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흑화를 시작했다

비좁은 세 시간 : 일상 에세이

by 으네제인장

어제는 새벽 세 시가 지나서야 잠이 든 아이라 그래서 늦잠을 자겠거니 기대를 해보았던 오늘 아침. 살금살금 먼저 거실로 나와 컴퓨터를 켰는데 켜지자 마자 아이가 방에서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컴퓨터를 끄고 어쩌다 보니 둘 다 세수만 한 채 곧장 수족관 행. 막 문을 연 수족관에는 손님이 얼마 없었고, 마주치는 손님들은 온통 나처럼 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들 뿐이었다.


재미있게 구경했으니 집에 가면 조금은 편하게 글을 쓸 수 있겠지 하는 기대를 하며 수족관에서 장난감까지 하나 쥐어주고 집으로 돌아와 밥부터 먹이는데 벌써 고된 것은 왜 였을까. 아직 집안일도 하나도 못했고 물도 한 모금 못 마셨는데 말이다. 게다가 어제 쓴 글이 쓰레기라 오늘은 새 마음 새 뜻으로 다시 글도 써야 하는데? 근데 벌써 힘이 들면 어떡하란 말이죠?


지난주에 링거를 맞고 든 멍이 아직 다 빠지지도 않았는데 덜컥 어린이집 휴원 소식을 듣게 되다니, 정말이지 이런 말은 쓰고 싶지 않았는데 ‘빡이 쳤다’. 게다가 뭐? 방학보다 더 길게 휴원이라고요? 장난하나. 아이가 쉬면 그 애는 대체 누가 보는데!


차라리 방학과 휴가가 많을 시기에 하던지 이제 와서 4단계라니, 휴원이라니, 이 뭐 같은 소리를 하는 정부가 원망스러웠다. 도대체 그들은 그 아이들을 돌보는 이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 걸까. 애가 쉬면 애를 볼 누군가도 같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는 걸까, 알지만 거기까지는 자기네들이 도울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걸 지도 모르겠다.


긴급 보육이라는 게 있긴 한데 나처럼 차가 없는 사람들은 차량 등원이 안되면 오가는 내내 택시로 아이를 등 하원 시켜줘야 하고, 그렇게 보낸다고 하더라도 어린이집에서는 안 보냈으면 하는 눈치를 주기 때문에 거참, 보내기가 쉽지 않다(우리 아이 어린이집이 유난히 더 그런 거일 수도 있다).


주위에는 팬데믹이 시작되고 일을 그만둔 사람들이 있는데, 남자보다는 여자의 비율이 훨씬 많다. 사회 전체 사정은 모르겠고 어쨌든 내 주위에는 대부분 여자들이 애를 보고 일도 그만두고 그러더라. 맡겨도 할아버지보다는 할머니에게 더 많이들 맡기고. 아니, 상황이 이런데 페미니즘이 안 흥하고 배기겠나, 사회에, 나라에 불만이 안 생기고 배기겠나 하는 생각이 울컥하고 치민다.


화는 나는데 무턱대고 화를 내고 싶지는 않고 그래도 지성인의 끈을 놓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에 작년 가을에 나온 <창작과 비평> 속 글을 다시 찾아 읽어보았다. ‘탈성장 전환의 요구와 돌봄이라는 화두’라는 글과 ‘코로나19 이후의 학교 생태계는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두 글을 다시 읽으며 작년보다는 훨씬 더 큰 공감을 하게 된 건, 그래도 작년에는 조금의 희망, 그래도 이 상황이 머지않아 끝날 거야 라는 희망을 품은 상태였다면 지금은 ‘이거 이제 걸핏하면 휴원하고 자빠지는 거 아냐?’라는 합리적 의심을 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실 돌보는 나도 나지만, 어린이집이며 외출이며 무조건 제한하라고 하는 정부의 요구를 보며, 도대체 아이들에 대해 제대로 생각을 하는 걸까, 요즘 들어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어른들이야 일 년 즈음, 어차피 작년이고 재작년이고 올해고, 어제고 뭐 다 똑같아서 모르겠다 싶을 때도 많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생각이 달라진다. 그런 아이들에게 그냥 집 안에서만 지내라고 하다니, 게다가 층간소음은 내지 말고 스마트폰도 너무 오래 하면 안 된단다. 도대체 어른들은 아이들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학생들은 줌으로 수업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이들을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또 해야 하는 AI나 장난감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 즈음되면 몸이 불편하거나 거동이 힘든 환자나 노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건지 상상도 못 할 지경이다. 가끔 바다에 나가면 어르신들이 나와서 마스크도 없이 그늘에 앉아있는 걸 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화가 나려다가도 가뜩이나 나이 먹고 가만히 앉아 숨쉬기도 힘든데 전기세 걱정 없이 집안에서 에어컨을 펑펑 틀 수 있는 여건이 있는 환자, 노인들이 얼마나 될까 싶어 그냥 피해서 지나가게 될 때가 많다. 그나마 살겠다고 밖으로 나온 이들을 욕하는 건 아무리 흑화가 된 지금의 나라도 도리가 아니지 않은가(그래도 노 마스크에 흡연은 좀 참아주세요!).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데다 앞으로라고 해서 더 나아질 거 같지도 않아 화가 나는데 화를 낼 곳이 없다는 게 진짜 제일 화가 난다. 엄마 껌딱지인 아이에게 화를 낼까, 일이 바쁜 남편에게? 아니면 도와주지 않는 부모님에게 화를 낼까. 시키는 대로 휴원 한 어린이집에게 화를 낼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니 나라에게 화가 난다. 조금 더 나은 방안을 생각해내지 못하는 나라에게 가장 화가 난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 가장 큰 피해를 받는 것이 점점 더 돈이 없고 또 힘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반발심이 생긴다.


내가 책상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하면 아이는 한참을 울다가 결국 단념하고 텔레비전을 본다. 그렇지만 나날이 지날수록 아이의 짜증은 더욱 거세진다. 스트레스가 쌓이는 건 나뿐이 아니라 아이도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아이 하나를 돌보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아이 둘, 셋을 돌보며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은 어떨까. 어린이집에서 긴급 보육을 거부당한 맞벌이인 가정은 또 어떨까. 아이를 돌보는 나도 이렇게 힘든데 환자나 노인을 돌봐야 하는, 게다가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다른 돌봄 이들은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고 걱정이 된다.


다들 이 상황에서 보살처럼 참고 사는 걸까, 아니면 이미 빌런이 되어버린 걸까. 빌런이 되기로 한 나는 앞으로 국가가 시키는 대로 잘하기보다는 더 나은 방안을 내어달라고 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때리고 소리치지 않아도 우는 아이를 못 본 척 한 채 글에 집중하는 것도 나는 학대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느새 이미 아이를 학대하는 엄마가 되어버린 거다. 그러니 이제는 국가가 시키는 대로 보살처럼 가만히 살고만 있지는 못하겠다. 잘하고 있다는 칭찬은 그만두고

“우리 집 아이가 당신네들이 내놓은 대책 때문에 학대를 당하고, 나는 학대하는 엄마가 되고 있다고요! 그러니 국가여, 제발 제대로 된 대책을 내어주시길. 이제 그만 그 모든 책임을 내게 떠넘기지만 말고요!”


라고 소리 내는 빌런이 되어야겠다.

keyword
이전 09화8. 아직은 부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