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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드림 Mar 06. 2022

아이들의 독립이 곧 나의 독립이다

독서지도사 엄마의 독립 선언

독서 지도 교사로 나는 경력 단절을 끊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남편과의 집안일 업무 분장이나 지지를 받았다 하더라도 다시 일하기 위한 조건은 아직 다 갖춰지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일을 시작하러 나가야 할 때쯤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하교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기 전부터 일을 시작한 나는 아이들이 입학을 하게 되니 무척이나 난감해졌다.


너무 일찍 집에 오는 것이다.

1학년에 입학한 아들이 적응 기간이라며 점심도 먹지 않고 집에 오기도 하고 겨우 급식만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수업을 하러 나갈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이라 아들의 하교를 시킬 수가 없었다. 1학년 아들이 혼자 집으로 와야 하는데 우리 집은 학교에서도 거리가 꽤 긴 편이라 혼자 집에 올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중간에 학원을 넣더라도 비는 시간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혼자 학교 도서관에 남아 시간을 때우다가 학원에 가야 하는 것이다.


정말 난감했다. 이제 겨우 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이렇게 혼자 시간을 보내다 시간에 맞춰 학원 차를 타야 하거나 꽤 긴 거리를 걸어 집으로 와야 하니 말이다.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아이를 위해 일을 여기서 그만두어야 할까 심각하게 고민이 되었다.


만약 일을 쉰다면 곧 둘째도 학교에 입학을 하게 될 테고 그러면 일을 계속 못하게 될 것 같았다.


선택을 해야 할 때이다.

나는 내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다 이것이 명백한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일을 계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우선 하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아침에 등교하면서 아들에게 학교 가는 길을 여러 번 인지시켰다. 마을버스를 같이 타면서 언제 내려야 하는지 어떻게 버스를 타야 하는지 계속 연습을 시켰다.

당연히 일찍부터 핸드폰을 사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 큰 도움을 주신 분들이 있다. 바로 태권도 선생님들이다. 셔틀이 필요했던 나는 아들을 매일 태권도에 보내야 했다. 그러면 다행히 아들이 수업 후  학교에서 기다리다가 시간에 맞춰 태권도 셔틀을 타고  태권도 수업을 듣고 집으로 데려다주셨다.


내가 언제 시간을 바꾸든 항상 맞춰 주시고 언제나 아이들을 잘 챙겨주셨다. 선생님들이 없었다면 참 어려웠을 일이다.


이렇게 하교 문제를 해결하고 태권도에 못 가는 날이면 아들은 혼자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잘 왔다.

처음에만 어렵지 몇 번 하고 나니 크게 어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항상 불안했다. 아이가 잘 버스를 탔는지 차를 조심하면서 다니는지 학원차를 놓치지 않는지 언제나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아들은 나의 걱정보다도 훨씬 잘 해내었다.


집에 와서도 혼자 보내야 하는 시간들이 많다. 나는 아이에게 스케줄을 짜 주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리스트로 해서 적어 놓고 다 하고 나면 tv를 마음껏 보게 해 주었다.

내가 집에 있지 않으니 막을 방법은 없었다 일을 하려면 어느 정도는 이렇게 포기하는 것도 있어야 한다.


그러니 꼭 해야 할 일을 했다면 나는 다른 것을 하는 것에 크게 간섭하지 않았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그때그때 우리는 서로 협의하면서 맞춰 나갔고 일하는 엄마를 가진 아들이 포기해야 하는 것과  일을 하려면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서로 알게 되었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다. 따뜻하게  집에서 맞아주는 일이 없었다.  


일하는 엄마들이 다 가지고 있는 죄책감 말이다. 아빠들은 절대 갖고 있지 않는 그  죄책감은 고스란히 일하는 엄마들의 몫이다.  그것 또한 엄마들이 넘어서야 할  산이다.  아이들이 조금만 잘 못되어도 내가 일을 해서 그런가 내가 아이들을 잘 못 챙겨서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일을 해서 아이들을 더 독립적이 되었다.  아이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하고 씩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하는 엄마가 힘들까 봐 아이들은 엄마에게 더 잘했다. 스스로 하려고 더 노력했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하는 아이들이 더욱 믿음직스럽고 고맙다. 내가 일을 하지 않고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았다면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   


아이들의 독립은 나의 독립이 되었다. 서로의 독립을 더욱 응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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