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살아남는 사람이 강한 사람
충분한 데이터를 확보하면 평균으로 회귀한다는 대수의 법칙은 우리에게 큰 위안을 줍니다. 오늘 하루 운이 나빠도, 성실하게 삶을 꾸려나가면 결국 인생의 성과는 나의 진짜 실력(평균)에 수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평균만 믿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평균적인 날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예측하지 못한 최악의 날에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통계학자 나심 탈레브는 "평균 수심만 믿고 강을 건너지 말라(Never cross a river if it is on average four feet deep)" 경고했습니다. 강의 99% 구간이 발목 정도 오는 얕은 깊이라도, 중간에 수심 3미터짜리 웅덩이가 단 하나라도 있다면 평균은 1미터일지언정 건너는 사람은 물에 빠져서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직장인의 출근길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 집에서 회사까지 평균 40분이 걸린다고 해서,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 딱 40분 전에 출발하면 어떻게 될까요? 1년 중 360일은 괜찮겠지만, 하필 그날 접촉 사고로 도로가 마비된다면(수심 3미터 웅덩이), 당신은 지각을 하게 되고 신뢰를 잃을 수 있습니다. 평소의 성실함이 그날의 돌발 변수를 구해주지 못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확률 분포의 꼬리 부분에서 발생하는 극단적 사건, 즉 블랙 스완(Black Swan)의 공포입니다. 블랙 스완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집니다. 첫째, 과거의 경험으로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희귀성). 둘째,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을 줍니다(극단적 충격). 셋째,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우리는 그럴 줄 알았다며 억지로 설명을 갖다 붙입니다(예측 가능성의 환상).
최근 인류가 겪은 가장 대표적인 블랙 스완은 바로 COVID-19 팬데믹입니다. 2019년 말까지만 해도 전 세계의 국경이 봉쇄되고, 마스크 없이는 집 밖을 나설 수 없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예측한 경제 전망 보고서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과거의 데이터(평균)로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이 터지자, 효율성에 최적화되어 있던 글로벌 공급망은 순식간에 마비되었고 수많은 자영업자와 기업이 위기를 맞았습니다. 또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역시 당시 최고의 금융 전문가들이 설계한 정교한 리스크 관리 모델조차 예측하지 못한 파국이었습니다. 이처럼 통계의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순간, 평균에 기반한 모든 계획은 무용지물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효율성을 위해 안전장치를 제거하곤 합니다.
빠듯한 여행 일정: 해외여행을 가서 뽕을 뽑겠다며 분 단위로 일정을 짭니다. 이동 시간을 최소화하려고 환승 대기 시간을 30분으로 잡습니다. 효율적인 계획 같지만, 앞 비행기가 10분만 연착되어도 뒷일정 전체가 도미노처럼 무너집니다.
여유 자금 없는 투자: 자산을 빠르게 불리겠다며 월급이 들어오는 족족 주식이나 코인에 투자하고 현금 비중을 0으로 만듭니다. 상승장에서는 효율적이지만, 갑자기 가족이 아프거나 급전이 필요해지는 블랙 스완이 닥치면 손해를 보고 자산을 헐값에 매각해야 합니다.
최소한의 생필품 구매: 낭비를 줄이겠다며 샴푸, 휴지, 상비약 등을 딱 떨어질 때 맞춰서 소량만 구매합니다. 재고 관리 측면에서는 효율적이지만, 갑작스러운 폭설로 배송이 마비되거나 한밤중에 급체라도 하게 되면 당장 대처할 방법이 없어 큰 곤란을 겪게 됩니다.
이처럼 평균적인 상황에서는 효율적인 전략들이 블랙 스완(돌발 변수) 앞에서는 오히려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핵심은 예측이 아니라 대비에 있습니다. 가장 강력한 무기는 안전마진(Safety Margin)과 중복성(Redundancy)입니다.
자연계를 보세요. 우리 몸은 신장이 하나만 있어도 살 수 있지만, 두 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효율성만 따지면 에너지 낭비 같지만, 하나의 신장이 망가졌을 때 생명을 유지하게 해주는 결정적인 안전장치입니다. 즉,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비효율인 셈이죠. 일상의 확률적 사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상금 통장: 수익률이 낮은 예금 통장에 6개월 치 생활비를 넣어두는 것은 투자 관점에서는 비효율입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실직이나 경제 위기라는 블랙 스완이 닥쳤을 때, 이 비효율적인 돈이 우리 가족의 삶을 지켜주는 유일한 생명줄이 됩니다.
30분의 여유: 중요한 계약이나 상견례 장소에 30분 일찍 도착하도록 출발하세요. 스마트폰을 보며 멍하니 기다리는 30분은 낭비가 아닙니다. 지하철 고장이나 택시 파업이라는 드문 사건 앞에서 당신의 신용을 지켜주는 보험료입니다.
확률적 사고의 대전제는 '게임에서 아예 아웃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대수익이 높은 투자라도, 단 한 번의 실패로 전 재산을 날리거나 재기 불능 상태가 될 확률(Risk of Ruin)이 있다면 그 게임은 신중하게 거리를 두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재미로 하는 로또는 괜찮지만, 빚을 내어 하는 투자는 절대 안 됩니다. 한 번 무너지면 복구할 기회조차 함께 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무단횡단을 하거나 과속을 하는 행위는 5분을 벌어줄지 몰라도, 사고가 나는 순간 인생 전체의 시간을 앗아갈 수 있습니다.
감정에 휩쓸려 SNS에 섣부른 글을 올리는 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의 분풀이나 관심(좋아요)을 얻을 순 있어도, 한 번의 말실수가 평생 쌓아온 사회적 신용을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 수 있습니다.
블랙 스완에 대비한다는 것은 겁쟁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도 내 가족, 내 자산, 내 커리어를 지킬 수 있는 단단한 방패를 마련함으로써, 나머지 영역에서 더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입니다. 성공이라는 결실은 그 어떤 화려한 전략보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선물과도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