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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도 May 06. 2024

탈서울 낭만의 실체

한 달 살이 서류 면접이 통과했으나 면접에서 떨어졌다. 처음에는 화가 났고(왜 날 몰라줘!) 이내 수긍했다(그럴 만 했어). 내 탈서울의 욕망은 사실 두리둥술했다. 로컬 청년들이 멋있어 보였기에 낭만에 취해 탈서울을 꿈꾸게 된 것도 맞고, 퇴사를 한 뒤 어서 새롭게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까지 뒤엉켜 있었다.


지원서에는 노동자-소비자에 한정되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나의 핵심을 찾고 싶다고 썼다. 선택지가 적은 환경에 나를 던져두고, 광고가 아닌 풍경이 있는 곳에서라면 내가 정말 원하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을 확실하게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유난히 성장 중심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 강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조금 덜 가지고 덜 누리며 단순하고 고요하게 살아가고 싶어서.


책 <탈서울 지망생입니다>은 탈서울에 초록빛 로망을 덧씌운 내게 우렁찬 일침을 가해주었다. "탈서울이 월든은 아니야!" 이 책은 탈서울을 꿈꾸던 일간지 기자가 탈서울한 14명을 인터뷰한 책으로, 탈서울을 하기 전 고려해야 할 현실적 사항들과 탈서울이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짚어준다. 전문직이나 창업, 귀농이 아닌 직종의 이직 어려움, 특히 문화 지식 계통의 일을 하는 이들이라면 포기해야할 인프라, 4인 가구가 정상 가족으로 여겨지는 분위기까지. 덜 불안한 분위기와 적은 선택지에서 오는 단순함, 경제적인 여유에서 생겨나는 심리적 여유 같은 장점도 함께 전한다. 작가는 탈서울을 미루고 서울에 정착했다. 그 행보 역시 서울살이를 여실히 드러내준다. 신혼부부 대출이 가능한 2인 가구가 됨으로써 꿈꾸던 주거 형태가 가능해졌고 주거 환경으로 인해 가치관도 변화한 것. 탈서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제 활동에 대한 장기적 계획이 가장 우선이라는 사실이 선명하게 와닿았다.


나는 탈서울을 진지한 선택지라기보단 일단 가면 달라질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가서 우왕좌왕 우당탕탕 무언가를 해볼 수 있을 거라고. 다른 지역의 한 달 살이 지원서를 쓰기 전 대체 나는 탈서울을 하면 무엇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해부해보기로 했다. '탈서울= 나다운 삶'으로 여겼던 내게 되돌아온 질문. 그래서 내가 꿈꾸는 '나다운' 삶이란 게 대체 뭐지?


눈에 띄는 매력이나 세련된 취향, 날카로운 주관 없이 밍숭맹숭한 온도의 사람인 나. 이런 내게도 '나다운' 게 있을까? 오래도록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지도, 원하지도, 동경하지도 않았다. 나를 알고 싶다는 마음을 품을 때마저 '내가 뭐라고 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라고 묻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혹시 나는... 무언가를 원하는 걸 두려워 해왔던 건 아닐까? 

내가 무언가를 원해도 되는 사람인지 확신하지 못한 채 나를 믿어주지 못했던 건 아니고?


일단 내 안에 옅은 채도로 존재하는 욕망들을 세밀하게 알고 싶어졌다. 남아있는 불씨를 감지해내고 작은 모닥불이라도 만들고 싶어서. 탈서울에의 로망을 품게 된 내 마음을 조금 더 아껴주고 싶어서. 어쩌면 탈서울은 빌미일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한다고 말하기 위해 느리고 안전한 우회로를 택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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