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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네제인장 Oct 04. 2023

커피 하나 반, 올리고당 한 바퀴에 우유 듬뿍


밀크팬에 담긴 자작한 물에 알커피 한 스푼 반을 넣고 끓이다 우유를 붓는다. 우유 가장자리에 거품이 일기 시작하면 미리 올리고당을 뿌려둔 컵에 부어준다. 수저로 커피를 저어준 후 쿠키나 다크초콜릿과 함께 마신다.




점심 식사가 끝나는 대로 따뜻한 음료를 챙겨 마시는 습관이 있다. 요즘은 매일 인스턴트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카페인 함량이 높지 않은지 한 잔 가득 마셔도 밤잠을 설치지 않는다. 예전에는 인스턴트커피에 편견이 있었는데 막상 시도해 보니 입맛에 잘 맞다. 남에게 대접할 때는 다른 종류의 커피를 내겠지만 혼자 간편하게 마실 때는 거의 인스턴트만 마신다. 알 커피는 촌스러운 어른들이나 마시는 거라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촌스러워진 거라기보다는 입맛이 한증 너그러워졌다고 말하고 싶다.


드라마 <무빙>에는 다방 아가씨가 나온다. 다방에서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지만 다방 직원 앞에서 '커피 한 스푼 반, 올리고당 한 바퀴, 우유 듬뿍 이요!'라고 말하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아마 다방뿐 아니라 어느 카페에서도 그렇게 말하면 좋은 대접받기 어려울 거다. 어쩌면 이런 커피 취향을 보고 ‘까다롭네요’라고 하거나 ‘커피맛도 모르는 주제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인스턴트커피라고 하면 간편하고 마시기 쉬울 거 같지만 내가 원하는 레시피의 커피를 마시려면 집에서 스스로 만들어 먹어야 한다.


요즘은 커피라고 불리는 음료가 다양해지고 원두의 종류나 커피를 추출하는 방법 또한 폭넓어졌지만 어릴 적 봐온 건 엄마가 타먹는 집 커피 아니면 자판기 커피가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알커피보다 믹스커피가 대세지만 심지어 그때는 스틱형 믹스커피가 나오기 전이었다. 그때도 지금의 카페와 비슷한 커피숍이란 게 있었지만 엄마나 다른 어른을 따라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엄마를 비롯한 주변의 기혼 여성들은 카페에서 모임을 갖는 것이 아닌 주로 서로의 집에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었다. 다들 친한 사람의 레시피는 외우고 있었고 그러다 어느 날에는 프림이 살이 찐다는 이유로 '프림 빼고, 커피 하나, 설탕 하나'를 외치는 게 유행처럼 번졌던 것도 기억이 난다.


집에서 엄마가 이웃 여성들과 커피를 타 마실 때 옆에 앉아있으면 어른들이 맛있게 마시는 커피의 맛이 궁금했다. 고개를 쭉 내밀고 ‘무슨 맛이야?’라고 물으면 엄마는 내 속내를 눈치채고 가끔 뜨거운 물에 프림만 탄 것을 만들어주곤 했다. 맛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른들만 먹는 걸 얻어마신다는 사실이 특별했다. 색깔은 자판기 우유 같기도 한데 달지 않아서 썩 맛은 없었지만 어른들의 재료로 만든 음료를 마신다는 것이 신나서 매번 남기지 않고 홀짝홀짝 잘 받아마셨다.


여름에 아주 운이 좋을 땐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얻어마실 때도 있었다. 겨울에 마시는 뜨거운 커피보다 달고 시원해서 한 모금쯤은 허락받을 수 있었고, 한 모금쯤은 쓴맛을 참고 먹을만했다. 인스턴트커피를 넣고 만든 냉커피가 든 잔을 흔들면 아이스아메리카노나 아이스라테보다 걸쭉한 소리가 났는데 설탕 탓일 수도, 프림 탓일 수도 있다. 그 소리는 아메리카노보다는 오히려 물에 탄 미숫가루가 든 잔과 더 비슷했는데 그래서인지 지금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보다는 차가운 미숫가루를 볼 때 어릴 적 보던 엄마의 커피가 떠오른다.


‘커피 하나, 설탕 하나, 프림 하나’가 집에서 흔히 마시는 커피였다면 밖에서는 자판기 커피가 일반적이었다. 같은 인스턴트커피지만 기계마다 배합 비율이 묘하게 달라 ‘어느 가게 앞 자판기가 맛있다’, ‘왼쪽 자판기가 맛있다’ 같은 이야기를 어른들이 나누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아직 어려 자판기의 커피 맛을 구별할 수 없었지만 어른들이 가끔 인심 쓰듯 뽑아주던 코코아나 우유에는 관심이 많았다. 코코아보다는 우유 파였는데 최근에 건강을 위해 먹기 시작한 칼슘분말에서 비슷한 맛이 나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요즘은 자판기 우유를 마시고 싶어도 자판기 기계를 찾기가 어려운데 건강을 위해 챙기기 위해 마시기 시작한 칼슘분말 우유가 그 향수를 조금 달래주었다.


월요일에는 무용수업에서 믹스커피를, 나머지 요일에는 집에서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다 보니 어릴 때 봤던 엄마의 모습에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 든다. 몇 년 전만 해도 하루에 믹스커피만 몇 잔씩 마시는 엄마가 불만이었는데 지금은 나도 인스턴트커피만 주로 마신다. 설탕 대신 올리고당을, 프림 대신 우유를 넣었으니 엄마보다는 조금 더 건강한 커피 습관을 가졌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엄마도 평생 인스턴스 커피만 마신 건 아니고 한때 커피 메이커로 내려 마시는 원두커피나, 헤이즐넛 커피를 즐겨마셨다. 결국은 돌고 돌아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는 것이 엄마를 똑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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