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장애인으로 살아온 저자 김원영의 외침은장애를 가진 삶의 부당함에 대한 고발이 아니다.장애인의 삶에 투영된 우리 모두의 ‘존엄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변호사로서 합리적 논리로, 때로는 아름다운 감성적 문체로 신체 멀쩡한 우리 안에 깊게 뿌리내린 장애적 사고를 되돌아보게 한다.
인간의 존엄은 사회적 지위와 역할과 무관하게 모두에게 동일하고 똑같이 소중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경제적 수준, 직업적 지위, 성별, 외모 등 다양한 조건에 따른 보이지 않는 계층으로 구분되어 서로에 대한 차별과 소외를 주고받는다.
지인 중에 다리가 굽고 발음이 어눌한 데다 외형이 좀 남다른 어린 친구가 있다. 언젠가 내게 와서 자신의 핸드폰에 녹음된 목소리를 들려준 적이 있다. 어눌한 목소리를 흉내 내며 비아냥대고 놀리는 같은 반 아이의 무례한 목소리였다.
우리들 사이에 존재하는 장애인 비하 놀림이나 희롱은 이 사회를 이끄는 지도층인 성직자, 정치가, 권력자, 나아가서는 우리기성세대에게 책임이 있음을 작가는 지적한다.
힘센 자들에 의해 무심하게 구축되어온 사회구조 속에서, 태어나면서부터 또는 살다가 문득 우리 중 누군가는 이 사회의 소수자가 되어 주류사회의 문 밖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
장애를 지닌 사람으로서 사회의 배타적 시선을 견디기 위해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자신을 분리하고, 때로는 대중의 무시와 천대를 삶의 동기로 삼기도 한다.
목적적인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의 ‘선행의 도구’로수단적인 삶에 처하기도 한다.‘장애가 현실이 아닌, 신체가 현실’이라고 하는 생존을 위협받는 삶.그래서, 자신을 사랑하는 부모조차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출생 이전으로 되돌리고 싶어 하는 수용 불가의 삶이 우리 안에 있는 누군가의 현실이다.
우리는 때때로 존재를 무시당하고, 관계에서 배척되는 크고 작은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고유한 개인으로서가 아닌, 장애인, 노인, 빈곤층, 성 소수자 등으로 ‘기호화’ 되는 삶 앞에 우리의 존엄은 위협당한다.
저자가 지향하는 ‘장애가 하나의 스타일로서, 아름다움의 실현’으로 까지 현실화를 위한 길은 너무나 멀고 험하다.저자가 제시한 ‘논리적 근거를 강제하는 대화’로 한발 한발 우리 의식을 진보시켜 갈 때,무지와 편견의 부당함에서 우리 삶을 지킬 수 있다. 태어난 신체 조건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것이 모두에게 똑같이 삶의 축복이 될 수는없을까?
책을 읽으면서 다소 ‘그들’의 이야기를 대하는 마음으로 첫 페이지를 열었다면 마지막 장을 닫을 때는 나의 이야기, 우리들, 내 삶의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만,살면서 겪게 되는 자기만의 고통을 통해, 타인의 삶에 대한 공감적 만남이 가능하다. 함께 살아가는 누군가가 행복하지 않으면 나도 행복할 수 없다.
여기서 실격당해야 할 것은 장애를 가진 이의 삶이 아닌, 배타적 사회구조에 갇혀 진화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된 사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