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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네제인장 Aug 25. 2023

심심한 식빵에는 투박한 포장을


기침 때문에 잠에서 깬 김에 일어나 집을 치운다. 새벽동안 배송된 택배를 정리하는데 택배 상자 안에는 된장찌개 재료와 토마토, 치즈, 또 아이를 위한 간식이 들어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꺼내보는 것은 기대해 마지않았던 식빵!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종이 상자에 포장된 식빵은 그 안에서 한 번 더 비닐 포장이 된 모습이었다. 쿠키 포장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케이크 포장이라고 할 수도 없는 모습에 뭔가 기운이 빠진다.


맛이 좋다는 평이 많아 기대하며 비싼 값을 치르고 산 빵인데 이렇게 포장을 해놓으니 오히려 기대감이 줄어든다. 빵은 어째서인지 대충 비닐이나 종이봉투에 쌓여 막 오븐에서 나왔을 때의 모습과 비슷할수록 기대감이 커진다. 맛은 다른 사람들의 평처럼 나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포장 방식 때문에 앞으론 시키지 말아야지, 원래 시키던 다른 빵(마침 품절이라 시키지 못했다)을 주문해야지하고 생각한다.


아이는 식빵, 모닝빵, 소금빵을 좋아하고, 가끔 크루아상도 먹는다. 딸기잼과 치즈, 그리고 빵을 쟁반에 담아 주면 혼자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기도 좋아하는데 어떤 날은 아무 스프레드 없이 빵 한 장만 덥석 쥐어줘도 잘 먹는다. 아이가 빵을 다 먹고 난 후의 흔적을 살펴보면 이따금 빵 테두리만 남아있을 때가 있는데 이유를 물어보면 질겨서 먹기가 싫었다고 한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부드러운 테두리는 남기지 않고 정말 다 먹는다.


어릴 적 입이 짧은 편이었지만 엄마가 식빵에 직접 만든 딸기잼을 발라서 주면 곧잘 먹었다. 엄마는 토스트를 만드는 것도 좋아했고 그것 역시 맛있었지만 그래도 어릴 적 가장 좋아하던 것은 식빵 한 장에 잼을 바르고 반으로 접어 먹는 거였다. 두 장을 겹쳐서 먹을 때보다 한 장을 접었을 때가 잼맛을 더 즐길 수 있어서 내가 만들 때는 꼭 한 장을 반으로 접어 먹었다. 두 장을 겹칠 때도 양면에 잼을 바르면 똑같이 잼 양이 늘어나서 괜찮지 않나 싶지만 그게 묘하게 다르다. 빵의 부드러운 단면이 반으로 겹쳐졌을 때의 식감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나도 빵 끄트머리는 썩 좋아하지 않아서 반으로 접은 샌드위치를 먹을 땐 거의 무감각한 상태로 테두리를 질겅질겅 씹어먹고 하얀 부분을 먹을 때만 눈을 반짝였다. 모든 건 이 부드럽고 달콤한 부분을 먹기 위한 여정에 불과했다는 듯 언제나 그 과정을 즐겼다.


그러고보면 빵테두리, 끄트머리, 껍질 등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다. 어느 나라에는 그 부분을 칭하는 이름이 따로 있는 경우도 있다던데 일본에서는 어쨌더라, 기억이 안난다. 이름 존재의 유무는 몰라도 십여년 전에는 빵집에 가면 식빵 테두리만 봉지에 따로 담아 공짜로 나눠주기도 했다. 유학생 친구 중에는 그걸 받아서 요리를 해먹는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에 아마도 일본에서도 식빵 테두리의 입지는 그리 높지 않았을 거라고 본다(요즘은 어떤지 모른다). 동북아시아에서 유난히 부드러운 식감의 빵이 인기라던데 식빵 테두리의 대접도 그것과 관련이 있는게 아닐까 내멋대로 생각한다.


모닝빵이나 소금빵을 좋아한 기억은 없지만(애초에 소금빵이 존재하지 않았다) 비슷한 빵은 좋아한 기억이 있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기다란 빵이었는데 한 봉지에 세 개, 네 개 정도 들어있었던 걸로 안다. 비닐봉지에는 영국 병정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빵 이름을 몰랐기 때문에 언제나 그 그림을 보고 빵을 고르곤 했다. ‘빵은 빵집에서 사야지’라는 이론을 가지고 있던 엄마도 그 빵은 가끔 사줬는데 나는 담백하고 부드러운 병정 빵이 잼 바른 식빵 다음으로 맛있다고 생각했다. 케이크는 예쁘고 달콤하지만 아무래도 좀 과한 느낌이라 어린 내게는 별맛 없는 길쭉이 병정빵이 입맛에 딱이라고 생각하며 먹었다.


아이들은 무조건 달달한 걸 좋아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러고 보면 우리 집 어린이도 시리얼은 단맛 없이 옥수수가루로만 튀긴 걸 가장 좋아한다. 초코나 사탕에서 느껴지는 진한 단맛도 좋지만 은근한 단맛이 나는 빵이나 시리얼은 어릴 적 먹던 젖이나 분유 맛과도 비슷해서 그런지 또 즐겨 찾게 된다.


식빵은 그 이름답게 배를 채우기 위해 와구와구 먹는 맛이 있다. 요즘에는 식빵을 이용해 멋들어진 프랜치토스트를 파는 곳도 많지만 그냥 달걀물에 푹 담갔다 전 굽듯 구워서 먹는 멋없는 프랜치토스트를 더 좋아한다. 예쁘게 조금씩 썰어먹는 거 말고 포크로 찍어 우유와 함께 와구와구 입에 집어넣던 엄마표 프랜치토스트는 어느 맛집에서 먹은 토스트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특별히 좋은 밀가루에 프랑스산 버터를 넣고 만들었다는 비싼 식빵이라고 해도 투박하게 종이봉투나 비닐봉지에 들어가 있는 게 좋다. 오늘 받은 식빵은 마치 햇반이 선물포장되어 있는 것처럼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게 겉멋을 부린 느낌이다. 쌀이나 밀가루라면 또 괜찮은데 다 만들어진 밥이나 빵은 아무래도 집밥, 집빵 같은 느낌이 나는 게 좋다. 그릇으로 비유하자면 아무리 좋은 그릇이라고 해도 밥을 샐러드 접시나 찻잔에 내어오면 낯설 듯이 식빵은 식빵답게 투박한 포장이었으면 좋겠다. 뭐 내 의견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말이다.


식빵 이야기가 나온 김에 살면서 가장 맛있게 먹은 식빵을 이야기해 보자면 친구에 집 식빵 기계 안에 들어있던 갓 완성된 식빵이다. 출근한 친구 엄마가 미리 만들어두고 간 거였는데 살면서 그렇게 부드럽고 맛있는 식빵은 처음 먹어보았다. ‘갓 만들어진 식빵은 이런 느낌이구나’하고 눈이 번뜩이는 순간이었는데 식빵을 떠올릴 때면 그날의 친구집 풍경도 덩달아 떠올라서 교복을 입은 우리의 모습이나 지금은 어엿한 성인이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쪼그만 아이에 지나지 않았던 터울 나는 친구 동생이 생각난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갓 만든 식빵을 처음 맛보았을 때의 경험은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 비슷한 경험이라도 하려면 앞으로도 다양한 요리와 재료를 먹어보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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