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커리어 전략

인생이라는 가장 거대한 투자

by 김응석

우리는 앞서 소비라는 확정된 마이너스(-)를 통제하고, 투자라는 확률적 플러스(+)의 승률을 높이는 법을 다루었습니다. 지갑에서 나가는 돈과 계좌에 쌓이는 숫자를 관리하는 일도 이토록 정교한 설계가 필요한데, 만약 그 투자 대상이 단순한 자본이 아니라 당신의 인생 그 자체라면 어떨까요?


우리는 보통 하루의 3분의 1,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 이상을 일에 투입합니다. 주식 차트를 분석하며 이익률을 따지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자신의 커리어를 데이터로 분석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사실 커리어야말로 우리 인생에서 가장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하고, 그 결과가 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소중한 활동입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가장 거대한 프로젝트 속에서 수많은 선택을 내리며 자신만의 커리어를 설계하고, 성실히 만들어 가며, 그 소중한 경험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갑니다. 따라서 커리어 선택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의사 결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커리어 선택의 중요한 기로에 서 있을 때, 어떻게 확률적 사고를 활용해야 하는지, 그리고 보이지 않는 기회비용을 어떻게 수치화해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 안전지대의 함정과 기회비용

많은 직장인이 "지금 회사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나가면 더 고생할까 봐"라는 이유로 이직을 망설입니다. 확률론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현상 유지 편향(Status Quo Bias)에 빠진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현상 유지 편향이란 특별한 이득이 없더라도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심리적 성향을 말합니다. 새로운 길을 택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변화로 인해 겪을지도 모를 손실을 더 크게 느끼는 심리적 저항선이 작동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현재 상태를 위험도 0의 안전지대로 설정하고, 새로운 도전을 위험도 100의 모험으로 간주하곤 합니다. 하지만 커리어 설계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의 비용을 계산하는 것입니다. 제조 현장에서 고장 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후 설비를 그대로 가동하다가, 결국 전체 라인이 멈추는 치명적인 셧다운(Shutdown)을 겪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놓치기 쉬운 진짜 기회비용입니다.

잔류의 기회비용: 지금의 익숙한 자리에 머무름으로써 포기하게 되는 잠재적 연봉 상승분, 새로운 기 술 습득 기회, 그리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며 성장할 수 있는 확률.
이직의 기회비용: 새로운 도전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현재의 편안함, 사내에서 쌓아온 인간관계와 입지, 그리고 매달 들어오는 안정적인 월급이 주는 심리적 평온함.

만약 우리가 속한 산업이 사양세에 접어들었다면, 현재 직장에 머무르는 것은 안전한 선택이 아닙니다. 그것은 서서히 가라앉는 배 위에서 가만히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 경우 머무름의 승률은 시간이 갈수록 0에 수렴하게 됩니다. 마치 카지노에서 수학적으로 설계된 카지노 측에 유리한 확률 구조(House Edge) 때문에 게임을 반복할수록 결국 돈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과 같습니다. 카지노는 단기적으로 운 좋은 승자를 배출할지 모르지만, 판이 거듭될수록 통계적 기댓값은 무자비하게 손실을 향해 달려갑니다. 사양 산업에 머무는 것 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나에게 불리한 변수들만 늘어나며, 결국 나의 전문적인 가치를 서서히 잠식하고 장기적인 리스크를 키우는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12장_1.png


2. 기댓값으로 의사결정의 무게 중심 잡기

이직이나 창업 같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감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숫자로 계산하는 것입니다. "망하면 어떡하지?"라는 막연한 공포나 "대박 나겠지?"라는 근거 없는 낙관은 현명한 판단을 방해하는 걸림돌과 같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기댓값(Expected Value)이라는 도구입니다.

제조 현장에서 신규 설비를 도입할 때 투자 대비 효과(ROI)를 꼼꼼히 따지듯, 커리어에서도 각 시나리오가 가진 기댓값을 계산해 보아야 합니다. 기댓값은 단순히 숫자를 맞히는 게임이 아니라, 내 선택의 무게추가 어디로 기울어져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한 스타트업으로의 이직을 고민 중이라면 다음과 같이 시뮬레이션을 생각해 수 있습니다.

시나리오 A (현 직장 잔류): 내년 연봉 5,000만 원 (확률 95%) = 기댓값 4,750만 원

시나리오 B (스타트업 이직):

성공 시(스톡옵션 대박 등): 환산 가치 2억 원 (성공 확률 20%)

실패 시(회사 폐업 등): 환산 가치 3,000만 원 (실패 확률 80%)

계산: (2억 × 0.2) + (3,000만 × 0.8) = 4,000만 + 2,400만 = 기댓값 6,400만 원


단순 계산상으로는 이직의 기댓값이 더 높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성공 확률 20%가 낮다는 사실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실패했을 때 감수해야 할 손실 규모와 성공했을 때 얻을 이익 범위를 객관적으로 비교하는 것입니다.

