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팔자를 펴자

비좁은 세 시간 : 일상 에세이

by 으네제인장

미래를 향해 희망을 품고 지내던 때가 있었는데 요즘은 아니다. 운명의 곡선이 있다면 내 앞에는 분명 빨간 오르막길이 준비되어 있어야 했는데 요즘은 언뜻 희미하게 푸른색 내리막길이 깔려있는 게 보이는 거 같다.


왜일까.

분명 술술 잘 풀리는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돈도 걱정되고 온갖 불운한 생각도 들면서 멀쩡하던 팔자도 제 스스로 꼬고 싶어 진다. 갑자기 집이 파산하면 어쩌지, 나는 영영 글로 성공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아이와의 사이가 멀어지거나 부모님의 건강이 갑자기 안 좋아지는 게 아닐까 같은 생각을 구체적으로 그려나가는 날들이 이어진다. 운명의 곡선대로라면 아직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는 아닌데(내 멋대로의 운명의 곡선이긴 하지만) 왜일까, 왜 섣불리 비관적인 생각부터 하는 걸까.


이번 달 내내 위장에 탈이 나고, 몸무게가 고무줄처럼 줄었다 늘었다를 반복했다. 몇 달째 잘 나오던 생리가 안 나오더니 아이를 부모님께 맡겨둔 날이 되어서야 드디어 펑하고 시작되었다. 펑, 하고 시작되는 건 반가운데 오랜만에 찾아온 통증은 아무리 생각해도 예의가 없다. 아니 순리에 맞지 않다. 이 정도면 애가 나와야지, 기껏 피 몇 방울밖에 안 내보낼 거면서 무슨 출산 진통하듯이 아프냔 말이다(애 대신 자궁이 나오는 게 아닐까 걱정한 적도 있다). 이제 생리통 앞에서 호들갑 떠는 거 아니냐는 말은 아무도 못 한다. 왜냐하면 나는 애를 낳아봐서 그 진통을 알 거든. 이건 분명 출산급 통증이다. 그러니 이건 반칙이다. 무슨 생리통이 애 낳을 때처럼 아프냐고. 진통 만으로도 애를 낳을 수 있다면 국가는 아마 내게 상을 줬을 거다. 이 나라는 애만 낳아도 애국이라고 (입만) 떠들어대는 나라니까 말이다.


펜데믹이, 사회적 거리두기가 만들어낸 스트레스가 위장을 고장 내더니, 이제는 호르몬을 지나 정신까지 공격을 하려고 한다. 실제로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 안에서 만큼은 미래가 밝아야 한다. 생각이 현실을 지배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몰라도, 어쨌든 지 팔자 지가 꼬는 사고방식만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스트레스는 제멋대로 미래를 암울하게 그리고, 의욕과 감각마저 떨어뜨리게 한다.


나의 인생은 전도유망한 기업의 주식처럼 붉은빛으로 위로만 쭉쭉 뻗어나갔으면 좋겠는데 ‘이노무 서터레스’는

‘네가 할 수 있는 게 뭔데? 네가 멋대로 할 수 있는 게 있을 거 같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사회적 거리 두리 한 방이면 돈이고 생활이고 다 엉망으로 만들어줄 수 있어. 그러니 네가 할 수 있는 건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가는 길 밖에 없어’ 하고 머릿속에서 깽판을 친다.


코로나 블루는 남의 일인 줄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도 이번에는 제대로 한 방 맞았다. 제대로, 큰 한 방! 백신도 백신이지만 아무래도 확실한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일상이 제한되는 상황이 계속 반복될 텐데 그러면 그때까지 나는 계속 팔자나 꼬며 살아야 하는 걸까.


아니, 절대로 그럴 수는 없지.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 블루에서 끝내고 다시 나의 밝은 미래를 그려나가야 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잘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팬데믹 같은 게 아니었을 때도 불행한 사람은 많았다. 그러니 코로나 같은 것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당장 영양제를 챙겨 먹고, 구할 수 있는 도움은 구해서 받고, 뚝심 있게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인풋을 쌓아나가야지!


이 상황에서도 아이가 좋은 추억을 쌓아가며 잘 자라주기를, 남편이 고생한 만큼(아니 고생한 것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기를, 내가 언젠가 찾아올 기회를 놓치지 않게 열심히 글을 써서 좋은 작가가 되어가기를 바라는 것이 큰 욕심일까. 하늘로 향하는 붉은 곡선이 수직으로 보일 만큼 치솟길 바라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꾸준하게 위를 향해 나아갔으면 좋겠다.


위장 트러블, 생리불순이 뭐 그리 큰 문제라고. 그러나 미래를 비관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힘든 팬데믹 상황이라고 해도 거기까지 양보할 생각은 없다. 내 팔자는 내가 그려야지, 다른 이가 꼬게 만들 순 없다. 그러니 코로나 블루가 와도 양 뺨을 찰쌀 찰쌀 때리며 정신 차리고 내 앞길을 붉게 그려볼 생각이다. 나와 내 가족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안전하길, 노력한 것보다 조금은 더 보상받길, 큰 그늘 없이 살아가길, 고난과 역경에도 쉽게 쓰러지지 않고 잘 이겨내며 다시 즐겁게 살아가기. ‘대박’ 같은 거는 바라지 않는다. 그래도 ‘중박’ 정도는 바라며 살고 싶다. 그러니 오늘도 정신 붙들고 기도해야지. ‘내 인생 곡선을 붉게 물들게 해 주소서’ 하고 말이다.

keyword
이전 10화9. 흑화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