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누가 시키지 않은 건 마찬가지

비좁은 세 시간 : 일상 에세이

by 으네제인장

“죄송해요, 죄송해요”

클럽하우스 방에서 연신 사과 중인 나다. 이럴 거면 방을 닫으면 되는데 괜찮다고 말해주는 이들의 호의에 애써 모르는 척 꾸역꾸역 대화를 이어나간다.


매일 평일 오전 11시부터 12시. 2월부터 시작했으니까 벌써 몇 달째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 사람들> 방을 열고 있다. 방에는 첫날부터 지금까지 들어와 주시는 분도 있고, 다른 방에서 만났다가 이곳으로 옮겨온 사람, 그리고 줄곧 방제만 지켜보다가 최근에서야 들어오기 시작한 사람들도 있다.


거의 반년이 다 되도록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늘어나고, 특히 몇 번 이야기를 나눠본 분이라면 아이의 목소리를 덤으로 들려드리게 되는 날도 생긴다. 일부러는 아니고, 어쩌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안 가게 되는 날이면 내게 말을 거는 아이의 목소리나 노래 부르는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들어가게 된다.


진지한 이야기보다는 어른들의 별 시답지 않은 대화를 할 때가 많다고 해도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이로 인해 끊어지게 되면 죄송스러워서 방을 바로 닫지 않고 한 시간을 채우는 일이 염치없이 느껴질 때도 있는데 그래도 그런 아이의 목소리도 귀엽다 이야기해주는 분들이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돈을 버는 일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열심히 방을 열 일인가 싶을 때도 있는데, 실은 그래서 더 열심히 열게 되는 것도 있다. 방을 여는 나도 그런데, 방에 들어오는 분들 역시 누가 시키지 않을 일이라는 건 마찬가지라서 시간이 되면 꼭 들어와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거나 혹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분들이 고맙고 그리워서 꾸준히 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겨난다.


처음에는 구독 서비스의 구독자를 늘리는 데에 도움이 될까 싶어 시작한 일인데 어쩌다 보니 그런 건 포기해버리고, 그냥 그 방에서 만난 사람들을 또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계속 열다 보니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다. 정말 신기한 건, 특별히 정해진 이야기의 주제도 없고 그렇다고 들려주기 위해 준비된 이야기도 없는데 나는 때가 되면 방을 열고, 또 누군가는 시간 맞춰 방에 들어오면서 그 연이 이어진다는 거다. 그전까지는 일이든 사람 사이든 뭐든지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게 당연한 거라 생각했는데 클럽하우스 방을 열면서 생각을 조금 고쳐 잡게 됐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서로에게 끌린다는 것. 똑같이 대해도 누군가와는 가까워지지 않는다는 것.


나는 그냥 나일뿐인데 누군가는 다정하다 느끼고, 누군가는 가식적이라 느끼며, 또 누군가는 함께 나누는 대화를 쓸데없다고, 또 누군가는 짧은 대화 속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아간다는 것이 신기하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아도 마음이 통한다는 것, 똑같이 대해도 호감을 가진 누군가는 방을 계속 찾아오고 불편하게 여긴 누군가는 두 번 다시 방을 찾지 않게 되는 것도 모두 신기할 따름이다.


열심히 하고, 마음을 쓰는 일은 중요하지만 너무 무리를 할 필요는 없다는 걸 클럽하우스를 하는 동안 진하게 실감한다. 그러니 아이 때문에 대화가 어수선해지는 순간에도 방을 바로 닫지 않고 다른 이들의 상냥함에 기대어 약속된 시간을 채우게 되는 거다. 상대방의 호의를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있는 건 관계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 굳이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만날 필요가 없는 사이라는 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방에서 그냥 나가버리면 되는 사이라는 건, 관계 안에서 신경 써야 하는 많은 감정과 눈치를 단순하고, 깔끔하게 만든다.


얼굴도, 직업도, 나이도 모르면서 그냥 목소리만 듣고, 몇 마디의 대화만 가지고 호감을 가지는 경험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 만으로도 서로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했다. 통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통하는구나 하는 경험. 유명한 사람을 만나 기쁘다,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하니 설렌다 하는 감정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는 경험,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편안하다 느끼는 것이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는 가장 중요한 부분인 거 같다.


그곳에서도 물론 불쾌한 일이 일어날 때가 있다. 때론 상대방이 나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의견을 말하고 있었다거나 내게 혐오의 의미를 가진 말을 했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얼굴이 화악 달아오를 때도 있다. 당시에는 상대방과 계속 다른 주제로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결국 좋게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그가 처음 했던 말이 날 욕하거나 놀리는 말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날 화나게 하려고 한 말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즐겁게 대화를 이어가던 때에 상대방은 무슨 생각을 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대놓고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사람에게 느끼는 불쾌함보다 훨씬 더 기분이 상하고 화가 나며 또 의아해진다. 그러나 다행인 건, 그런 경험은 아주 드물게 일어난다는 거다.


사람 관계에 있어 편협스러운 부분이 있었는데 클럽하우스에서 알게 된 사람들 덕에 많이 달라졌다. 그래서 나는 자주 혹은 종종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생각한다.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는 것과 좋아하는 감정이 꼭 비례하는 건 아니니까. 오늘은 육아로 도저히 방을 열지 못했지만 내일은 또다시 방을 열고 누군가가 찾아오기를 기다릴 거다. 여름방학이라 한동안은 아이의 소음이 섞인 방을 열게 되겠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그것마저도 품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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