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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 e Nov 14. 2024

순간을 담는 시간

제일 짧은 시간 순간

늦은 브런치 연재입니다.


나름의 루틴과 할 일들을 만들어가고 있는 요즘입니다.

필사에 이어해 보려는 한 가지 일은 그림을 그리는 일입니다.

필사는 정해진 것을 적어나가면 되는 일이라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매번 참 어려운 일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찾은 것 같았는데 벽을 보고 서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벽 바깥으로 나가보기로 했습니다.

밖이지만 사람이 별로 없을만하면서 지금 계절을 잘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생각하다

집 뒷길에 이어진 숲으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오하이오는 산이 많지 않은 지역인데 평지에 숲이 꽤 많이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 뒤편에도 작은 나무숲이 있는데 작은 산책로 코스가 있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쭉쭉 뻗은 나무가 아름답게 서있고 작은 시내도 흐르고 있고 청설모나 토끼도 살고 있는 숲이었습니다.

날씨가 쌀쌀해지고 숲에 가을이 찾아오니 아름답게 단풍 색으로 변하고 있던 중이라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발길이 움직여지는 것 같았습니다.

뒷길에는 주로 기러기들이 자주 나타나는데 몸집이 큰 녀석들이 뒷길에 여기저기 응가를 해두어서 걸어가는 게 꽤 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잔디밭으로 걸어가 보려 했다가 그 넓은 잔디밭이 기러기들의 화장실인 것을 깨닫고 지뢰를 밟지 않으려 우스꽝스럽게 폴짝거리며 피해 다니다가 포기하고 큰길 쪽으로 탈출할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뒷길을 통해 숲 속으로 들어가면 가을가을한 자연의 노란 주황 붉은빛의 단풍빛들이 햇빛과 섞여 흔들거리고 있었습니다.

간간이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에도 달랑거리며 매달려있던 노란 낙엽들이 바람을 타고 옆으로 옆으로 잠시 나비 떼 같이 함께 빙그르 날아다니다 숲 속 나무밑 폭신한 낙엽 더미 위로 사뿐히 내려앉습니다.

옆에는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 단지인데, 이곳은 꼭 토토로나 정령들이 살법한 세계 같습니다.

그곳에 드문드문 있는 벤치에 앉아 눈으로 보이는 그 순간들을 종이에 그려봅니다.

가지고 간 따듯한 차와 과자를 부스럭거리며 입에 넣으며 흘린 부스러기는 여기 사는 친구들이 해결해 주겠거니 생각해 봅니다.

슥슥 크레파스로 그다지 많은 색도 아니고 조금의 붉고 노란색들과 어두운 나무색정도를 가지고 그리다 보면

세 시간 정도가 금방 흘러가버립니다.

한 30분 그린 것 같은데 3시간이 끝나고 이제는 곧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입니다.

그러면 이제 이쪽 세계에서 빠져나와 내가 사는 세계로 가는 입구로 잰걸음으로 향합니다.


이제 가을의 짧은 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매주 한 번씩 가보니 주마다 숲의 얼굴은 완전히 다른 색을 띠고 있었습니다.

곧 겨울이 오고 이제 노란빛은 점점 사라지고 짙은 갈색과 차가운 겨울의 색으로 변해갈 거라 생각이 들지만

아마 그때는 그때 나름의 숲의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겠죠.

다만 너무 추우면 저도 겨울동면이 길어지는 타입의 생물이라서 활동이 더욱 줄어들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을 많이 찍어서 집에서도 그려보려고 했지만 사진을 보며 그리는 것과

눈으로 보며 그리는 것은 색상과 느낌이 너무나 차이가 크다는 것을 직접 경험해 버렸습니다.

약간 번거로운 과정이지만 직접 보면서 그리는 것의 중요함을 느끼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순간을 담기 위해 사진을 발명했지만

사진을 보면 볼수록 역시 순간을 담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순간을 담는 건 눈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것으로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내가 그린그림은 그 순간과 같은 것이 절대 아니지만 그때 그 순간을 눈과 마음으로 담던 좋은 도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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