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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네제인장 Oct 26. 2022

새로운 동기부여

창피당하지 않으려면 열심히 해서 잘 추는 수밖에

이른 저녁부터 잠이 쏟아졌다. 오랜만에 나간 수업에서 춤을 너무 열심히 춘 걸까, 마치 첫 수업 날 그랬던 거처럼 일찍부터 피로가 몰려왔다. 신경 쓸 일이 많아 피로를 느낄 때와는 달리 적당히 나른하여 기분 좋은 피로감에 무용 수업을 다녀온 저녁에는 평소보다 빠르게 잠이 들었다.


한국무용 수업을 벌써 이 분기, 삼 분기, 사 분기 이렇게 세 분기째 듣고 있다. 수강생의 변화가 거의 없던 지난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새로운 얼굴이 드문드문 보였다. 새 수강생들은 내가 처음 왔을 때처럼 대체로 기존 수강생들의 화려한 의상에 놀라는 모습이었고, 주눅 든 채 자꾸만 구석자리를 찾아 뒤로 숨기 바빴다. 알고 보면 춤 실력은 그들이나 나나 크게 다를 게 없는데 새로 온 수강생들이 그 사실을 알리 없었다.


세 분기 째 수업을 듣고 있는 내게도 여전히 어려운 춤이 새로운 분들에게는 얼마나 막막하게 느껴질지, 심지어 내가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더 복잡해진 지금의 동선과 동작이 새로운 수강생에게는 높은 장벽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무용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채 처음 한국무용을 접하는 사람이라면 더 난감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무쪼록 많은 분들이 이 수업을 계속해서 즐기며 앞으로도 계속 함께 춤춰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앞으로의 수강신청이 더 힘들어진다 해도 말이다. 


지금까지는 수업을 듣는 날이 많지 않아 장비를 사서 채우는 걸로 열의를 대신할 때가 대부분이었지만 새 수강생들이 생기자 여태껏 늘지 않은 춤 실력이 뒤늦게 창피하게 느껴졌다. 뒷자리에 있으면 선생님이 잘 보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주변 수강생들을 따라 할 수밖에 없는데 나는 의지가 안 되는 선배 수강생이라 면목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부끄럽다고 뒷자리로 도망치는 일 없이 앞에서 선생님의 동작을 열심히 따라서 췄다. 의욕이 과했는지 춤을 추던 도중에 또 한 번 부채를 멋지게 날려버리고 굽신굽신 허리 굽혀 사과를 하면서 급히 동선에 맞춰 동작을 따라 하기도 했다. 


중간 쉬는 시간에는 다른 분이 수선을 해서 새롭게 만든 노란색 치마로 갈아입었는데 개나리처럼 샛노란 치마라 나도 다른 수강생도 다들 입을 모아 감탄을 했다. 그런 예쁜 연습복의 첫 시착을 본인이 아닌 내게 양보해주어 얼마나 영광이었는지, 이왕 입은 거 옷만큼이나 곱게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 옷이 내게는 좀 짧아서 버선을 신은 발이 그대로 드러나버려, 동선이나 발동작이 틀릴 때마다 그대로 거울에 비치는 바람에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옷만큼 근사한 춤을 선보이고 싶었는데 오히려 이 참에 긴치마에 발을 가리고 대충 췄던 지난 시간들에 대한 벌을 받게 되는 거 같아 참으로 민망한 시간이었다.


이번 수업에서는 지난 분기부터 춰왔던 부채춤이 ‘화선무’라는 이름을 가진 춤이라는 것을 배웠다. ‘여태껏 무슨 춤을 추는 줄도 모르고 그냥 따라만 하고 있었다’며 쑥스러운 듯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수업이 끝날 무렵에는 선생님이 학생들 앞에서 마지막 동작까지 시범을 보였는데 빙그르르 돌 때마다 함께 흩날리는 치맛자락이 어찌나 예쁘던지 그냥 내가 추는 거 말고 선생님이 추는 것만 계속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금까지는 ‘새로운 수강생이니까 조금 못해도 되겠지’ 하며 얼렁뚱땅 출 때도 적지 않았는데 이번 수업에서는 새로운 수강생이나 짧은 치마 덕분에 마음가짐을 조금은 고쳐먹었다. 평소보다 더 피로가 느껴졌던 것도 이전보다 더 집중을 한 탓이었다. 다음 주에는 지난번에 주문한 치마도 받을 수 있을 테고 그러면 새 옷과 함께 새 마음, 새 뜻으로 의욕적으로 춤을 춰보기로 했다. 즐거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수강생이 오자 의지를 고쳐 잡게 된다. 선생님처럼 출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동작을 외우고 내 나름의 리듬을 표현할 수 있으면 좀 덜 부끄러울 수 있을 거 같다. 새로운 수강생에게도 의지가 되고 더불어 함께 춤을 추는 즐거움까지 전달되는 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이번 수업은 의도치 않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사기를 다지게 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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