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침묵의 가르침
도서관 카페의 오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사이에 두고 앉은 그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얼마 전 폐렴으로 입원했던 남편의 병간호를 하며 겪은 병실 안의 작은 소동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녀의 남편이 머물던 병실 옆 침대에는 여든넷의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다고 한다. 전해질 저하로 어지럼증을 느끼다 벽에 부딪히며 넘어지시는 바람에 응급실을 거쳐 입원하신 분이었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 기력은 없으셔도 잔소리만큼은 호랑이 기운이 넘치셨단다.
사건은 간호사가 혈당을 체크하러 오면서 시작되었다.
"혈당이 106이요!" 간호사가 크게 외쳤다.
"뭐라고? 얼마라고?"
"106이요!"
"우리 영감이 가는귀가 먹어서 그래요. 106이라잖아요!" 옆에 있던 할머니까지 거들었지만 할아버지는 요지부동이었다.
"뭐라고?"
결국 간호사는 몇 번을 더 소리치다 지쳤는지 마치 줄행랑을 치듯 병실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진짜 공연은 간호사가 나간 뒤부터였다. 할아버지는 내가 왜 귀가 먹었냐며 잘 알아듣게 말하지 않은 간호사를 탓하더니 급기야 할머니에게 화살을 돌려 잔소리를 퍼붓기 시작하셨다.
"당신은 왜 그렇게 말해! 내가 가는귀가 왜 먹었어! 간호사에게 똑바로 말하라고 했어야지!"
그렇게 똑같은 타박이 무려 30분 넘게 이어졌다고 한다. 옆 침대에서 지켜보던 그녀는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단다. '나 같으면 벌써 한마디 했을 텐데 저 할머니는 어쩌면 저렇게 가만히 계실까.' 할머니는 그 모진 소리를 아무 대꾸 없이 그저 묵묵히 다 받아내고 계셨다.
병실 안이 할아버지의 잔소리로 팽팽해질 대로 팽팽해졌을 무렵 거짓말처럼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잠시 후 할아버지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내가 너무 심하게 말했지? 미안해..."
그 사과가 떨어지기 무섭게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하지만 아주 나지막하고 차분하게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셨다. 할아버지는 언제 화를 냈냐는 듯 할머니의 말에 귀를 기울이셨고 병실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그녀는 그 광경을 보며 가슴 한구석이 찡해졌다고 고백했다.
"그 노부부가 어떻게 저토록 오래 해로할 수 있었는지 그제야 알겠더라고요."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자신은 남편이 무슨 말을 하려 하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더 큰 소리로 받아치기 바빴노라고. 할머니의 30분은 단순한 참음이 아니라 상대의 날 선 감정이 다 쏟아져 나오기를 기다려주는 비움의 시간이었음을 그녀는 병실 커튼 너머로 배운 것이다.
이야기를 전해 듣는 내 마음에도 잔잔한 파동이 일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상대의 문장에 마침표가 찍히기도 전에 내 문장을 끼워 넣었던가.
그녀의 웃지못할 이야기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사랑은 뜨겁게 타오르는 것보다 상대의 시끄러운 소음이 잦아들 때까지 가만히 곁을 지켜주는 그 적당한 고요 속에 더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오늘은 집에 돌아가면 남편의 말에 30분까진 아니더라도 딱 3분만이라도 온전히 침묵하며 귀를 기울여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