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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이 May 09. 2020

내게서 당신에게로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까이”


요즘 사랑받고 있어요. 바로 당신에게서.
당신도 사랑받고 있어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직장에서 나는 코로나 19 방역담당자로서 업무를 하고 있다. 매일의 위기상황을 주시하고 지침을 숙지해서 동료와 함께 실행해야 한다.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예방수칙을 읊어 보자.
손 씻기

기침 예절 지키기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 두기


그렇다. 그런데 거기에 항상 따라붙는 수칙이 하나 더 있다.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까이
얼핏 생활수칙이라 하기에 잔망스럽게 느껴지는 문구다.

 인간은 오래도록 지구 건강을 해치는 지독한 말썽꾸러기로 존재해 왔지만, 이번에는 그 우리를 향한 바이러스의 역습에 모두 함께 고초를 겪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서로를 경계하며 갇혀 지내는 일상으로 내몰리면서, 출구를 알 수 없는 비관적인 전망에 마음 한켠이 회색빛 절망감에 젖어 들 무렵.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까이
혹처럼 붙어 있던 문구가 수줍게 의미를 드러내며, 그 훈훈함으로 언 마음을 데워준다. 낮고, 작게, 조금씩 우리 안을 비집고 들어와 따스한 가치로, 생명존중의 실천으로 자리 잡는 것 같다.

 자동차들이 바쁘게 흐르는 출퇴근 길 복잡한 대로에서 굼뜬 운전자인 나는 여차하면 요란한 경적으로 혼나기 일쑤지만, 요즘은 지 그 경적소리가 뜸해지고, 쉽게 길을 양보받다. 덩달아 내 마음도 너그러워지지 않을 수 없다.

 코와 입을 막고, 거리를 두는 것이 나뿐 아니라 당신을 위한 것임을 알기에, 낯선 대상을 향한 서로의 시선이 따사롭다. 폭주하는 업무와 더불어 동료 간의 이해 다툼과 신경전도 한껏 더해지기 쉽지만 '이게 뭐라고?' 하는 심정으로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점심 식사 후, 모처럼 청정한 봄날의 공원을 산책하다가 공과 함께 달리고 구르는 소년을 보면 반갑고 사랑스럽다. ‘공부가 뭐라고. 저렇게 뛰어놀아야 하는데.’ 마음이 울컥한다.


 국경을 모르는 전 지구적 인간을 향한 재앙 앞에서 강건한 나라들은 저 멀리에 있는 약소국 아프리카와 아마존 원주민을 걱정하고 있다. 개인은 저마다 힘들어졌지만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의 삶을 살피는 마음을 낸다.

 우리는 눈부신 발달 속 현대를 살고 있지만, 자본에게 우리 삶을 빼앗기고, 교육도 정치도 경제도 이기적 부와 이익만을 추구해 왔다. '신자유주의’라는 극적인 자본 권력 중심의 구조 물의 리를 거스른 채, 아래에서 위로 향 있다. 가장 혹독한 맨 아래 자리에서빈곤한 노동자, 노인, 장애인과 같은 우리 사회 최고 약자가 삶을 견디고 있다.



 엉뚱하게도, 우리 삶을 위협하는 얄궂은 바이러스 도구 신세로 전락했던 인간의 자리슬그머니 중심의 제자리로 되돌려놓고 있다. ‘긴급재난 지원금’이란 자본이 우리 삶을 회복시키기 위한 공평한 수단으로 쓰이게 된 것이 한 예가 아닐까?수십 년 동안, 절벽을 향해 내달리는 양 떼와도 같은 위험한 질주멈추고, 우리 삶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에서 주인공 산티아고는 세상의 진리를 찾기 위해 그 표지를 쫓아 여행길에 나지만, 파랑새는 저 멀리에 있지 않음을 우리 이미 잘 알고 있다.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까이”
이것은 생명을 돌보라는 천둥 같은 진리의 표지다. ‘고’의 외양으로 ‘공존과 연대 말하고 있다. 

진리를 향한 표지는 내 책상 위 꼬깃한 예방 수칙 문서 안에 들어있었다. 바이러스가 우리를 위협하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는 새로운  앞에 서 있다.  표지는 지나온 낡은 생각을 떨치고, 새로운 가치를 세워 다시 시작하는 지점이다.

이기적인 행복과 물질적 풍요만 쫓던 볼썽사나운 경주는 잠시 멈췄다. 당신의 행복이 나의 것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있는 지금, 새로운 시대를 향한 멋진 출발을 위해 우린 ‘알을 깨고 나오는’ 중이다.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까이”

 낮게 속삭여 보자. 당신과 나 사이에서 깊고 넓게 증폭되는 사랑을 느끼며, 함께 낡은 문을 닫고, 새로운 문을 향해 출발하는 우리의 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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