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너와 함께 하는 시간은

비좁은 세 시간 : 일상 에세이

by 으네제인장

예전에는 누군가와 오랫동안 연애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딱 한 번 긴 연애를 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건 아마도 장거리 연애여서 가능했던 걸 지도 모른다. 매번 시간의 흐름에 비해 애정이 너무 빨리 고갈된다는 느낌, 분명 한때는 뜨거웠으나 얼마 흐르지 않은 시간에도 감정은 빨리 뜨거워진 만큼 빨리 식어버리곤 했다.


남편을 만나고 처음으로 감정이 천천히 흐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전의 연애에서 느꼈던 작고 뜨거운 불씨와 같던 애정이 아닌 남편과 나 사이엔 눈에 보이지 않는 온기가 존재하는 듯했다. 요리할 때나 사용하는 눈앞의 작은 불, 금방이라도 꺼질 수 있을 거 같은 불이 아닌 남편과의 만남에선 보이진 않지만 함께 하는 공간을 데우는 열기 같은 것이 주변에 있는 것처럼, 마치 부모님과의 사랑이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 따뜻하고 안정적인 애정이 느껴졌다.


쉽게 뜨거워지지도, 식지도 않는 열기, 온기처럼 남편과의 감정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다. 눈 깜짝하는 사이에 일 년이 지났고, 이 년이, 삼 년이, 그리고 어느새 이제는 연애를 시작한 후로 팔 년이 지났지만 그 시간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고,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 세월이 전혀 실감이 나지 않을 만큼 감정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오늘을 붙잡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시간의 흐름을 붙잡을 수만 있다면 시공간을 바꿀 수만 있다면 아이가 태어나던 날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언제나 미래를 향해 가고 싶었던 내게 처음으로 과거를 꿈꾸게 한 건 바로 아이였다.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볼 때면 어느새 또 자란 키에 뿌듯해하면서도 아쉬움을 느끼고, 잡은 손 안에서 조금씩 커져가는 아이의 손을 느낄 때면 꽉 쥔 손을 놓기가 어려워진다. 머리가 자라고, 손톱이 자라는 것처럼 아이의 손발이 자라고 품 안에 꼭 껴안은 몸이 조금씩 두꺼워지는 게 매번 자랑스럽고, 사랑스럽고, 애틋하다.


두 번 다시 겪지 못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더 힘이 나고 아쉬움도 생겨서 그러다 보니 모유수유도 오래 하게 되고 안아주는 시간도 길어졌지만 당시에는 힘들었어도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때보다도 더 오래 아이를 품 안에 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만약 결혼했던 때도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우울해할 시간에 조금 더 체력을 길러서 아이를 더 오래 많이 안아줄 수 있을 만큼 튼튼한 몸을 만들어야지 라는 생각도 한다.


강아지를 처음 만났을 때, 낫또가 처음 우리 집에 와서 꼬물거리며 집안을 돌아다닐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처럼 아이를 낳고 나서도 매 순간이 너무 빠르게만 흘러가는 거 같아 애가 탄다. 내게 남은 감정은, 주고 싶은 사랑은 아직 넘쳐나는데 강아지와 아이의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자꾸 앞서 나간다.


항상 변함없어 보였던 부모님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고, 남편의 시간도, 아이와 강아지의 시간도 빨리 흘러가는 걸 보면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은 이런 거구나, 생각한다. 불편한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은 1분도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지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순간은 이대로 세상이 멈춰버렸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건 시간이 단순히 물리적인 개념인 것만 같지는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랑하는 마음이 커져갈수록, 상대방과 함께 하는 순간에 진심을 다할수록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잠자리에 누워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굳이 들어 팔베개를 해주는 건, 시간이 흘러 팔베개를 해주고 싶어도 훌쩍 자라 버린 아이에게 팔베개를 해줄 수는 없을 테니 해줄 수 있을 때, 아이가 나와 함께 잠들고 싶어 할 때 한 번이라도 더 아이를 안고 잠들고 싶어서다. 불편하지만 괜히 자는 아이의 손을 잡고, 안되면 발이라도 붙잡고 자는 건, 어쩌다 함께 자는 강아지의 등에 얼굴을 붙이거나, 아니면 다른 신체의 일부라도 닿아 잠을 청하는 건 이들에 대한 애정이 아무리 쏟아부어도 마르지 않을 거란 걸 알아서인 건지, 쏟아부을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을 거란 걸 알아서인지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매번 애정에 목마른 사람처럼 이들과의 시간에 목을 매달고 애정을 쏟아붓는다.


아이가 태어난 지 천 일이 지나고, 강아지가 만 11살의 노견이 된 것을 보고, 부모님이 퇴직 후 생활에 익숙해져 가는 걸 보며 시간이 나의 기대와는 달리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계속해서 모른 척하고 싶은데 식기는커녕 더 뜨거워지기만 하는 나의 감정과는 달리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니, 내가 이 흐름을 어찌 느끼던 결국 시간을 제 속도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모른 척하기가 어렵다.


지난 시간을, 감정이 크지 않았던 사람들과의 시간을 가져와 이들과의 미래에 보탤 수만 있다면 보태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오늘이라도, 앞으로라도 사랑하는 이들에게 보다 많은 시간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리 많이 써도 항상 모자라다 여길 시간과 애정이니 천일, 8년, 11년, 35년 동안 쓰고도 한참은 남은, 영원히 고갈될 일 없을 애정을 어찌할 줄 몰라 눈앞의 시간에 쏟아붓는다. 예전에는 시간의 흐름에 비해 부족한 애정이 문제였다면 이제는 오직 넘쳐나는 애정에 비해 시간이 터무니없이 모자라 아쉽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절대적인 사랑이라는 건 그러고 보면 참 애달픈 일인 거 같다.

keyword
이전 04화3. 누가 시키지 않은 건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