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여름방학의 추억은 어른으로부터

비좁은 세 시간 : 일상 에세이

by 으네제인장

여름방학이 끝나자마자 앓아누웠다. 방학 마지막 날 밤부터 구토를 시작하여 밤새 오한에 떨고 식은땀을 흘리다 아침에 아이를 등원시켜주고는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주 오랜만에 겪어보는 ‘진짜 아픔’이었다.


‘여름방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이 좋다. 여름방학의 추억은 방학이 없어진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겨울의 ‘크리스마스’도 좋아했는데 단 하루뿐이라 언제나 아쉬웠고 어째서인지 여름방학은 밀린 숙제를 하는 순간조차도 신이 났다. 여름방학의 좋은 추억은 초등학교까지. 중학교 때는 어쩌다 학원에서 떠나는 1박 여행이 가장 재미있었다.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에게도 여름방학이 찾아왔다. 네 살 밖에 안되었는데 벌써 태어나서 두 번째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작년에는 코로나로 긴급 보육 기간이 잦고, 길었기에 방학이라고 해서 기분이랄 게 별 다르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약 열흘의 진짜 첫여름방학. 아이가 방학을 맞은 동안 나도, 남편도 함께 방학 혹은 휴가를 즐길 수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아쉬운 지 모른다.


아이는 방학인데 나는 예정대로 구독 글을 쓰고, 한 달에 한 번 마감이 있는 글을 준비했다. 집안일은 집안일 대로 늘어날 생각을 하니 방학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겁이 나고, 스트레스가 쌓였다. 그래도 방학 중 며칠은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하필이면 아이의 방학과 부모님의 백신 예약 기간이 겹쳐버렸다. 혼자서 아이를 돌보며 내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스트레스와 체력관리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실은 방학 일주일 전부터 혼자 잔뜩 졸아있었다.


긴급 보육이나 방학이라는 소식을 들으면 가장 먼저 내 일을 걱정한다. 글을 제대로 못 쓰면 어떻게 하지, 클럽하우스는 열 수 있을까, 책도 읽어야 하는데 한동안 집안일과 밥은 또 어떻게 한담, 하고 미리 초조해한다. 정작 어린이집에 가지 못해 선생님도 친구들도 만나지 못하는, 집안에서만 놀아야 하는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은 나중에서야 찾아온다. 최근 재미를 붙인 영어 공부도 못 할 테고, 무서워하면서도 좋아하는 물놀이도 못 하는데, 제때 낮잠을 자거나 밥을 먹지도 못하고 같이 역할놀이를 해줄 친구나 노래 불러줄 이도 없을 테니 아이가 가장 지루할 텐데 아이의 마음을 돌보는 건 항상 뒷전이다.


어쩌다 한 번씩(실은 조금 자주) 긴급 보육을 해야 할 상황이 찾아오는데 그런 날에는 하루 동안 어떻게든 아이를 돌보는 일보다는 내 일에 지장이 생기지 않도록 더 신경 쓰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음이 조금 다른 게, 내 아이의 첫여름방학이니까. 아이가 훗날 여름방학이라는 단어를 보며 마음을 설레기 위해선 어른의 도움이 필요하다. 여름방학이면 텔레비전을 보며 혼자 놀던 일을 떠올리기보다는 깔깔거리며 웃던 기억을 먼저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방학이 시작되고 결국 클럽하우스는 여는 날보다 열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고, 글은 키즈카페에서 써야 했지만 어쨌든 아이의 방학은 하루하루 흘러갔다. 더 많이 놀아주지 않는다고 우는 때도 있었지만 같이 쿠키를 만들고, 피자를 만들고, 물놀이를 하며 집에서, 그리고 바깥에서의 놀이를 이어나갔다.


아이의 방학을 즐겁게 만드는 건, 어른의 희생이다. 아이 스스로 재미있는 방학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내 어릴 적 여름 방학은 어른이 만들어준 거였다. 웃으며 보냈던 시간도 놀러 가 땀을 흘렸던 순간도, 도움을 받아 숙제를 완성하던 순간에도 모두 어른들의 도움이 있었다.


아이를 돌보느라 매일 끼니는 건너뛰고, 잠을 깨려 커피를 마시고, 또 잠에 들기 위해 술을 마시다 보니 위장이 망가지고 눈 밑은 언제나 다크서클로 시커멓게 되었다. 결국 마지막 날 앓아누웠지만 등원하는 날 아침에 물어봤더니 방학 동안 무척 재미있었다는 아이의 대답에 힘이 났다. 속상한 일은 없었고 오직 ‘HAPPY!’ 했다고 말하는 아이 덕에, 게다가 ‘어젯밤에 아픈데 왜 병원에 안 갔어요?’ 걱정까지 해주는 아이 덕에 영혼과 체력을 갈아 아이의 여름방학 추억을 가득 채워준 보람이 느껴졌다.


내년이 되고, 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어 아이가 기억할 여름방학에 대해 생각해본다. 매해 즐거울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되돌아보면 여름방학은 정말 즐거운 일들이 가득했다고 떠올렸으면 좋겠다. 우리 부모님의 뼈와 혼을 갈아 넣은 노력 덕에 내가 여름방학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처럼 아이도 나의 몸살이 만들어낸 추억들로 여름방학을 가득 채우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 추억으로 여름을 버틸 수 있다면 앓아눕고, 링거 투혼 하는 것쯤이야 몇 번이고 또 해야지, 음, 꼭 할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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