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Fact)과 해석 시나리오 생각해 보기
우리는 12장에서 인생이라는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인 커리어 전략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커리어의 성패와 일상의 행복이라는 최종 결과물(Output)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입니다. 재무제표나 공정 이익률은 숫자로 명확히 산출되지만, 사람의 마음은 입력값(Input)을 넣어도 그 속마음을 알 수 없는 블랙박스(Black Box)와 같아서 우리는 종종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
이번 장에서는 좋은 관계의 형성을 방해하는 오해의 가능성을 낮추고, 서로의 의도를 오해 없이 받아들여서 신뢰를 쌓아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타인의 마음을 100% 읽어내는 독심술은 불가능하지만, 확률적 사고를 통해 오해라는 불편한 감정을 통제 가능한 범위로 줄여나가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일상생활에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해가 발생하는 시점은 대부분 객관적인 사실(팩트)과 나만의 주관적인 생각(해석)이 뒤섞일 때입니다. 이것은 날씨 앱이 제공하는 객관적인 강수 확률 데이터와 "하늘을 보니 비가 올 리 없어"라는 개인적인 느낌이 뒤섞여 결국 우산 없이 외출했다가 낭패를 보게 되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일상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가까운 지인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는데 3시간째 답장이 없습니다. 이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과 의견을 분리해 보셨나요? 여기서 사실은 무엇일까요? 바로 '메시지를 보낸 지 3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답장이 오지 않았다'는 데이터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곧바로 이런 해석이 고개를 듭니다.
"이 사람이 나를 무시하나? 나한테 화난 게 분명해."
이것은 단 하나의 가능성에 내 마음을 100% 다 써버리는 확정적 사고입니다. 하지만 확률적 사고는 사실(Fact)이 일어날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고 각각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고려해 보는 것을 말합니다.
1) 팩트: 메시지를 보냈고, 3시간 동안 답장이 오지 않았다. (확률 100%)
2) 확률적 사고:
. 긴급한 회의나 업무로 너무 바빠서 못 봤을 확률 (40%)
. 확인은 했지만 나중에 답하려다 지난 일들을 잠시 잊었을 확률 (30%)
. 배터리 방전이나 통신 장애 등 어쩔 수 없는 외부 상황 (10%)
. 정말로 나에게 화가 나거나 의도적으로 피할 확률 (20%)
이렇게 가능성을 나누는 순간,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은 절대적인 진실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경우의 수 중 하나(20%)로 작아집니다. 이렇게 다양한 해석 시나리오를 작성해 보는 것은 타인의 입장을 차분히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만들어줍니다. 이러한 여유는 내 감정에만 매몰되어 쓸데없는 오해를 키울 수 있는 확률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좋은 관계 형성의 기본이 되는 'I am OK, You are OK'를 실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공정에서 불량이 발생했을 때, 유능한 엔지니어는 사람을 탓을 하기 전에 설비의 전압, 온도, 원재료의 상태 같은 외부 환경을 먼저 점검합니다. 이를 원인 분석(Root Cause Analysis)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납니다. 타인의 행동을 볼 때 그 사람의 '사정'보다는 '성격'이나 '자질' 탓을 먼저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심리학에서는 기본적 귀인 오류라고 부릅니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하자면, 이는 나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엄격한 이중 잣대와 같습니다.
내가 약속 시간에 늦었을 때: "차가 너무 막혀서 어쩔 수 없었어." (상황 탓)
상대가 약속 시간에 늦었을 때: "저 사람은 원래 게으르고 약속을 가볍게 여겨." (성격 탓)
왜 이런 오류가 발생할까요? 이유는 정보의 양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이기에 오늘 아침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속속들이 잘 압니다. 하지만 타인은 나에게 스쳐 지나가는 엑스트라와 같아서, 눈에 보이는 결과만 보고 '원래 저런 사람'이라고 성급한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우리는 타인의 행동 뒤에 숨겨진 수만 가지 사정을 다 알 수 없습니다.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내리는 단정적인 결론은 틀릴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따라서 타인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때, 확률적 사고는 나에게 판단을 잠시 멈추고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을 확률에 대대 찬찬히 살피게 해 줍니다. 이런 마음의 여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도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주식 투자를 할 때 기업 상황을 확인하고 공정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데이터를 활용해서 확인하듯, 관계의 불안함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직접 물어보는 것입니다.
특히 가족이나 친한 친구처럼 가까운 사이일수록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다 알겠지"라는 위험한 가정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는 데이터 업데이트를 멈춘 낡은 예측 모델을 고집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래된 설비일수록 정기 점검이 중요하듯, 가까운 관계일수록 서로의 변화된 생각과 사정을 묻는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가 필수적입니다. "알아서 해주겠지"라는 기대가 채워지지 않을 때 발생하는 서운함은 데이터 확인 없이 짐작으로만 공정을 가동하다가 결국 대규모 불량(관계의 단절)을 초래하는 리스크와 같습니다.
혼자서 상상의 소설을 쓰며 에너지를 낭비하는 대신, 상대방에게 정중하게 질문을 던져서 사실(Fact)을 확인해 보세요.
"메시지 답장이 없으셔서 혹시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했습니다. 지금 많이 바쁘신가요?"
이 짧은 질문 하나로 우리는 부정적인 시나리오에 모든 감정을 거는 위험을 방지하고, 진실이라는 확실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정중하게 건네는 질문 한마디가 혼자만의 짐작이 불러올 수 있는 큰 오해를 막아주고, 다시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게 만드는 소통의 힘이 됩니다.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 수 있는 확률적 사고는 일상에서 이렇게 적용해 보면 어떨까요?
첫째, 타인의 행동을 0(착함) 아니면 100(나쁨)으로 나누지 마십시오. 인간의 감정과 행동은 디지털 스위치처럼 0과 1로 명확히 나뉘지 않습니다. 누구나 상황에 따라 예민해지기도 하고, 의도치 않게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상대방의 행동을 단순히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재단하기보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회색 지대를 인정해 보세요. '그럴 수도 있다'는 다양한 가능성의 관점을 가질 때 관계의 유연성이 생깁니다.
둘째, 나쁜 의도라고 단정하기보다 상황 때문일 확률에 먼저 무게를 두십시오. 공정 불량이 발생했을 때 작업자의 자질을 먼저 의심하면 갈등만 커지지만, 설비의 노후화나 환경 변수를 먼저 살피면 해결책이 보입니다. 타인의 실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무시해서"라는 내면적 동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라는 외부 변수에 먼저 배팅해 보세요. 이것은 상대를 무조건 신뢰하라는 뜻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다치지 않게 보호하면서 관계를 지켜낼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셋째, 섣불리 결론을 내리고 관계를 정리하기 전에, 질문을 통해 상대방의 상황을 업데이트하십시오. 우리 뇌 속의 존재하는 타인에 대한 정보는 시간이 지나면 낡은 데이터가 됩니다. 내 짐작만으로 "저 사람은 이제 변했어"라고 마음의 문을 닫기 전에, 가벼운 대화로 상대방의 상황을 다시 한번 살펴보세요. 정중하게 건네는 질문 한마디가 혼자만의 짐작이 불러올 수 있는 큰 오해를 막아주고, 다시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게 만드는 소중한 계기가 됩니다.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이 처해 있는 상황과 마음 상태는 우리가 직접 제어할 수 없는 외부 변수(External Variable)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불확실한 외부 변수에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섣부른 짐작으로 결론을 내리기보다,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을 확률을 열어두는 여유를 갖는 것은 마음의 거리를 좁히고 좋은 관계를 유지함은 물론 내 마음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