기댓값을 계산하는 진짜 이유는 '실패하면 어떡하지?'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최악의 경우 이 정도 손해를 본다'라는 구체적인 숫자로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실패 확률 80%라는 숫자가 주는 공포를 "실패해도 최소한 3,000만 원 정도의 가치는 남는다"는 데이터로 바꾸는 순간, 의사결정의 주도권은 감정에서 이성으로 넘어옵니다. 만약 실패 시의 손해가 내 인생을 파산시킬 정도가 아니라면, 더 높은 기댓값을 가진 선택지를 택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나의 자산 가치를 우상향 시키는 전략적 판단이 됩니다. 따라서, 기댓값은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우리가 나아갈 길을 차분하게 비춰주는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줍니다.

12장_그림2.png

3. 적은 리스크로 큰 기회를 만드는 전략적 선택들

손해는 작고 이익은 큰 구조를 커리어에 적용하는 방법은 이직 외에도 다양합니다. 제조 현장에서 전체 라인을 멈추지 않고 소규모 파일럿 라인(Pilot Line)에서 신공정을 테스트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사이드 프로젝트와 전문성 확장 본업을 유지하면서 주말이나 저녁 시간을 이용해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작은 사이드 프로젝트(부업)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때 잃을 수 있는 최대 손실은 주말의 휴식 시간과 약간의 교육비 정도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새로운 커리어로의 전환 기회, 부수입 창출, 혹은 대체 불가능한 전문가로서의 입지 등 상한선이 열려 있습니다.


전략적 네트워킹과 정보 자산 관심 있는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거나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비대칭적 선택입니다. 커피 한 잔 값과 몇 시간의 대화가 손실의 전부이지만, 그 만남을 통해 얻게 될 결정적인 이직 제안이나 사업 아이디어는 내 인생의 기댓값을 단숨에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글쓰기와 퍼스널 브랜딩 내가 가진 지식을 꾸준히 기록하는 활동입니다. 글이 조회수가 낮다고 해서 내 삶이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운 좋게 내 글이 영향력을 얻기 시작하면 강연, 출판, 협업 등 내가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기회가 확장됩니다. 투입되는 에너지는 제한적이지만 보상은 무한대로 열려 있는 전형적인 플러스 기댓값 게임입니다.

12장_3.png


4. 정답이라는 환상보다 기회의 질에 집중하기

커리어를 선택할 때 정답은 없는 거 같습니다. 저 역시 제조 현장에서 수많은 프로젝트를 마주하고 제 커리어를 결정해야 할 때, 이것이 100% 정답인가라는 질문에는 결코 확신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대신 제가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이 기회가 내 능력을 키워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좋은 밑거름인가?


공장의 이익률을 높이기 위해 때로는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원료를 투입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정답인지는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지만, 그 원료가 가진 잠재적인 성질이 기존의 것보다 훨씬 뛰어나다면, 설령 실패하더라도 그 데이터를 얻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시도가 됩니다.


저의 커리어 전환 역시 그랬습니다. 당시에는 무모해 보였던 선택들이 지금 돌아보면 정답이어서가 아니라, 그 기회들이 가진 잠재적인 이익이 컸기에 내린 결정들이었습니다. 성공 확률이 낮아 보여도 실패했을 때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내 삶을 무너뜨릴 정도가 아니라면, 그리고 성공했을 때의 보상이 내 삶의 체급을 바꿔놓을 수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검토해 볼 만한 기회입니다.


완벽한 선택은 없습니다. 다만 현재 시점에서 우리가 확보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조금 더 나은 확률과 더 풍부한 가능성이 담긴 기회를 선택하고, 그 과정을 최선을 다해 가꿔나가는 일만 있을 뿐입니다.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지금 100%의 확률로 천천히 손해를 보는 길을 걷고 있는가, 아니면 불확실하지만 기댓값이 높은 길을 걷고 있는가?"

리스크를 전혀 감수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리스크입니다. 이제 당신의 커리어라는 투자 포트폴리오를 재점검할 시간입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 자리가 진정한 안전지대인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기회비용을 지불하며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는 빙하 위인지 냉정하게 상황을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이 것이 급변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요.

12장_그림4.png


keyword
이전 11화제11장: 투자 마인드셋: 시장을 이기는 확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