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대한 유연한 대처 방법 - 베이즈 정리
앞서 5장과 6장을 통해 우리는 적은 데이터(소수의 법칙)에 속지 않고, 냉정한 기댓값을 계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동전 던지기처럼 확률이 50대 50으로 고정된 게임이라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동전 던지기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문제들은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고, 상황과 정보는 시시각각 변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확률적 사고의 하이라이트인 베이즈 정리(Bayes' Theorem)가 등장합니다.
이름만 들으면 복잡한 수학 공식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겁먹을 필요 없습니다. 제가 정의하는 베이지안(Bayesian) 사고방식의 핵심은 아주 간단하고 직관적입니다.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면, 기존의 믿음을 수정한다."
우리의 뇌를 최신 내비게이션이라고 상상해 봅시다.
· 기존의 믿음(사전 확률): 당신은 목적지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이 A코스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평소 경험상 그 길이 덜 막혔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앞서 배운 기저율에 해당합니다.
· 새로운 정보: 그런데 운전 중에 라디오에서 A코스 터널에서 대형 트럭 사고가 났다는 속보가 들려옵니다. 아주 강력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새로운 데이터입니다.
· 수정된 믿음(사후 확률): 이제 당신은 A코스가 빠르다는 기존의 믿음을 즉시 철회하고, B코스가 더 나을 것이라고 판단을 업데이트합니다. 경로를 재탐색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같나요?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그리고 비즈니스 현장에서 이 과정을 자주 생략합니다. 자신의 첫인상, 낡은 고정관념, 혹은 과거의 성공 경험(사전 확률)에만 집착하여, 눈앞에 나타난 명백한 반대 증거(새로운 정보)를 무시하곤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이자, 불확실한 세상에서 길을 잃는 방법입니다.
통계학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거대한 시각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전통적인 빈도주의(Frequentist)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다루고 있는 베이지안(Bayesian)입니다. 이 둘의 차이를 이해하면 왜 베이즈 정리가 불확실한 현실에서 강력한 도구가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일상의 사례로 이 둘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사례 1: 약속 시간에 늦는 친구 매번 약속 시간에 늦는 친구 K가 있습니다. 오늘 K와 1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현재 시각 12시 55분입니다. K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 빈도주의적 관점(고정된 확률): K가 지난 10번의 약속 중 8번을 늦었습니다. 따라서 빈도주의자는 오늘 K가 늦을 확률은 80%이다라고 단정 짓습니다. 어제 K가 일찍 잤든, 오늘 차가 막히든 상관없이 과거의 데이터 빈도만이 진실입니다.
· 베이지안 관점(변화하는 믿음): 베이지안도 시작은 같습니다. K는 80% 확률로 늦을 거야(기저율). 하지만 이때 K에게서 지금 엘리베이터 앞이야라는 카톡이 옵니다(새로운 정보). 베이지안은 즉시 확률을 수정합니다. 엘리베이터 앞이라면 늦을 확률은 5% 미만으로 뚝 떨어지겠군. 베이지안에게 확률은 고정된 숫자가 아니라, 정보에 따라 변하는 믿음의 정도입니다.
사례 2: 야구 경기 승패 예측 우리 팀 에이스 투수가 선발로 나오는 날입니다.
· 빈도주의적 관점: 우리 팀의 시즌 승률은 0.500(5할)입니다. 따라서 오늘 경기에서 이길 확률도 50%입니다. 이것은 객관적인 수치입니다.
· 베이지안 관점: 시즌 승률은 5할이지만(사전 확률), 상대 팀의 4번 타자가 부상으로 결장한다는 속보(새로운 정보)가 떴습니다. 베이지안은 승리 확률을 50%에서 70%로 상향 조정(사후 확률)하여 베팅 전략을 바꿉니다.
결국 빈도주의가 반복된 데이터의 누적된 결과를 신뢰한다면, 베이지안은 세상은 새로운 정보에 따른 변화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둡니다.
