 음악들을 고르곤 했다. 커버곡을 부르는 것이 유일한 홍보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곡들을 우선적으로 불렀다. '아이유' , '헤이즈' 같은 인기가수들의 음악이었고, 제법 잘 소화 했으며, 반응도 좋았다.


 하지만 점점 지쳐갔다. 막연하게 여성스러움을 추구하는 것이 팬시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금새 깨달아갔다. '섬'과 '안아줄게'는 진심을 다해 쓴 곡이었지만 나의 정체성을 모두 드러내는 곡은 아니라고 느꼈다. 뭐랄까, 좀 더 '쫀득쫀득'한 곡들이 그리웠다. 그루비하고 리드미컬하고 나의 내적흥분을 돋우어 주는 곡들이랄까.


 '위켄드'가 자기 얼굴을 찾아 헤매고 '포스트 말론'이 락스타의 고충을 플렉스하는 동안 나는 그렇게 소울팝과 신스팝 사이를 어슬렁거리다 결국 알앤비 마을로 돌아가기로 했다. 튼튼한 네오소울의 뿌리가 혈관처럼 퍼져있었고, 오랫동안 힙합을 추며 터득한 그루브가 그 속을 흐르고 있었다. '얼터너티브 알앤비'를 추구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엔 '딘'과 '시드'에 푹 빠져있었기 때문에 '얼터너티브 알앤비'로의 직진은 어렵지 않았다. 우연히 '시드SYD'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로 '에리카 바두'를 꼽는 영상을 보고 전율을 느꼈다. '최애가 최애를 최애하는' 장면은 내가 왜 시드의 음악에 쉽게 사로잡혔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해주었고 나의  새로운 음악적 방향성에 강력한 증거로써 힘을 실어 주었다. 두 뮤지션 모두 랩은 아니지만 랩과 다를바 없는 정교하고 섬세한 리듬의 멜로디를 만들었고 그것을 다루는 솜씨도 뛰어났다. 감성적이고 내밀한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가사도 돋보였다. 드디어 딱 맞는 옷을 찾았구나. 그렇게 나는 기존세에서 몽환캐를 거쳐 힙스터병에 이르렀다.



믹스테잎

 방향을 잡은 후 7개의 모자와 7개의 티셔츠를 사들였다. 의도적으로 정체성을 바꾸기 위해 패션만큼 직관적인 것은 없기 때문이다. 중고딩 시절로 돌아간 것 처럼 스트릿 스타일의 옷을 입기 시작하니 마음도 껄렁껄렁 해졌다. 한껏 힙한 기분은 딱딱하게 굳었있던 마음을 물렁하게 풀어놨다. 옷의 사이즈가 늘어나면서 나를 조이고 있던 무언가도 같이 헐렁해진 기분이었다.


  새 작업실에서 믹스테잎을 만들기 시작했다. 느낌 가는대로 비트를 고르고, 아무말 대잔치의 영어가사를 붙이고, 자유로운 탑라인을 올려 뚝딱 완성한 노래에 핀터레스트에서 가장 끌리는 사진을 골라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렸다. '버지니아 울프'가 울고 갈 의식의 흐름 기법 음악버젼이었다. 자유롭고 재미있고 흥이 났다.


  커버 작업에도 큰 변화를 줬다. 이제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할 것 같은 노래가 아닌 그냥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시드'는 물론 '에리카 바두와 조자 스미스, 리엔 라 하바스, 엘라 메이'의 노래들을 커버했다. 볼캡을 쓰고, XXL티셔츠를 입고, 꿀렁꿀렁 리듬을 타며 내키는대로 불렀다. 녹음을 믹싱하고 영상을 편집하던 복잡한 공정을 싹 다 버리고 원테이크로 찍어서 러프하게 사운드를 잡아 쿨하게 올렸다. 작업이 훨씬 재미있고 수월했다. 조금씩 실마리가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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