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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Jul 27. 2023

유명해지기 싫은데 유명해지고 싶어

-자괴감이 들 때

 동료 거리공연가에게 전화가 왔다. 실력 있고 활기찬 분이다. 원래 공연자들끼리는 자주 통화한다. 낮에도 저녁에도 한다. 이게  없는 프리랜서의 장점이다. 하지만 내용은 속상한 이야기일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그랬다. 담당자가 자신의 잘못을 거짓말로 덮으려 했단다. 누가 봐도 부당한 일인데, 당당히 따지지 못하는 자신이 슬펐다고 한다. 우리는 '유명하지 못한' 우리 잘못이라며 자조적인 웃음을 나누었다.


 거리공연자들은 거의 이런 경험이 있다. 아마 대부분 프리랜서들의 경험이라고 해도 얼추 맞을 것이다. 내가 갑은커녕 을도 안 되어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중의 ‘계’가 되어버리는 것. 내가 부당한 일을 겪었어도 저 담당자가 누구와 연결되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친절해야 한다. 거리공연자는 넘쳐나고,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 어떤 팀을 추천해서 그 팀을 잘 나가게 하는 것은 어렵지만, 안 좋은 평을 내어 사라지게 하는 것은 너무도 쉽다. 절대 그런 무서운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 물론 대부분의 담당자님들은 거리공연자에게 매우 친절하시다. 그렇지만 아주 가끔, 아아아주 가끔은 이런 일을 겪는다.   

그래서 거리공연가들은 무기력과 우울감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유명하지 못해 울적한 순간은 공연 의뢰가 들어올 때도 종종 생긴다. 이건 공연비를 협의할 때 담당자님들께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이번 공연은 예산이 거의 잡혀 있지 않아서요.


 물론 이해한다. 정말 예산이 적다면 어쩔 수 없으니까. 하지만 메인무대에는 유명 연예인이 대거 출연한다고 광고하던데, 그분들께도 같은 말을 하는지 궁금해진다. 혹은 이렇게 자세히 말씀하시는 분도 있다.


버스킹 예산은 얼마 되지 않아서요. 버스킹을 갑자기 하게 되어서 예산이 없어요. 이 금액에 가능할까요?”


 이런 때에는 마음이 복잡해진다. 없는 예산을 짜내어 할 양이라면 아예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그래도 공연 기회가 생겼으니 기뻐해야 하나.  


 요즘은 그래도 좀 줄었지만, 조금 더 어마어마한 예로는 이런 말도 있다.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거든요. 공연비는 없지만 여기서 공연하시면 홍보가 되실 거예요.


 물론 홍보는 매우 중요하다. 나도 매년 몇백 번의 공연을 하고,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도 하고, 매년 굿즈도 만들어 배포한다. 그런데 이렇게 8년을 했는데나는  아직도 '홍보'  되어서 유명하지 않은 것인가.


  물론 취지만 좋다면 기부금을 내고도 공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주 고민스러워진다. 그러면 이렇게 공연비가 적거나 없는 공연은 거절해야 하는가? 간단한 질문 같지만 그렇지 않다. 분명히 누군가는 나 대신 그 자리에 들어갈 것이다. 그렇다고 그분의 실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즉, 나 따위가 부당한 제안을 거절한다고 담당자들이 이 공연비가 말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없다.


 유명해지기 싫은데, 존중받으려면 유명해져야 하는 걸까. 부당한 일에 대한 원인을 매번 나에게서 찾는 것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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