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할 것인가? 준비할 것인가?
앞서 우리는 동전 던지기 예시를 통해 소수의 법칙이 가진 함정을 보았습니다. 데이터가 적을 때는 우연히 100% 앞면이 나올 수 있고, 우리는 그것을 진실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표본의 수를 수천 번, 수만 번으로 늘리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 동전의 앞면이 나올 확률은 50%라는 평균으로 회귀합니다. 이를 통계학에서는 대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라고 합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오늘 하루의 출근길 상황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1년 치의 데이터가 쌓이면 평균적인 소요 시간을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리스크(Risk)와 불확실성(Uncertainty)의 결정적인 차이가 발생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 두 단어를 혼용해서 쓰지만, 확률적 사고를 제대로 무기로 삼으려면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경제학자 프랭크 나이트(Frank Knight)는 이를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구분했습니다.
리스크는 무엇이 일어날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일어날 가능성(확률)은 아는 상태를 말합니다. 가장 쉬운 예로 카지노의 룰렛이나 보험 회사의 사고 통계가 있습니다. 일상생활로 치면 비행기 사고 확률이나 교통사고 발생률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특징: 과거 데이터가 풍부하고, 통계적 분포를 알 수 있습니다.
대처법: 확률과 기댓값을 계산하여 최적의 선택을 내립니다. 여기서는 수학적 계산과 효율성의 추구가 힘을 발휘합니다.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여 만약의 사고에 대비하거나, 자산 관리에서 주식과 채권의 비중을 조절하여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반면 불확실성은 무엇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그 확률조차 가늠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우리 삶에서는 다음과 같은 상황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특징: 데이터가 없거나 무의미하며, 변수조차 파악되지 않은 미지의 미지(Unknown Unknowns) 영역입니다.
첫째, 팬데믹과 같은 전례 없는 재난입니다. 2019년 말, 그 누구도 이듬해 전 세계가 봉쇄되고 마스크 없이는 외출할 수 없는 세상이 올 것이라 계산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확률 예측의 범위를 벗어난 사건입니다.
둘째, 기술 혁명으로 인한 직업의 소멸입니다. 평생을 바쳐 전문 기술을 익혔는데, 어느 날 AI가 등장해 그 일을 순식간에 대체해 버리는 경우입니다. 이는 경쟁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 기반이 사라지는 문제입니다.
셋째, 경제 위기나 급격한 제도 변화입니다. 부동산 불패 신화를 믿고 투자했는데, 예상치 못한 금융 위기(IMF 등)나 정부의 강력한 규제 정책으로 자산 가치가 급락하는 상황입니다. 과거 데이터로는 미래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대처법: 계산이 불가능하므로 직관, 유연성, 그리고 안전마진(Safety Margin) 확보가 필수적입니다. 여기서는 효율성이 아니라 생존력이 중요합니다. 미래를 정확히 알 수 없기에 비상금을 넉넉히 확보해 두거나, 하나의 직업 기술에만 올인하기보다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다양한 역량을 익혀두는 식의 대응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불확실성의 영역을 리스크의 영역으로 착각하여 억지로 계산하려 든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완전히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면서 5년 치 예상 수익률을 소수점 단위까지 엑셀로 계산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것은 정교해 보이지만, 사실은 허구에 가깝습니다. 그곳은 리스크(계산의 영역)가 아니라 불확실성(대응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이 불확실성의 영역에서 유일한 생존 전략은 바로 플랜 B(Plan B)입니다. 리스크 상황에서는 최적화된 하나의 계획(Plan A)을 잘 세우는 것이 중요하지만, 불확실성 상황에서는 Plan A가 실패할 것을 전제로 Plan B, Plan C를 준비해야 합니다.
불확실성과 플랜 B의 관계: 예측할 수 없기에 준비해야 합니다. 제조 현장에 비상 발전기가 있는 이유는 정전 확률을 정확히 계산했기 때문이 아니라, 정전이 발생했을 때 입게 될 피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직업이 사라질 확률을 계산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직업이 사라졌을 때 나를 지켜줄 다른 기술(Plan B)을 가지고 있느냐입니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플랜 B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됩니다.
오래된 고사성어 중 양소견기 해조수핍(兩疏見機 解組誰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나라의 두 스승이었던 소광과 소수가 물러날 때(기미)를 알고 스스로 관직을 내려놓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권력의 정점에서 미래의 정치적 불확실성을 감지했습니다. 당장의 부귀영화(Plan A)를 고집하며 리스크를 계산하는 대신, 은퇴라는 안전마진(Plan B)을 선제적으로 가동하여 가문의 생존을 지켜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확실성을 대하는 현명한 태도입니다.
우리는 이제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내가 마주한 문제가 주사위 던지기처럼 확률을 알 수 있는 문제인지, 아니면 짙은 안갯속을 걷는 것처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문제인지 먼저 파악하십시오. 그 구분이 바로 확률적 사고의 시작이자, 불확실한 세상을 이기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