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함에 대하여 생각한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하고, 진짜 미안할 때가 많다. 미안한데 미안하다고 말을 못 하면 내내 찜찜해서 나중에라도 몇 번을 연속으로 해야 속이 편하기도 하다. 그런데, 너는 왜 미안하지 않니? 너무나 궁금해서 미치겠다.
특히 같이 잘못했다고 느낄 때, 내가 먼저 “미안해”라고 말하면 상대방도 ‘나도 미안해’라고 하고, 우리는 서로의 손을 붙잡고, 서로를 용서하고, 다시 이어지는 따뜻한 마음으로 전보다 더 깊은 연대를 나눌 것 같은데 말이다.
A: 미안해.
B: 응
A: 너는 안 미안해?
B: 내가 왜?
A: 미안해해야 하는 거 아니야?
B: 내가 뭘 잘못했는데!!!!!
지난 몇 년 동안 “왜 안 미안해?” 대화 때문에 관계가 깨어진 일이 연속으로 있었다. 상황은 달랐고 사람은 달랐지만, 미안함에 대한 대화가 펼쳐지는 방식이 똑같았다. “너는 왜 안 미안해?”라는 질문에 그동안 다정한 대화를 나눴던 사람이 사라지고 갑자기 언성을 높이거나 칼날같이 싸늘한 눈으로 노려보거나 하는 등, 크게 화를 냈다.
물론 나도 노려봤을 것이고, 딱딱한 얼굴 표정과 싸한 칼날의 언어로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가장 최근의 ‘안 미안해?’ 대화는 좀 억울하다. 경험적으로 이 질문이 상대방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참으려고 했는데, 정말 너무나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어서 물어보고야 만 것이다.
“근데 말이야...저번에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한테는 미안해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했었는데....나한테는...왜...안 미안해?”
내 말투나 얼굴 표정의 문제는 아닌 거 같다. 그 후에 일어난 일은 판에 밖인 듯, 이미 정해진 스크립트가 있는 듯 똑같이 흘렀다. 아! 궁금해서 미치겠다. 진짜 미안하지 않은 걸까? 미안하다는 말을 못 하는 걸까? 나한테는 안 미안한 걸까? 내가 절대 물어보면 안 될 것을 물어본 걸까?
사과에는 일종의 정해진 룰이 있다. 잘못한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자신이 잘못했음을 밝히며 사과를 해야 하며, 사과를 하는 과정에서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명백한 잘못과 명백하게 잘못한 사람과 명백하게 일으킨 고통이 있는 경우에서도 사과가 일어나지 않는 경우를 나의 삶에서도, 타인들의 삶에서도, 역사와 뉴스에서도 많이 본다. 사과하고 사과를 받는 일이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게 끌려가 지옥보다 못한 일을 겪고 평생 고통을 겪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도 일본의 진정 어린 사과이다. 이미 있었던 일을 되돌려 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나라를 바치라는 것도 아니고, 목숨을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라는 것인데, 그걸 해주지 않아서, 할머니들이 한 맺힌 채로 돌아가신다.
최근에는 미국 순방을 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비속어 논란에 휩싸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주 영국·미국·캐나다 순방 중 불거진 ‘비속어 논란’과 관련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하는 것은 국민을 굉장히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강하게 맞섰다. 치열한 외교 무대에서 노출된 자신의 거친 발언에 대해 사과하기보다는, 야당의 ‘외교 참사’란 비판에 정면 대응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 (한겨레 2022-9-26)
그는 사과를 하는 대신 여기저기 손가락질을 하며 탓을 하고 있고, 그 일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화나게 하고 있다.
내가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걸 보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조언해 준 사람이 있다. 그의 의견은 내가 미안하다고 말하면, 상대방이 내가 정말 잘못했다고 여길 거라는 의견이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되었다. 내가 잘못한 게 있으니 미안하다고 하는 건대? 정말 미안해서 미안하다고 말한 건대? 이 말이 어느 정도는 사실인 부분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이것은 “과도한 사과의 부작용”편을 보기), 사과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회복, 유대감, 치유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지금에야 든다.
다음은 서울의 어느 카페에서 엿들은 이야기다.
여자: “네가 잘못했잖아.”
남자: (언성을 높이며) “내가 뭘 잘못했어?”
여자: (말꼬리를 내리며) “아니 네가 나를 섭섭하게 했잖아~”
남자: (숨이 거칠어지며 미간을 찌푸린다)
여자: (부드러운 말투로): “아니~ 내가~ 섭섭해했다고~~”
이 경우에는 여자가 “you” 대화에서 “I” 대화로 주어를 실시간으로 바꾸었다. 내가 섭섭하기는 한데, 네가 나를 섭섭하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으로 말을 고치자 더 이상 갈등이 증폭되지 않고 대화가 어색하게 멈췄다. 이런 대화는 “I”대화법은 상대방을 자극하거나 책임을 묻지 않고,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대화법이다. 그런데, 정말 자신의 섭섭함은 함께하고 있는 상대방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그 사이에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일까?
이와 정반대의 대화도 흔하다. 다음 대화는 오래전에 개그 콘서트 TV 프로그램에서 본 것이다.
여자: (화가 나있다)
남자: “에이, 그러지 마. 내가 잘못했어.”
여자: “뭘 잘못했는데?”
남자: “내가 다 잘 못했어. 앞으로 잘할게.”
여자: “뭘 잘할 건데?”
남자: “내가 앞으로 다 잘할게.”
여자: 화를 내며 나가버린다.
남자: “내가 다 잘 못했다고 그러는데 뭐가 문제야?” 전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다.
그리고 카메라가 청중을 향하는데, 여자 친구가 옆에 있는 남자 친구를 때리면서 웃고 있다.
이것은 여자들이 정말 싫어하는 방식의 사과이고, 남자들이 정말 이해 못 하는 결론이다. 이 차이를 어떻게 메꿀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수많은 작고 큰 다툼과 갈등이 있을 때 어떻게 사과하고 어떻게 용서하고, 갈등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관계를 지켜가면서 살아갈까? 이 책은 “미안함”에 대한 책이지만, 나는 미안한데 안 미안한 사람과, 또는 나는 안 미안한데 내가 미안해하기를 바라는 사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사랑하면서 살까에 대한 탐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