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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도 Oct 27. 2024

팬시 스튜디오


계획

 음악적 방향을 잘 잡은 것 같았다.

 이제 남은 중요한 고민은 이 음악들을 '어떻게 알릴 것인가' 였다. 커버곡 작업도 하고 있었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통로를 찾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톰 미쉬'의 작업기를 보게 되었고 영감을 받아 '작곡과정 브이로그'를 기획했다. 기획과 샘플촬영에만 한달이 걸렸다. 유튜브 채널기획과 함께 음원 발매를 위한 1년 계획까지 치밀하게 세웠다. 마침 연말이어서 새로운 시작을 도모하기에도 딱 좋았다. 2019년, 1월 야심찬 새해목표는 두 가지였다.


- 유튜브 구독자 1000명 모으기

- 데모 10곡 이상 쓰기



방치된 감정 덩어리들

‘팬시 스튜디오’ 채널을 개설하고 2019년 1월 3일, 첫 영상을 올렸다. 예상대로 반응이 좋았다. 컨텐츠 방향도 잘 잡은 것 같았다. 모든 게 술술 풀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예고레슨을 나가고, 커버영상과 작곡 브이로그를 만들고, 데모음악들을 만들었다. 반응이 좋았고 성취감 덕에 피곤한 줄 모르고 달렸다.


 최소한 한 달에 한 곡은 써야 유의미하게 컨텐츠를 올릴 수 있었으므로 한곡을 붙잡고 오랜시간 매몰되는 안좋은 습관이 사라졌다. 곡을 쓰면서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가벼운 소재들로 곡을 썼지만 점점 내면으로 파고 들었다.


 나는 그곳에서 방치된 감정의 덩어리들을 마주했다. 내면의 목소리를 못들은척 무시하고 스스로를 미워하며 불성실하게 미뤄 놓았던 감정들이 처박혀있었다. 마음의 병은 대부분 거기에서 기인한 것이 분명했다. 뒤죽박죽이 되어 경계를 구분하기도 어려워진 덩어리들을 바깥 쪽부터 조금씩, 살살 도려냈다. 아팠다. 하지만 아파도 해결해야 했다. 외로움을 잘라서 ‘섬’을 썼듯이, 불안을 잘라서 ‘roller coaster’를 쓰고, 공허를 퍼올려 ’starlight’을 썼다. 한해동안 무려 스므곡을 완성했다.



1집 앨범 "STRESS"

 데모 20곡,구독자가 2000명, 반념만에 목표치의 두배를 넘어 선 시점, 나는 정규1집을 발매하기로 마음 먹었다.


프로듀싱

 내면에서 채굴한 열두개의 감정들을 골라내어 옷을 입히고 머리를 빗긴 후 한놈 한놈 이름을 붙였다. 이 모자라고 소중한 녀석들을 세상에 내보낼 생각을 하니 마음이 찌르르 떨렸다. 불안, 외로움, 혼란, 두려움, 아픔, 공허, 냉소, 무감각, 절망, 기대감, 희망, 설레임을 나누어 담았다. 그 열두곡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찾아야 했다. 프로듀싱 과정에 세상에서 나를 제일 정확하게 잘 알고 있는 나의 남편이 함께 했다. 데모곡들을 들으며 몇차례의 회의 끝에 이 프로젝트의 시작점에서 가장 먼저 썼던 곡인 'stress'가 열두곡을 관통하는 키워드이자 앨범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곡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나의 첫 앨범의 제목은 'STRESS’가 되었다.


 이제 녀석들을 정갈히 포장해 줄 가내수공 아트웍 작업이 시작됐다. 컨셉을 잡고, 아이디어를 내고, 스토리보드를 짜고, 로케이션 견학을 다녀오고, 씬별로 의상을 준비하고, 소품을 준비했다.


앨범커버

 지난 1년간 내가 지박령처럼 서성였던 나의 작업실에서 앨범커버를 찍었다. 촬영 당일 나의 사진가 남편은 스튜디오용 조명과 촬영장비를 몽땅 가져왔고 그의 모든 기술과 센스를 집약하여 열두곡의 노래를 한장의 사진 속에 담아 주었다. 거대한 페르시아 양탄자와 딥그린 벨벳 커튼으로 둘러쌓인 공간에 나의 모든 악기를 던져놓고 그 가운데 앉았다. 벽에는 '에리카 바두'와 '마이클 잭슨'이 나를 지켜보고, 다스베이더, 요다, 고라파덕 등 나의 정체성을 표현해주는 캐릭터들을 프레임안에 배치했다. 정신없고 혼란하고 힙하고 키치하게 연출했다.


뮤직비디오

 뮤비촬영은 캐논의 DSLR과 당시 발매 한달차였던 아이폰13pro로 그 흔한 짐벌 하나없이 진행됐다. 남편이 촬영을 맡았고, 나의 베프둘이 만사 제치고 찾아와 도와주었다. 첫씬은 마찬가지로 작업실에서 찍었고 나머지는 외부촬영을 했다. 겨울의 초입이었던지라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송도의 나대지와 대형트럭 주차장 등 황량한 도시풍경을 찾아다니며 립싱크를 하고, 보드를 탔다. 아침 10시에 시작된 촬영은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우리는 작업실로 돌아와 엽기닭볶음탕에 소맥을 마시며 촬영마무리를 자축했다. 그리고 영혼의 영상편집에 돌입했다.




2019년 12월,

내면의 모험을 담은 팬시의 정규1집 'STRESS'가 발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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