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의 힘
오늘은 차가운 녹차와 냉침 보리차를 마시며 만화를 완성했네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만화를 완성하다니 참으로 뿌듯한 하루입니다.
지난주 화상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따갑고 아픈 부분에 남편이 사다준 국소마취 성분이 들어있는 화상용 스프레이를 뿌렸지만 통증이 가라앉는 시간은 잠깐이었습니다.
밤에는 가려움이 심해져서 무언가로 쑤시는듯한 간지러운 통증이 와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모기가 한꺼번에 백에서 천마리에 쏘인 것 같은 가려움이었습니다.
남편도 예전에 온찜질팩에 저온 화상을 심하게 입은 적이 있어 여러 가지 약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 덕에 도움을 받아 주말 동안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월요일이 되어서 근처에 있는 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간호사도 의사도 상처 부위가 넓어서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그러나 의사 선생님은 상처를 눌러보시기도 하고 관찰하시더니
잘 낫고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상처가 눌러서 아프다거나 점점 번지면 감염이 진행된 건데 제 상처에서는 그런 반응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응급처치를 잘했다고 칭찬하시면서 이제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이야기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혹시 ‘거즈로 상처를 보호하거나 연고를 발라야 되지 않나요?’라고 질문했는데
아니라고 딱 잘라 말씀하시면서 공기를 많이 쐬주라고 지금 니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나을 상처라고 이야기해 주시더군요. 그리고 아무것도 바르지 말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사실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예전에 아이가 화상을 입은 적이 있어서 한국에서 화상 병원도 다녔는데 그때는 보습연고에 화상연고를 따로 발랐던 기억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잘 낫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의사 선생님의 진단에 한시름 놓았습니다.
진료를 마치고 안심하며 집으로 돌아온 후
때마침 두찌의 친구가 집으로 놀러 오게 돼서 다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상처를 치료하는데 공기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상처에는 연고가 필요할 거라 생각했지 공기가 더 좋은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시간이 지나야 상처가 낫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의사 선생님에게 듣기 전까지는 이게 낫고 있는 건지 덧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나 어려움이 닥치면 무언가 특별한 긴급 조치가 필요해 보이지만
사실은 내가 살던 대로 계속해서 살아나가는 것이 가장 필요한 조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긴급 조치로 해결해야 될 문제도 분명히 있을 테지만 (화상 후 응급처치와 같은)
지금까지 살면서 상당 부분들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해결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처음 화상을 입었을 때는 진짜 절망적이고 자책하게 되고 힘들고 아팠지만
이제는 가려운 (매우 괴롭긴 하지만) 통증만 남아있습니다.
5일이라는 시간 동안 상처는 계속 나아지고 있었습니다.
저도 어떤 때에는 가만히 있고 가라앉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시간이 지루하다고 해서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그 순간을 조금 더 잘 지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