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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네제인장 Sep 28. 2022

마지막 수업

“다음 분기 수업 신청하셨어요?”


연습실에 들어가자 서로 눈이 마주칠 때마다 인사치레처럼 수강 신청 여부를 묻는다. 오랜만에 출석한 무용 수업에서는 이번 분기 마지막 수업 날에 걸맞게 4분기 수강 신청에 대한 이야기가 화두로 올랐다.  나는 퐁당퐁당 잘도 수업을 빼먹으면서도 이번에도 수업 신청에는 성공을 했다. 문화센터나 지자체에서 하는 강좌 같은 경우 대체로 경쟁률이 높다고 하지만 이곳 강좌는 빨리 마감되는 것에 더해 잦은 오류로도 유명해서 매번 거의 최애 아이돌 콘서트 티켓을 예매할 때의 마음 가짐으로 임하고 있다. 


지난 두 회차의 경험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세 대의 기기를 동시에 켜 두고 오 분 전부터 대기한 덕에 한 번 튕기긴 했지만 어쨌거나 신청에는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와 같이 한국무용을 배우고 싶다고 말하던 친구는 대기자로 넘어간 후 연락이 없었고, 동기님은 인터넷 신청에 실패하며 오프라인 신청 당일 날 아침 일찍부터 회관을 찾아야만 했다고 했다. 매번 이렇게 힘들게 수업 신청을 하다 보니 이왕이면 수업에도 꼬박꼬박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데 정작 수업에는 잘 나가지 못하는 것이 아쉽고, 또 신청에 실패한 다른 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다음 분기 때는 부디 아무 탈 없이 수업에 잘 나갈 수 있기를. 


부채를 사 두고 몇 번 흔들어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삼 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보기만 해도 시원했던 푸른빛의 연습복 치마는 더 이상 계절에 걸맞지 않은 옷이란 느낌이 든다. 장마의 습한 날씨에도 잘 어울리던 치마는 공기의 온도가 내려가면서 이제는 오히려 서늘한 느낌을 준다. 마침 지난 수업 때 주문한 상의 연습복을 받은 김에 가을, 겨울에 잘 어울리는 치마를 새로 주문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선생님과 새로운 연습복 치마 색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검은색의 새로운 상의에는 빨간 꽃 두 송이와 주황색 꽃 한 송이, 그리고 분홍 나비 장식이 달려있는데 마침 속바지도 검은색이라 붉은색이 들어간 치마를 입으면 예쁠 거 같다. 선생님은 흰색 바탕에 붉은 꽃무늬가 들어간 치마를 추천했고 새 치마를 입은 채 춤을 추는 모습을 상상하자 다음 분기 수업이 더욱 기대가 됐다. 실컷 새 연습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괜히 머쓱해하며 수업도 잘 안 나오며 맨날 뭘 사기만 한다고 했더니 선생님은 친절하게도 원래 다 이렇게 장비부터 지르고 나서 장비 핑계로 수업에 나오는 거라며 웃으셨다.


수업이 시작되고 오랜만에 하는 기본 동작에 몸이 삐걱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집에서 내내 스트레칭을 하며 바른 자세를 연습했더니 허리와 엉덩이에는 조금 힘이 생긴 듯했다. 문제라면 어깨가 너무 펴진 탓에 한국무용 특유의 굽은 듯 아닌 듯한 곡선의 느낌이 잘 나지 않는다는 것. 뭐 어차피 이것 말고도 문제는 많지만 말이다. 


부채춤은 지난 분기 수업 때보다 난이도가 높아서 동선을 외우고 나면 발동작이 틀리고 발에 신경을 쓰다 보면 손동작이 틀리는 식으로 엉망진창이 될 때가 많다. 게다가 결석도 한 탓에 새롭게 진도가 나간 곳을 모르는 것은 물론 앞부분도 헷갈리기 시작해서 앞을 향할 땐 선생님을 그리고 옆과 뒤를 돌 땐 옆 사람과 뒷사람의 동작까지 훔쳐보며 허겁지겁 추기 바쁘다. 


‘탁!’


그런데 허둥거리는 게 나 하나가 아니라서 가끔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도중 부채를 펼치다 저 멀리 내팽개쳐버리는 일도 생긴다. 나도 이번 수업에서는 한 번 날려 보냈다. 부끄러워할 새도 없이 후다닥 달려가 부채를 챙겨 다시 동선을 맞추다 보면 한 여름에는 물론 요즘 같은 가을의 앞 자락에도 땀이 난다. 몸을 움직여서 땀이 나는 건지, 부끄러움에 열이 올라 땀이 나는 건지, 빈속에 춤을 추느라 식은땀이 나는 건지 모르지만 어쨌든 땀이 난다는 이유로 다들 이것도 운동이 된다며 좋아하는 게 이곳의 분위기다. 


그렇지만 아무리 가늘고 길게 배우는 것이 이곳의 목표고, 느긋한 태도로 수업에 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도 해도 반복되는 실수에 의기소침해지다 보면 자포자기 심정으로 의욕을 잃게 되기 마련이다. 부채춤을 추면서 유독 따라가기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선생님은 원래 제대로 추려면 삼 년은 걸리는 거라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제대로 추는 데까지 삼 년. 그러니 삼 년 동안은 동선과 안무를 외우는 것에만 신경을 쓰면 된단다. 매번 버벅 거리는 것이 민망했는데 삼 년이라는 막연한 기간 덕분에 괜히 자신감이 생겼다. 정작 삼 년 뒤에는 어떤 상황과 마주하게 될지 모르지만 여유를 가지고 굳이 힘들게는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문화강좌의 장점 아닐까 싶다.


다음 수업에는 새로운 치마를 입을 수 있을 테고, 때마침 마지막 분기 수업의 첫날이기도 하니까 평소보다 더 기대가 된다. 그런데 왜 하필 다음 주와 다다음 주가 연휴인 건지. 지금의 의욕이 부디 삼 주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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