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나는 왜 항상 시간이 부족할까?

계획 수립의 오류

by 김응석

"어떤 일은 항상 예상보다 오래 걸린다. 심지어 호프스테터의 법칙을 고려하더라도 말이다." — 더글러스 호프스테터(Douglas Hofstadter)


위의 문장은 인지 과학자 더글러스 호프스테터가 제안한 호프스테터의 법칙(Hofstadter's Law)입니다. 이 법칙의 핵심은 '자기 참조적 역설'에 있습니다. 우리가 "분명 예상보다 오래 걸릴 거야"라고 예상하고 계획에 여유 시간을 반영하더라도, 실제 작업은 그 수정된 계획보다도 더 오래 걸린다는 뜻입니다.


마치 제조 현장에서 예상치 못한 설비 트러블을 대비해 리드타임에 넉넉한 버퍼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공정에서는 우리가 미처 계산하지 못한 새로운 변수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 결국 마감을 넘기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의 뇌가 가진 낙관적 본능이 얼마나 끈질긴지를 보여주는 역설적인 법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선 장에서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타인의 마음이라는 블랙박스를 다루는 법을 이야기했습니다. 관계는 본질적으로 상호작용이기에 변동성이 크다는 것을 인정했지요. 그렇다면, 오로지 나 혼자서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영역, 바로 나의 계획과 나의 시간은 어떨까요?

안타깝게도 우리는 타인의 마음만큼이나 자신의 미래 수행 능력에 대해서도 무지할 때가 많습니다. 분명 일주일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프로젝트가 마감 전날 밤까지 이어지거나, 주말 안에 끝내려던 집 정리가 한 달 넘게 방치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왜 매번 이번엔 다르다라고 다짐하면서도, 늘 시간에 쫓기는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요?


1. 최상의 시나리오라는 함정: 낙관 편향

심리학자이자 행동경제학의 대부인 대니얼 카너먼은 이를 계획 오류(Planning Fallacy)라고 명명했습니다. 계획 오류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상황을 낙관적으로 예측하여 실행 시간을 비현실적으로 짧게 잡는 현상을 말합니다.

제조 현장으로 치면, 설비의 고장 확률을 0%로 잡고 이론적인 가동 시간만으로 리드타임을 산출하는 설계 오류와 같습니다. 우리가 계획을 세울 때 뇌는 무의식적으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릴 때를 가정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계획 오류의 사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주말 대청소 계획입니다. "이번 토요일 오전이면 옷장 정리부터 거실 유리창 청소까지 다 끝낼 수 있어"라고 호기롭게 시작하지만, 막상 옷장 하나를 채 정리하기도 전에 해가 저무는 경험을 합니다. 뇌는 청소 도중 발견한 옛 추억의 물건에 빠져들거나, 예상보다 찌든 때가 잘 닦이지 않는 변수(공정 지연)를 계산에 넣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격증 시험공부입니다. "하루에 인강 3개씩 들으면 한 달이면 완강하겠지"라고 계획을 짜지만, 갑작스러운 야근, 친구의 연락, 혹은 쏟아지는 잠이라는 돌발 변수가 발생하면 계획은 순식간에 도미노처럼 무너집니다.


셋째, 여행 짐 싸기입니다. "출발 전 30분이면 충분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짐을 싸다 보면 세면도구를 찾지 못하거나 가방 크기가 부족해 다시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여 결국 공항철도 시간에 쫓기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자료 조사는 한 번에 끝날 것이고, 컴퓨터는 고장 나지 않을 것이며, 갑작스러운 회식이나 컨디션 난조 따위는 없을 것이라고 전제합니다. 즉, 확률 분포의 양 끝단에 존재하는 수많은 변수를 무시하고, 오직 가장 이상적인 상황(평균값 또는 최빈값)만을 기준으로 스케줄을 짜는 셈입니다. 이것은 냉정한 계획이라기보다 희망 사항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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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를 객관화하는 기술: 내부 관점과 외부 관점

이러한 지독한 낙관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장 강력한 확률적 도구는 시야를 나 자신이 아닌 바깥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내부 관점(Inside View)은 우리가 계획을 세울 때 흔히 저지르는 가장 치명적인 실수입니다. 이것은 "이번 프로젝트는 내가 집중력이 좋고 환경도 받쳐주니까 3일이면 충분해"라고 생각하며 오직 현재의 내 상태와 이번 사건의 구체적인 특징에만 몰입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제조 현장에서 신규 라인을 셋업 할 때, 과거의 수많은 지연 사례는 무시한 채 "이번 장비는 최신형이고 담당 엔지니어의 숙련도가 높으니 무조건 최단 시간 안에 끝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시각에서는 나를 둘러싼 돌발 변수가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모든 공정이 설계도대로 완벽하게 돌아갈 것이라는 이상적인 시나리오에만 매몰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외부 관점(Outside View)은 나를 제삼자처럼, 혹은 내가 관리하는 수많은 공정 중 하나로 객관화해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나라는 사람이 가진 의지력은 잠시 접어두고, 비슷한 난이도의 업무를 처리했던 과거의 기록들을 보자. 지난 10번의 사례를 보니 평균적으로 5일이 걸렸고, 작은 변수라도 생기면 7일이 걸렸어"라고 말하며 통계적 분포 확인을 하는 과정입니다. 아무리 내가 이번에는 밤을 새워서라도 끝내겠다고 다짐해도, 과거 데이터라는 중력은 나를 결국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균값으로 끌어당깁니다.

