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한 보지의 균형 잡기
우리는 거대한 경제 위기나 재난 때문에만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별일 아니겠지라며 매일 무심코 반복한 작은 지출들이 쌓여 어느 날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돌아올 때 일상은 흔들립니다. 이전 장에서 거대한 파도인 블랙 스완에 대비하는 법을 배웠다면, 이번 장에서는 일상의 잔물결, 즉 쇼핑과 소비라는 매일의 전장에서 확률적으로 이기는 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백화점이나 마트의 50% 할인 딱지(?)는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강력한 유혹입니다. 10만 원짜리를 5만 원에 산다는 사실에만 집중하다 보면,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을 놓치게 됩니다. 바로 이 물건을 사서 얼마나 자주 쓸 것인가라는 사용빈도(사용률 또는 가동률)의 문제입니다. 구매하고 사용률이 떨어진다면 돈의 낭비를 만들게 됩니다.
옷장의 재고 낭비 비합리적 소비는 5만 원을 아꼈다며 일 년에 딱 한 번 입을 옷을 사는 경우입니다. 이때 1회 착용 비용은 5만 원이 됩니다. 반면 확률적 소비는 정가 10만 원을 다 주더라도 매주 입을 옷을 사는 것입니다. 일 년에 50번을 입는다면 1회 착용 비용은 2,000원까지 떨어집니다.
1+1 행사를 하는 마트에서 우유나 식재료를 1+1으로 팔 때, 우리는 개당 가격이 싸다는 생각에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하지만 유통기한 내에 다 먹지 못하고 버릴 확률이 높다면, 그것은 할인이 아니라 재고 낭비일 뿐입니다. 낱개로 3,000원에 사는 것이 1+1으로 5,000원에 사는 것보다 확률적으로는 훨씬 이득인 셈입니다.
결국 소비의 승률은 가격표가 아니라 내 삶에서의 사용 확률에 달려 있습니다.
미국의 작가 엠브로스 비어스는 로또를 두고 수학을 못 하는 사람들이 내는 세금이라 평했습니다.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복권은 살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확률적 사고가 무조건 돈을 한 푼도 쓰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댓값의 정의를 조금 더 넓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내가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을 구분하는 일입니다. 복권의 당첨 확률은 내가 아무리 공을 들여도 바꿀 수 없는 고정된 환경이며, 수학적으로 정해진 상수(Constant)입니다. 반면, 복권에 얼마를 쓸지는 내가 직접 결정할 수 있는 투입량(변수, Variable)입니다. 만약 이 투입량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요행에 기댄 채 지출을 늘린다면, 이는 일상의 유동성을 마비시키고 삶의 안전마진을 파괴하는 리스크로 직결됩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변수인 지출액을 놓치는 순간, 확률 게임의 주도권은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는 기댓값에 심리적 가치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5,000원어치 복권을 사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일주일 동안 행복감과 희망을 느꼈다면, 이 지출은 수학적 기댓값을 넘어선 다른 기댓값을 갖게 됩니다. 즉, 당첨금이라는 금전적 보상 외에 일상의 활력이라는 심리적 효용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복권은 마이너스 수익률의 투자가 아니라, 플러스 만족도를 주는 소비가 됩니다.
최근에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보다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내 한정된 시간을 확보할 확률을 높이는 전략입니다.
많은 사람이 1,000원을 아끼기 위해 인터넷 최저가 검색에 1시간을 허비하곤 합니다. 하지만 나의 1시간 가치가 1만 원 이상이라면, 이것은 확률적으로 명백한 손해입니다. 적당한 가격이라면 즉시 구매하고 아낀 1시간을 휴식이나 더 가치 있는 일에 투자하는 것이 내 인생 전체의 기댓값을 높이는 길입니다.
식기세척기나 로봇 청소기 구매를 두고 돈 낭비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계들이 하루에 30분의 노동 시간을 줄여준다면, 1년이면 약 180시간을 확보하게 됩니다. 이 시간을 활용해 자기 계발을 하거나 가족과 질 높은 시간을 보낼 확률이 높다면, 기계값은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내 삶의 가동률을 높이는 투자가 됩니다.
퇴근길 너무 지쳐 있을 때, 만 원을 더 내고 택시를 타는 것은 단순한 사치가 아닐 수 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시달리며 집에 가서 아무것도 못 하고 쓰러질 확률과, 택시 안에서 편히 쉬며 체력을 회복해 저녁 시간을 생산적으로 쓸 확률을 비교해 보십시오. 이때 지불하는 만 원은 저녁 시간의 생산성이라는 보상을 얻기 위한 합리적인 배팅입니다.
돈은 다시 벌 수 있지만, 흘러간 시간은 결코 보충할 수 없는 자원입니다. 내가 1시간을 더 투입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금전적 이득보다, 그 시간을 확보함으로써 얻게 될 삶의 질이나 미래 가치의 기댓값이 더 크다면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시간을 사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보험은 복권과 정반대입니다. 복권이 요행을 바라는 것이라면, 보험은 최악의 불운을 막는 방패입니다. 사고가 안 나서 보험료가 아깝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확률적으로 보험은 손해를 보는 것이 가장 큰 이득인 독특한 상품입니다.
우리가 보험에 가입하는 이유는 감당할 수 없는 큰 사고를 내가 매달 감당할 수 있는 작은 비용(보험료)으로 맞바꾸기 위해서입니다. 즉, 내 인생이 한순간에 파산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걸어두는 것입니다.
보험을 고를 때는 자잘한 혜택보다는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큰 위험을 확실히 막아주는지에 집중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현명하게 리스크를 관리하는 확률적 판단입니다.
결국 소비에서의 확률적 사고란 단순히 돈을 아끼는 인색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된 자원인 시간과 돈, 그리고 에너지를 어디에 배치했을 때 가장 높은 삶의 만족도를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지적인 여정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쇼핑 카트를 채우고 결제 버튼을 누르며 선택이라는 이름의 배팅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본능은 종종 우리를 배신합니다. 당장 눈앞의 50% 할인이라는 숫자에 현혹되어 정작 집 안의 공간만 차지할 재고를 쌓아두고, 1,000원을 아끼겠다고 길바닥에 소중한 시간을 뿌리며, 정작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치명적인 리스크에는 무방비로 노출되곤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뇌가 본래 숫자의 확률보다는 감정의 자극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확률적 사고는 차가운 계산기 소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내 소중한 일상을 가장 이성적으로 지켜내는 따뜻한 방패입니다. 돈은 다시 벌 수 있지만, 잘못된 선택으로 잃어버린 시간과 기회는 쉽게 돌아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쇼핑 카트를 채우는 기준은 남들이 말하는 가성비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철학이 담긴 확률적 기댓값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