베이즈 정리를 일상에 적용하려면, 세상을 확정된 사실이 아닌 변화하는 확률로 바라봐야 합니다.
1단계: 기저율(Base Rate) 확인하기
무언가를 판단하기 전, 내가 원래 알고 있던 평균적인 확률(사전 확률)은 무엇인가를 봅니다. 감정이 섞이지 않은 초기값입니다. 예: "내 친구가 주식 단타로 대박이 났대." -> (기저율 확인) "일반적인 개인 투자자가 단기간에 고수익을 낼 확률은 통계적으로 매우 낮아(약 5% 미만)."
2단계: 새로운 증거의 가중치 평가하기
새로 들어온 정보는 얼마나 신뢰할 만한가를 따집니다. 소음인지 신호인지 구분하는 단계입니다.
예: "그 친구가 정말 실력이 좋은 건가, 아니면 그저 운이 좋았던 걸까(소수의 법칙)? 혹은 과장된 이야기는 아닐까?"
3단계: 확률 업데이트하기
기저율에 새로운 증거를 반영하여 믿음의 강도(사후 확률)를 조절합니다. 0에서 100으로 급발진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조정하는 것입니다. 결론: "친구의 말만 믿고 전 재산을 투자하는 건 위험해(기저율 유지). 하지만 그 친구가 사용한 분석 툴은 논리적이니 참고해 볼 만해. 성공 확률을 0%가 아닌 10% 정도로 상향 조정해서 여윳돈으로 소액만 검증해 보자."
현대 사회에서 베이지안 사고가 더욱 절실해진 이유는 바로 유튜브나 SNS의 추천 알고리즘 때문입니다. 이 영리한 알고리즘은 우리가 좋아할 만한 정보만 골라서 보여줍니다. 내가 A라는 정치 성향의 영상을 보면, 계속해서 A를 지지하는 영상만 추천합니다. 알고리즘이 제시하고 있는 편향되고 제한된 정보의 거품 속에 살다 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알고리즘이 만들어준 편안한 필터 버블(Filter Bubble) 안에 갇히게 됩니다. 이 안에서는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할 기회조차 박탈당하며, 확증 편향은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이 알고리즘의 감옥에서 탈출하여 균형 잡힌 시각을 갖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노력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첫째, 반증 증거를 수집하는 습관입니다. 필터 버블에서 벗어나려면 알고리즘의 추천을 거스르는 능동적인 행위가 필요합니다. 유튜브 검색창에 내가 평소 생각하던 것과 정반대 되는 키워드를 일부러 입력해 보세요. 내 생각이 맞다는 증거가 아니라,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증거를 의도적으로 찾아 나설 때, 우리는 비로소 객관적인 확률을 계산할 수 있는 진짜 데이터를 얻게 됩니다.
둘째, 확신의 정도를 수치화하는 습관입니다. 세상을 무조건 된다와 절대 안 된다의 이분법으로 나누지 말고, 될 확률이 70% 정도야라고 확률적으로 표현해 보세요. 이는 내가 가진 정보가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확률로 생각하면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을 때 유연하게 70%를 50%로, 혹은 90%로 조정할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셋째, 피드백 루프를 짧게 가져가는 것입니다. 예측을 했다면 결과를 반드시 복기해야 합니다. 베이지안 업데이트는 한 번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작은 시도를 통해 데이터를 모으고, 그 결괏값으로 끊임없이 영점을 조절해 나가는 반복 과정이 필요합니다. 오늘 나의 판단이 틀렸다면, 왜 틀렸는지를 분석하여 내일의 사전 확률을 더 정교하게 다듬는 것, 이것이 바로 베이지안의 성장 방식입니다.
베이즈 정리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지적 겸손함입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고, 새로운 정보에 귀를 기울이세요. 그리고 언제든 방향을 틀 준비를 하세요. 불확실성을 이기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꺾이지 않는 고집이 아니라,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사고를 업데이트하는 능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