이때 우리가 참고하는 과거의 유사한 사례들의 집합을 레퍼런스 클래스(Reference Class)라고 부릅니다. 이 집합이 크고 정교할수록 우리의 예측 승률은 비약적으로 올라갑니다. 당신의 일시적인 의지력을 믿지 말고, 당신의 삶이 실제로 증명해 온 데이터인 기저율(Base Rate)을 믿으셔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과거에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항상 마감을 20% 정도 초과해서 맞췄다면, 이번에도 그럴 확률은 90%가 넘습니다. "이번엔 정말 다르다"는 말은 확률적 사고 앞에서는 무의미한 감정일 뿐입니다. 의지가 아닌 데이터를 기반으로 리드타임을 산출해야만 비로소 실패 없는 계획이 가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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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확률적 버퍼(Buffer) 설계하기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주관적인 느낌을 배제한 확률적 버퍼를 설계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게으름을 피우기 위한 여유 시간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발생할 알 수 없는 불확실성에 대한 과학적인 보험입니다.


첫째, 3점 추정법(Three-Point Estimating)을 활용하여 시간의 산포를 계산하십시오. 제조 현장에서 신제품 양산 일정을 짤 때 사용하는 PERT 기법의 핵심입니다. 계획을 세울 때 단순히 얼마 걸리겠지라고 답하지 말고, 다음 세 가지 시나리오를 구체적인 숫자로 도출하십시오.


낙관적 시간 (Best Case): 모든 인프라가 완벽하고 방해 요소가 전혀 없을 때의 최단 시간입니다. (예: 4시간)

비관적 시간 (Worst Case): 설비가 고장 나고, 컨디션이 최악이며, 갑작스러운 수정 요청이 빗발칠 때의 최장 시간입니다. (예: 12시간)

최빈 시간 (Most Likely): 특별한 이변 없이 평소와 같은 숙련도로 작업할 때의 평균 시간입니다. (예: 5시간)


단순히 이 셋을 더해 3으로 나누는 산술 평균은 위험합니다. 실제 업무에서는 최빈 시간이 발생할 확률이 가장 높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중 평균 공식을 활용하는 것이 훨씬 정확합니다.

가중 평균 예상 시간 = (낙관적 시간 + 4 × 최빈 시간 + 비관적 시간) / 6

위 예시를 대입하면 (4 + 20 + 12) / 6 = 6시간이라는 결과가 나옵니다. 5시간이면 될 것 같다는 직관적 판단보다 1시간을 더 확보하는 이 계산법이, 통계적으로 훨씬 안전한 약속을 가능하게 합니다.


둘째, 공학적 관점의 안전마진(Safety Margin)을 최소 30% 확보하십시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가치보다 싸게 사는 안전마진을 강조했지만, 이는 기계 설계의 안전 계수(Factor of Safety)와도 맥을 같이 합니다. 교량을 설계할 때 최대 하중이 100톤이라 해도 실제로는 150톤을 견디게 설계하는 이유는, 우리가 미처 계산하지 못한 금속의 피로나 자연재해 같은 블랙 스완에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시간 관리도 동일합니다. 3점 추정법으로 도출한 예상 소요 시간에 무조건 1.3에서 1.5를 곱하십시오. 만약 계산된 시간이 10시간이라면, 실제 일정에는 13시간에서 15시간을 배정하는 것입니다.

이 30%의 추가 시간은 게으름을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자료를 찾다가 링크가 깨져서 우회 경로를 찾아야 하거나, 갑자기 걸려 온 중요한 전화를 응대해야 하는 등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방어하는 견고한 방파제입니다. 안전마진이 없는 계획은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멈춰 서는 정밀 기계와 같아서, 결국 전체 공정의 파행을 불러옵니다. 충분한 안전마진을 둔 계획만이 예상치 못한 지연 상황에서도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는 실력을 만들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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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감의 역설: 여유가 속도를 만든다

확률적 사고로 무장한 전문가는 최대한 빨리 할게요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과거 데이터를 볼 때, 여러 변수를 고려하여 0월 0일까지 가능합니다라고 명확히 말합니다.

처음에는 이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확률적 버퍼가 주는 심리적 안정감은 뇌의 인지 부하를 줄여주어 실제 작업 속도를 높여줍니다. 시간에 쫓기며 허둥지둥하는 것보다, 변수를 예상하고 차분하게 처리하는 것이 늘 더 빠르고 정확합니다.

우리의 일상은 간트 시트처럼 딱 떨어지지 않습니다. 관계라는 변수만큼이나 나의 일상 업무에도 수많은 우연이 개입합니다. 그 우연들이 들어올 자리를 미리 비워두는 것, 그것이 바로 불확실성을 이기는 가장 확실한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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