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서울

내게 필요한 건 술집도, 도시도 아니라, 내가 살았던 서울 동네였다.

by 은도

술집 쿨타임이 찼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이에 부산을 다녀왔다는 사실을 상기해냈다. 가게들이 밀집해 있는 번화가, 지하철의 편리함을 양껏 즐기며 매일 같이 술을 마셨다. 주종도 아주 다양하게. 술집 쿨타임이라고 생각했으나 술집에 가는 즐거움을 모두 누리고 왔는데도 도시 도파민이 채워지지 않았다. 자꾸만 서울 생각이 났다.


내게 필요한 건 술집도, 도시 도파민도 아니었다. 내가 살았던 서울 동네였다. 부산에서 눈물이 날 것 같았던 순간이 있었다. 황성 공원에 올라 광안리와 서면의 야경을 보자 울컥 짙은 그리움이 몰려왔다. 그 휘양한 야경이 내가 그동안 속해 있던 풍경이었다. 나는 농담처럼 "서울에도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이 있는데 말이지. 거기 야경이 정말 멋지거든. 아, 그리고 야경 스팟으로는 낙산 공원도 유명하고..." 괜히 그런 말을 덧붙였다. 부산에 있는 동안 내가 끊임없이 서울 얘기를 했기 때문에 친구들은 웃어 넘겼다. 좀 진상짓이긴 했지만 실은 부산에서 내내 서울에 대해 향수를 느끼고 있었다. 거대한 쇼핑몰이 밀집한 거리에서는 명동을 떠올렸고, 아기자기한 작은 가게들이 있는 동네에서는 망원동을 떠올렸고, 대학가에서는 신촌을 떠올리는 식이었다.


부산 친구는 내가 부산에 머무르는 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동네와 가게들을 데려가 소개해주었다. 자신의 취향을 잘 아는 사람이 오랫동안 살며 축적된 동네 이야기를 듣는 게 참 좋았다. 친구가 자주 걷는 산책길을 걸으면 그 산책길에서 자신이 보았던 해오라기, 쇠오리, 수달 이야기를 해주었고 집 근처에 자신이 좋아하는 절을 데리고 가며 퇴근길에 이 절을 한 바퀴 돌고 갔다며 좋아하는 드라이브 길을 따로 소개해주었다. 좋아하는 카페, 대학생 시절에 자주 갔던 식당, 자리를 이전하며 바뀐 가게들... 그렇게 동네와 얽힌 친구의 시간이, 동네를 향한 진한 애정을 듣는 시간이 좋았다.


그러다 나도 얘기하고 소개하고 싶어졌다. 내가 사는 곳에 대해. 그러나 아직 완주보다 서울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친구의 취향을 듣고 척척 그에 맞게 추천할 수 있는 가게를 알고 있고, 한강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기 좋은 스팟에 대해서도, 한강 공원으로 통하는 입구의 위치도 지도를 보지 않고 찾아갈 수 있다. 마포에서 오래 살았기에 다녔던 초, 중, 고등학교에 대해 얘기할 수 있고, 초등학생 때 가족끼리 늘 외식하러 갔던 식당에 대해 얘기할 수 있으며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들뜨며 취하고 싶을 때 가는 바와 차분하게 술을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바를 구별해 소개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자 서울로 친구들을 데려가 곳곳을 걸으며 익숙한 동네에 대해 한참 떠들고 싶었다. 그제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나는 도시의 번잡함을 누리고 싶은 게 아니라, 내게 익숙하고 편안한 동네를 누리고 싶은 거였구나. 내게 서울은 오랜 시간 살면서 쌓아온 역사가 있는 곳. 나는 익숙한 동네에서 느꼈던 편안함이 그리웠다.


완주는 아직 내게 익숙한 곳이 아니었다. 당연했다. 완주에 온 지 이제 3개월이 되어갈 뿐이니까. 서두르지 않고 친해져야지. 애정 어린 나의 동네가 될 수 있도록.





tempImageucborK.heic 날 눈물나게 했던 부산 황성 공원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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