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똑같지 않아 다행이야

비좁은 세 시간 : 일상 에세이

by 으네제인장

아이 방에서 아이와 놀던 도중, 남편에게 걸려온 전화에 하던 놀이를 멈추고 한동안 통화에 집중을 하고 있던 찰나였다. 혼자 놀던 아이가 웃으며 ‘줘봐, 줘봐.’하며 손을 까딱 거리기에 아빠와 통화가 하고 싶은가 보다 하고 핸드폰을 건넸더니 아이는 웬걸, 종료 버튼을 누르고 옆에 있는 전원 버튼을 눌러 화면을 까맣게 만들어버렸다. 그러더니 자신의 뒤, 나의 반대편에 있는 책꽂이 위에 핸드폰을 반듯하게 올려놓고 ‘이제 됐다.’ 말하며 놀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일이지, 싶었는데 조금 후 이번에는 부모님에게 걸려온 전화에 다시 통화를 시작하고 있으니 아이가 또다시 웃으며 ‘줘봐, 줘봐.’를 외쳤다. 그리고 건넸더니 또다시 종료와 전원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뒤에 올려두었다.


‘설마, 지금 훈육당한 건가.’싶은 순간이었다. 마치 아이에게 ‘엄마, 놀 땐 핸드폰 말고 놀이에만 집중해야지.’라는 말을 들은 기분이었다.


또 한 번은 나와 함께 놀이에 집중하던 아이가 갑자기 하던 놀이를 멈추고 ‘주황색 통이 없어.’라고 말했다. ‘주황색 통?’이라고 묻자 아이는 감정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장난감이 원래 있던 위치들을 손가락 끝으로 가리키며 ‘주황색 통 없고, 유모차 없고, 미끄럼틀 없고, *** 없어(***는 못 알아들었다).’라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바로 그 전날 유모차를 처분하여 아이가 아직 서운해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미끄럼틀이라고? 그게 없어진 지가 언젠데?’라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없앤 후에 아이에게 물었을 때 아이는 미끄럼틀이 없어도 괜찮다고 했었는데 실은 괜찮지 않았던 걸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퇴근한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전하면 남편은 무척이나 고소하다는 듯 웃으며 ‘너랑 똑같다.’라는 말을 했다. 훈육 방식도 비슷했지만 특히 울지도 않고 똑바로 눈을 쳐다보며 없어진 장난감들을 하나씩 집어대는 건, 마치 내가 정색한 얼굴로 남편의 잘못을 하나씩 집어대던 때와 똑같다고 했다.


‘아니, 이게 후천적으로 학습된 게 아니라, 기질이었다고?’


그러고 보면 나와 무수히도 많이 싸웠던 아버지에게도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웃는 얼굴로 진짜 감정을 감추는 일, 화가 나면 즉시 화를 내는 것이 아닌 쌓아두었다가 한 번에 폭발시키거나, 타인을 쉽게 믿지 못하는 만큼 한 번 준 마음은 쉽게 거두지도 못하는 부분 같은 거 말이다.


비슷하기에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쉽게 이해하는 순간들이 많지만 서로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더 싸우는 일도 많았다. 속내를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어서였다. 게다가 잘 알다 보니 서로에게 궁금한 것이 없어 흥미도 잘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에게서 비슷한 모습이 발견되다니, 마음이 복잡했다. 아이는 나와 닮지 않으면 서운하고, 닮으면 불안한데 아직은 사랑스럽기만 한 아이가 자라고 나면 나와 서로 비슷한 부분 때문에 싸울 일이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이 들어서였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이왕이면 나의 좋은 부분을 닮길 바라는 욕심을 버리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나의 좋은 점은 뭘까, 생각했더니 좋기만 한 부분은 없었다. 어떠한 부분도 좋은 점이 있었고 동시에 안 좋은 부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 아버지와 똑 닮은 자식일까,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좋아해 마지않은 엄마와도 닮은 부분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날 닮은 아이를 나와 다르게 키우는 것이 아니라 닮은 부분을 좋은 쪽으로 발전시킬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안심이 되었다. 나의 어떤 부분과 남편의 일부를 닮은 아이가 나와 정말 똑같을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떠올리니 괜한 걱정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엔 나와 완전히 똑같거나, 완전히 다르기만 한 사람은 없다는 것, 그렇다 여겼던 사람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떠올리면 안심이 된다. 나의 아이도, 아버지도 비슷한 구석도 다른 부분도 있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덜 불편하고 조금은 덜 불안하여 완전히는 아니어도 조금은 그러려니 하게 된다. 나와 비슷한 구석이 거슬려 그 때문에 아이를 미워하게 된다면 얼마나 괴로울까, 걱정했는데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고, 그러니 아이에게 혹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걸 잊을 만큼 좋은 부분도 있을 거라 생각하니 그제야 걱정으로 부풀어 있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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