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이 필요한 날엔 커피를, 그리고 여유가 필요한 날엔 차를 마신다. 요즘처럼 아이의 가정보육이 길어지는 날엔 집중에 용이한 커피보단 차 한 잔 마시며 가지는 여유가 간절해진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아이가 늦은 낮잠에 들면 남편이 퇴근하고 오기 전까지 짧은 자유 시간이 주어지는데 그럴 땐 가장 먼저 차를 위한 물을 올린다. 물이 끓을 동안 차로 가득찬 서랍을 열어 그 날 마실 차를 고르는데 최근에는 거의 다즐링이나 기문을 마신다.
차를 마실 때쯤 되면 대체로 허기가 지는데 달콤한 디저트가 있을 때는 거의 다즐링을 선택한다. 요즘 마시는 다즐링은 딜마에서 나온 다즐링 세컨 플러시로, 딜마는 스리랑카에 다원을 보유하고 있는 호주 브랜드이다. 유명세에서는 아주 조금 떨어지지만 맛이 좋아 집에서는 딜마의 다즐링과 기문, 얼그레이를 구비해두고 있다. 가격이 아주 저렴하지는 않지만 맛이 좋기 때문에 홍차를 즐기기 시작한 분들에게 선물하기 좋아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선물을 하거나 선물용으로 추천을 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티타임>은 고등학교 졸업 후부터 60년 간 정기적으로 모여 티타임을 가지는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 영화를 본 후부터 한동안 매일 마시던 커피 대신 차를 마시게 됐다. 같이 티타임을 가져주는 친구나 직접 만든 디저트는 없지만 혼자서 가지는, 배달이나 인터넷으로 시킨 구움과자와 함께 즐기는 티타임은 요즘 같은 상황에는 호사스럽게 느껴질 정도이다.
가끔 그마저의 여유도 없고 날이 더워 뜨거운 차를 마시기 힘들 땐 기문을 진하게 우려 얼음과 함께 마신다. 어린 날의 시원한 보리차를 떠올리게 하는 차가운 기문은 향이 단순하고 적당히 쌉싸름해서 여름에 차갑게 마시기 정말 좋다. 홍차 특유의 향을 싫어하는 아버지나 탄산을 좋아하는 남편도 차가운 기문은 곧잘 마실 정도니 여름에 손님대접용으로 이만한 차가 없다.
봄에는 홍차사이트 ‘앨리스키친’에서 산 다즐링 퍼스트 플러시를 즐겨 마셨는데 맛이 좋아 열심히 마시다보니 여름이 오기 전에 똑 하고 다 떨어져버렸다. 봄에는 주로 디저트 없이 차만 마셨는데 요즘 마시는 다즐링 세컨 플러시는 거의 대부분 디저트와 함께 한다. 코로나로 외출이 힘들어지면서 직접 사러 나가기 보다는 주로 배달서비스를 이용하는데 평소 좋아하던 가게의 구움디저트를 사두고 며칠씩 나눠먹곤 한다. 밥을 먹기에는 시간이 이르고 차만 마시기에는 허기질 때 달달한 구움디저트 몇 조각과 차 한 잔이면 당이 충전되고 배도 딱 적당히 불러 알맞다.
매번 차를 마실 때마다 주전자, 티팟, 티스푼과 거름망, 찻잔과 찻잔그릇, 그리고 디저트를 담을 접시까지 꺼내어 먹다보면 설거지가 귀찮아질 때도 있지만 나를 위해 잠깐이라도 시간을 쏟다보면 종일 아이와 집을 위해 애쓰던 내게 조금은 위로가 될 때가 많다. 남을 위해 차를 대접하는 것처럼 내 자신에게 맛있는 차를 우려 대접하는 일은 오늘도 최선을 다하기 위한 나름의 의식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