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좁은 세 시간 : 일상 에세이
어젯밤에는 아이가 웬일로 일찍 잠이 들었다. 실은 웬일은 아니고, 바닷가 산책을 다녀온 덕분에 일찍 잠이 든 거였다. 퇴근 후 산책에 합류한 남편도 텔레비전을 보다가 소파에서 잠이 들었고, 나 역시 몰려드는 피로에 잠이 왔지만 엉망이 된 집을 조금이나마 치우고 잠들고 싶은 마음에 거실 한복판에 펼쳐진 간이 테이블을 접어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랬듯 접은 테이블을 거실 한 구석에 넣어두기 위해 걸음을 몇 발자국 옮겼을 때 순간 내 눈과 기억을 의심하는 광경이 눈앞에 놓여있었다.
‘음, 우리 집에 저런 모형이 있었던가? 내가 우리 애한테 곤충 장난감을 사준 적이 있었나?’
피로에, 맥주 한 잔으로 인한 취기까지 더해져 사고 전환에 시간이 걸리는 동안에도 검지 손가락만 한 눈앞의 바퀴벌레는 꼼짝 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사사삭’하고 걸음을 옮겼거나 ‘붕’하고 날아올랐다면 소리를 질렀겠지만 어째서인지 바퀴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늦게서야 그것이 진짜 바퀴벌레인 걸, 그것도 왕바퀴벌레라는 걸 알아차리고 아주 다급하게 남편을 흔들어 깨우며,
“오빠 바퀴, 오빠 바퀴벌레. 빨리!”
하고 소리를 치자, 고작(?) 바퀴벌레 한 마리 가지고 자신을 크게 깨운 것에 기분이 언짢아진 남편이 내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벌렁거리는 가슴 때문에 남편의 기분을 살필 여유 따위는 잃고 그대로 아이가 자고 있는 안방으로 줄행랑을 쳐버렸다.
‘잡았겠지? 잡았겠지?!’
쭈그리고 앉아 두 손까지 모은채 속으로 같은 말만 반복했다. 그러나 잠시 후 방문을 연 남편은 그 존재가 에어컨 뒤로 숨어버렸다며 못 잡는다는 말만 했고. 그러며 계속 그 한 마리 때문에 사람을 이렇게 놀라게 했냐며 투덜거리는데(남편은 곤충에 별로 거리낌이 없다) 그리 말하는 남편이 보기에도 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였는지 결국에는 하던 말을 그만두고 다시 문을 닫고 거실로 돌아가버렸다.
한참 후 거실 불을 다 끈 남편이 방으로 돌아왔고, 사체는 쓰레기 봉지에 버려졌다는 답을 전하는데 그럼에도 나는 계속 찜찜하여 정말 사체가 된 것이 틀림없을까, 왜 변기가 아닌 쓰레기 봉지에 둔 거지 같은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그렇지만 뭐 잡았다고 하니 적어도 내일 혼자 집에 있는 동안 또다시 마주할 일은 없겠다 싶어 아주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껏 대형 벌레라고는 볼 수 없었던 집 안에 왜 갑자기 그런 생명체가 나타난 걸까. 에어컨 때문에 낸 구멍 때문일까, 창문 틈 때문일까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아빠 말로는 바닷가에 다녀오면서 따라온 거 같다는데 혹여나 가방 안에 들어왔던 게(산책 도중 중간중간 앉아서 쉬느라 가방이 아무렇게나 벌어져 놓여있었다) 집에 와서 나온 거라면 내가 그것을 고이 안고 온 거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깐이지만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집안에 곤충을 퇴치하는 거라곤 모기향뿐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스프레이 형태의 퇴치약이나 겔 타입의 약을 구비해야 되는 게 아닐까 밤새도록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았다. 바퀴벌레가 생태계에 주는 영향을 모르진 않지만, 어쨌거나 우리 집에서는 보고 싶지가 않은 걸.
환경에 대해 알아갈수록 별 고민을 다 하게 된다. 쉽고 가볍게 ‘왜 모기와 바퀴벌레는 멸종하지 않는 거죠? 다 없애버리면 안 되나요?’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아니, 모기와 바퀴벌레가 지구에서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고 하는 말인가 생각하긴 하지만 역시나 우리 집에서는 모기나 바퀴벌레를 마주하고 싶지 않다.
게다가 뭐 양육자라면 벌레 정도는 스스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는데 아이 손을 잡고 집을 버리고 나갔으면 나갔지 그 큰 벌레를 직접 처치할 용기는 아직, 없다. 그야말로 ‘지구 상에 불필요한 존재는 없어요’라고 말하면서도 ‘우리 집에서는 벌레를 사양합니다’라고 말하는 입장.
게다가 딸에게 ‘용기’를 가르치는 양육자로서 벌레 앞에서도 당당하고 싶지만 실은 그저 도망치기 바쁜 사람인지라 사실 면목이 없긴 한데, 그럼에도 일단 아직은 벌레가 무섭기만 하다. 인류애와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별개인 거처럼 곤충, 벌레는 중요하지만 우리 집에서 만큼은 피하고 싶다는 마음.
진정으로 환경을 사랑하는 사람은 벌레도 사랑하겠지? 진짜 용감한 사람은 벌레 앞에서도 도망가지 않겠지?라고 멋대로 생각하면서 그렇다면 나는 아직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한 걸로, 그리고 쫄보인 걸로 해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